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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고구려 패러다임으로 쉬프트하라 - 5. 상상력으로 역사를 대하라 본문

연재/시네필

고구려 패러다임으로 쉬프트하라 - 5. 상상력으로 역사를 대하라

건방진방랑자 2019. 4. 23.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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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상상력으로 역사를 대하라

 

 

또한 이 영화는 소제목을 간간히 넣어서 다음에 펼쳐질 내용을 상상하게 만든다. ‘삼배가 아니라 오배다’, ‘걸어가는데 그냥 눈물이 나온다’, ‘역사는 감이다와 같은 소제목은 아무리 읽어도 도무지 무슨 내용인지 감조차 잡을 수가 없다.

 

 

장군총엔 바람과 중력에 무너지지 말라고 각 면마다 거대한 세 개의 돌을 대어놨다. 이런 큰 돌을 운용할 수 있는 지혜가 있었다는 얘기다. 

 

 

 

유적지가 뭣이 중헌디

 

하지만 막상 영화를 보고 나면 그런 소제목만큼 그 장면 하나하나를 제대로 전달해주는 제목도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니 영화가 다 끝난 다음엔 소제목만 다시 읽어볼 필요가 있다. 그러면 그 당시에 어떤 장면들을 봤는지 머릿속에서 저절로 떠올라서 내용을 곱씹기에 좋다.

이 영화에서 가장 큰 울림을 준 소제목은 상상력의 여행을 떠나라라는 거였다. 지금까지 역사=진실이란 측면으로만 여기도록 배워왔다. 그러니 역사=상상력이라 말하는 즉시, 그건 역사를 한낱 소설로 격하시키는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데 도올 선생은 당당히 역사를 바라볼 때 상상력을 덧붙여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도올 선생이 고구려사를 왜곡이라도 하겠단 말인가? 그건 말도 안 되는 소리다. 그는 이 영화를 통해 고구려의 유적지를 거닐며 그 숨결을 느꼈고, 그 누구보다도 고구려 역사에 대해 다방면의 지식을 섭렵했기 때문이다.

 

 

도올 선생의 발에 알알이 새겨진 고구려의 자취가 어떻게 왜곡하게 할 것인가? 그가 말한 상상력이란 그런 말이 아니다.  

 

 

그런데도 왜 이와 같은 말을 하는 것일까? 그가 외치는 절절한 말을 들어보자.

 

 

나이 칠십에 처음 발 디딘 고구려, 나는 첫날 확신을 했다. 고도로 여행을 한다고 하는 것은 눈으로 보는 여행이 아니라 상상력의 여행이라는 것을. 고분을 쳐다보면 다 똑같다. 하지만 우리는 그 고분을 볼 것이 아니라 주변의 산세를 돌아보시고 이 주변의 성터는 어디에 있는가?’, 그리고 거기 사는 사람들은 어떠한 생활문화를 가지고 있었고 이들이 추구했던 삶이 무엇이었던가?’하는 상상으로 여행을 하여야 한다.

 

 

이 말을 듣자마자 절로 탄성이 나왔다. 올림픽공원은 학교로 출근하는 길에 있기에 늘 지나가야만 하며, 아차산은 학교 아이들과 수시로 등산했던 곳이다. 누군가는 몽촌토성을 보며 백제인들의 숨결을 느껴야 하고, 아차산을 거닐며 온달의 비분강개를 느껴야 한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나에겐 그저 너무나 일상적인 공간이어서 아무런 감흥도 주지 않는 곳일 뿐이다. 그러니 저런 흙으로 만든 성을 보면서 도대체 뭘 느끼란 거야?’, ‘산에 설치된 보루를 보면서 뭔 고구려의 숨결이 느껴져?’라는 볼멘소리를 하게 되는 것이다. 그건 아마도 윗글의 고분을 쳐다보면 다 똑같다라는 말과 같은 심정이라 할 수 있다.

 

 

올림픽공원은 우리에겐 앞 마당 같은 곳이며, 아차산은 뒷 동산 같은 곳이다. 그러니 아무런 감흥조차 없다. 

 

 

이런 비상식적인 말을 듣고 누군가는 역사적인 상식이 없으니, 아무런 감흥도 느끼지 못하는 건 너무도 당연하지라고 비난할 거다. 하지만 아무리 그 장소와 관련된 역사를 공부한 후에 성벽을 본다할지라도, 그 차이가 확실히 느껴지는 것도 아니고 삼국시대에 대한 남다른 애정이 샘솟는 것도 아니다. 그러니 아무런 감흥도 주지 못하는 유적지가 뭣이 중헌디?”라는 패러디가 절로 나오는 것이다.

