콥틱어
콥틱어는 함족과 셈족의 혼합언어(Hamito-Semitic language)인 고대 이집트언어 발달사의 마지막 단계에 해당된다. 무슬림국가인 이집트는 공식적으로 아랍어를 국어로 쓰고 있기 때문에 불행하게도 이집트어는 멸절된 언어다. 이집트역사를 쓸 때에도 서로마제국의 통치가 종료된 395년부터 이슬람이 이집트를 정복한 641년까지를 공식적으로 콥틱 시대(Coptic period)라고 부른다. 그것은 기독교시대(Christian period)이며 비잔틴시대(Byzantine period)에 해당된다. ‘콥트’(Copt)라는 말 자체가 아랍말 ‘쿠브트’(qubṭ)에서 왔는데, 그것은 ‘애굽부트’(Aigyptios)라는 희랍어가 와전된 것이다【우리말의 ‘짱꼴라’가 중국인 즉 ‘종꾸어르언’ 이 와전된 것과 비슷】. 그러니까 무슬림으로 전환한 이집트인들은 자신을 ‘이집트인’(콥트)이라고 부르지 않았고 따라서 이집트 토속 기독교전통을 유지하는 사람들만 콥트라고 불리우게 된 것이다. 이 콥트 기독교인이야말로 초대 예루살렘 교회의 전례를 가장 원형에 가까운 형태로 유지하고 있었다.
여태까지 우리가 논의한 아타나시우스(Athanasius, c. 293~373)나 아리우스나 멜레티우스나 파코미우스, 이런 사람들이 모두 희랍어에 정통한 사람들이지만 동시에 자기네 말인 콥틱어를 썼다. 아타나시우스도 본국인들에게 훈계할 때는 콥틱어로 썼다. 콥틱어는 이집트 고대문명의 기나긴 역사에 있어서 최초로 자기들의 구어체계를 발음대로 적을 수 있는 알파벳 소리글이었다. 그 이전의 상형문자들은 디모틱 흘림체를 포함하여 모두, 조선왕조의 지식인들에게 있어서 한문과도 같이, 전혀 그 발음체계가 반영되지 않는 뜻글이었다. 그리고 희랍(프톨레미)ㆍ로마의 통치를 통하여, 우리나라 조선왕조말의 언어가 일제시대를 통하여 엄청난 일본말 어휘를 흡수하면서 변하듯이, 희랍어 어휘를 엄청나게 흡수하면서 발전했다. 기독교문명의 모든 것을 표현하기에는 콥틱어가 매우 편리했다. 나일강 주변으로 기독교세력이 넓게 분포되면서 콥틱어 기독교문화가 성립했는데(콥틱어도 지역에 따라 방언이 있다), 이 콥틱어야말로 그 자체가 이미 뿌리깊은 종교ㆍ신화ㆍ예술전통을 지닌 이집트문명과 동방오리엔트문명, 헬레니즘문명, 유대이즘문명, 신흥 기독교문명이 혼합된 복합문명의 소산이었다. 그리고 이 콥틱 크리스챤의 특징은 기독교인이면서도 이 다양한 문명의 물줄기들을 배타함이 없이 개방적으로 수용했다는 데 있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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