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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고구려 패러다임으로 쉬프트하라 - 2. 도올과 건빵 본문

연재/시네필

고구려 패러다임으로 쉬프트하라 - 2. 도올과 건빵

건방진방랑자 2019. 4. 22. 2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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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도올과 건빵

 

 

그런 깨달음의 근저엔 도올 선생이 자리하고 있다. 이미 그 전에 티비를 통해 도올 선생의 강의를 어렴풋이 들은 기억만이 있을 뿐이다. 그땐 단순히 강의할 때 소리를 지르는 사람정도로 받아들였었지만, 막상 책을 읽어보면서 너무도 거대한 산이며, 깊이와 넓이를 헤아릴 수 없는 강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됐다.

 

 

예전에 몰랐을 때만 해도 도올 선생은 그저 소리만 지르는 사람으로만 알고 있었다. 

 

 

 

한문이 재밌었어요

 

더욱이 나의 전공이 한문 교육이다보니, 도올 선생의 책들이 어렵긴 해도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었다. 그 과정을 통해 한문공부의 재미도 느끼게 됐으며, 사회문제에 대해서도 관심 갖게 됐고, 공부의 의미도 알게 됐다.

우선 한문은 그저 어려서부터 해왔기에 해야만 하고, 막상 한문교육을 전공하고 있었기에 사서四書는 익혀야만 하는 것이었다. 성적이 쫘르륵 나오니 그냥 열심히 읽었고, 그냥 열심히 암송했다. 그러니 거기에 담긴 말이 어떤 말인지, 그리고 우리의 삶에 어떤 가르침을 주는지 궁금하지도, 알고 싶지도 않았다. 우리가 중고등학생 시절에 흔히 하는 말처럼 공자(맹자, 주자)가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텐데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부담스럽기만 해서, 아는 즐거움 따윈 개나 줘버린 지 오래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도올 선생의 논어한글역주도올 선생의 중용강의와 같이 사서를 입체적으로 풀어낸 저작들을 읽다 보니, 여태껏 내가 배운 사서는 앙꼬 없는 찐빵이었음을 알게 됐다. 그 책엔 그 당시 사람들의 세상과 사람에 대한 인식, 그리고 배움의 역동성이 모두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여태껏 그와 같은 것은 전혀 보지도 못하고 그저 외우기만 했으니 얼마나 한심한가.

아래에 인용한 활연관통豁然貫通란 말의 해석만 봐도, 공부를 해야 하는 의미, 앎의 즐거움을 명쾌하고 담고 있는 명문이라 할 수 있다. 이런 풀이를 보고 나면 한문을 공부하는 즐거움도 몸소 알게 되니 일석이조라 해야 맞다.

 

 

하루하루 지식이 축적되어 가는 가운데, 어느샌가 豁然貫通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 활연관통이라는 주희의 말도 후대의 비판가들에 의하여 너무 과장되게 해석되어 마치 그것이, 불가에서 말하는 大悟나 득도의 경지와도 같은 신비적인 그 무엇인 것처럼 비아냥거림의 대상이 되었지만, 여기 관통이란 꿰뚫음 정도의 의미 밖에는 되지 않는다. 일례를 들면, 물리학 개론을 듣기 시작한 과학도가 대학원생만 되어도 우주의 원리가 몇 개의 법칙이나 힘에 의하여 관통되어 설명될 수 있다는 깨달음을 얻는 순간이 올 것이다. 사실, 고승이 평생 수도해서 깨닫는 것이 이 물리학도의 깨달음에도 못 미치는 것일 수도 있다. “활연이란 계곡이 확 트인 것처럼 드넓다는 의미이며 드넓은 세상이 한 줄로 꿰어져서 이해될 수 있다는 상식적 수준의 표현이다. 물론 상식적 활연관통도 금일, 명일 치열한 각고의 노력의 축적을 요구하는 것이다.

-대학ㆍ학기 한글역주, 김용옥, 통나무, 2009, 95

 

 

한글역주 시리즈를 읽으며 한문 공부의 재미를 맘껏 느낄 수 있었다. [효경]을 읽으면 효의 새로운 가치가 보인다. 