 

 

아무런 상상력도 없다 보니, 발굴조사를 한다고 했을 때 지역 주민들이 막기도 했었다. 

 

 

 

상상력으로 유적지를 여행하라

 

이에 대해 도올 선생은 아예 고도로 여행을 한다고 하는 것은 눈으로 보는 여행이 아니라 상상력의 여행이라는 것이라 말하기에 이른 것이다.

그동안은 역사유적을 보면서도 아무런 감흥도 느끼지 못하고 역사적 혜안도 갖지 못하는 나를 보며 참 역사에 무지하다고 탓하기에 바빴다. 하지만 도올 선생의 절절한 외침을 듣고 나니, 더 이상 그럴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역사란 과거에 고착되어 하나의 정형화된 내용으로 굳어 있어, 내가 무조건 감동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역사는 살아 있는 생물체처럼 사실과 허구 사이에서 끊임없이 변화되어 간다. 그러니 현재를 살아가는 나와 부딪혀 현재의 이야기로 되살려 나가야만 하는 것이다. 이때 어떤 상상력을 통해 과거를 볼 것인지, 그리고 유적지를 거닐며 생각할 것인지가 중요하다.

도올 선생은 2012년에 썼던 사랑하지 말자라는 책에서 모든 역사는 현대사이다(All history is contemporary).”라는 말을 했었는데, 그런 관점으로 고구려의 유적지에 대한 소회를 적은 책이 중국일기이며, 영상으로 편집한 영화가 바로 나의 살던 고향은이라 할 수 있다.

 

 

중국일기와 나의 살던 고향을 같이 보면 그 감동은 훨씬 깊어진다. 

 

 

 

길은 사람을 통해, 역사는 상상을 통해 태어난다

 

이와 비슷한 경험을 2011년에 떠난 사람여행에서 절실히 했었다. 도보여행을 하다 보면 모든 길은 다 똑같은 길 같고, 모든 산은 똑같은 산 같아 보인다. 그러니 처음에 여행을 시작할 땐 모든 게 새로워 보이고 남다른 감동을 느낄 수 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어딜 가든 똑같은 배경에 금세 지루해지고, 지겨워지고 마는 것이다.

하지만 그건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망각했기 때문에 생긴 문제일 뿐이었다. 여행은 단순히 경치를 구경하러 가는 게 아니다. 물론 소비지향의 여행은 단순히 경치를 구경하고 돌아오는 식으로 짜이긴 하지만, 우리가 진정으로 떠나고 싶은 여행은 그런 식의 여행일 리가 없다. 경치 속에 사는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그 이야기를 통해 삶의 현장인 경치를 다시 볼 때 그 경치는 특별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당시 여행기길 위엔 사람이 살고 그 사람과의 만남으로 그 길은 특별해 진다.’라고 썼던 것이다.

 

 

길을 무작정 걸어서는, 유적지만 무작정 찾아다녀서는 아무 것도 남지 않는다. 사람과 만나야 하고, 상상력으로 그 당시 사람들을 불러들어야 한다. 

 

 

그처럼 도올 선생 우리는 그 고분을 볼 것이 아니라 주변의 산세를 돌아보시고 이 주변의 성터는 어디에 있는가?’, 그리고 거기 사는 사람들은 어떠한 생활문화를 가지고 있었고 이들이 추구했던 삶이 무엇이었던가?’하는 상상으로 여행을 하여야 한다.”라는 말을 이해하면 된다. 고분이든, 유적이든 거기가 거기 같고, 저기가 저기 같다. 거기서 축성방법의 차이, 현실玄室 위치의 차이와 같은 전문적인 것들을 알아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 이상으로 그곳에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 그리고 그들은 어떤 사고방식과 생활방식으로 살아왔는지 생각해보는 게 중요하다. 그래야만 고구려인들의 숨결을 어느 정도 느낄 수 있으며, 그들이 살았던 그곳에서 따스한 온기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도올 선생이 들려주는 고구려에 대한 이야기가 조금씩 열기를 띠어가고 있다. 다음 후기에선 드디어 이 영화의 핵심 내용인 고구려 패러다임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다.

 

 

우리가 고구려를 제대로 볼 수 있으려면, 고구려 패러다임으로 바꿔야만 한다. 그건 당연히 결단일 수밖에 없다.   

 

 

인용

목차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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