 

 

 

꼭 꼭 숨기보다 당당히 외치라

 

이뿐인가? 학자이면서 학자답기는 힘들다. 그것도 나름 영향력 있는 학자가 자기 말을 한다는 것은 정말로 힘들다. 어용학자가 되면 더 많은 혜택을 받고 더 많은 권력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아는 게 있고, 보이는 게 있을지라도 봉사인양, 벙어리인양 사회적인 발언은 자제하고 상아탑의 권위에 꼭 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라는 마음가짐으로 숨는다.

 

 

상아탑에 숨어 사회적인 발언을 하지 않는 경우는 봤어도, 역사책을 집필하면서 꼭꼭 숨는 경우는 이번에 처음으로 봤다. 

 

 

하지만 도올 선생은 그렇게 비겁한 짓을 하지 않았다. 천안함 사건에 대해 합동조사단이 북한소행으로 결론 내렸지만, 그런 현실에서도 아랑곳하지 않고 여기서 또 이런 말하면 내가 잡혀가겠지만, 나는 0.0001%도 사실은 설득이 안 된다. 그러나 내가 감옥에 안 가려면 0.0001%는 남겨 놨다. 무슨 얘기냐면, 나는 천안함 사태가 발표를 하는데, 우선 구역질나는 게, 아니, 장성들이 앉아가지고 계급장이나 떼고 나오지, 패잔병 새끼들이, 자기들의 부하들, 불쌍한 국민들을 죽여 놓고, 앉아가지고, 거기서 무슨 개선장군처럼 앉아서 당당하게 국민들에게 겁을 주면서 발표하는 그 자세가 우선 구역질이나 못 견디겠다. 일본의 사무라이라면 그 자리에서 할복자살을 해야 하는 자리다.”라고 일갈했으며, 세월호 사건이 일어났을 땐 서슴없이 국민들이여! 더 이상 애도만 하지 말라! 의기소침하여 경건한 몸가짐에만 머물지 말라! 국민들이여! 분노하라! 거리로 뛰쳐나와라! 정의로운 발언을 서슴지 말라! 박근혜여! 그대가 진실로 이 시대의 민족지도자가 되기를 원한다면 대통령직에서 물러나는 것이 정도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차마 여의치 못하다고 한다면, 정책의 근원적인 기조를 바꾸고 거국적 내각을 새롭게 구성하여 그대의 허명화된 카리스마를 축소하고 개방적 권력형태를 만들며, 주변의 어리석은 유신잔당들을 척결해야 한다. 그들은 통치능력이 부재한 과거의 유물이라는 사실이 이미 명백히 드러났다. 그대의 양신良臣은 민적民賊이다(그대에게 알랑방귀를 끼며 추켜 세워주는 관료들은 모두 백성들의 적이다).”라고 박근혜 정부에 목소리를 높였다. 이것이야말로 학자의 양심이며, 우치다쌤이 얘기한 오감이 민감한 신체라 할 수 있다. 그러니 잘못된 것을 보고 나무랄 수 있었으며, 학문의 권위에 숨어 기득권을 누리려 하기보다 삶의 현실에 뿌리 내려 외칠 수 있었던 것이다.

 

 

 

 

도올 선생의 책엔 이와 같은 사회적인 발언들이 시시때때로 등장하고, 그걸 읽고 있는 나의 가슴을 한없이 뛰게 만든다. 그런 영향을 계속 받다 보니, 나도 어느새 인간과 사회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고 그에 대해 고민할 수 있게 되었다.

다음 후기에선 드디어 나의 살던 고향은을 본 소감에 대해 본격적으로 써보려 한다. 이 다큐를 제대로 보려면 우리가 지금까지 어떤 역사의 패러다임에 빠진 채 살아왔는지 자각하는 단계가 필요하다. 그래야만 비로소 도올 선생이 말하는 고구려 패러다임의 진면목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고구려, 발해 유적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들어보자.

 

 

 

인용

목차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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