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산드리아의 아리우스
아리우스는 리비아(구레네)에서 이주하여 온 부모 밑에서 알렉산드리아에서 태어났다. 그는 한때 분열주의자로 몰린 멜레티오스(Meletios of Lycopolis)에게 사상적으로 동조했다가 연좌·추방되어 고행의 세월을 보냈다. 그러한 고난의 기간 동안에 그는 영적 체험을 한 듯하다. 그리고는 매우 강력한 영적 설교자로 다시 등장한다.
그는 312년 봄 아킬라스(Achillas)의 교구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다. 당시 알렉산드리아의 기독교인들의 분위기는 디오클레티아누스(Diocletianus, 245~316)와 막시미아누스(Maximianus)의 기독교박해 이후 매우 침체되어 있었다. 그런데 이 혜성처럼 등장한 아리우스는 기독교인이 가장 밀집한 알렉산드리아 한복판의 바우칼리스(Baucalis) 지구의 목사로 취임하면서 엄청난 인기를 끌었을 뿐 아니라, 인격적으로도 매우 존경을 받았다. 그는 알렉산드리아의 지적 분위기를 매우 잘 반영하는 인물이었으며, 다년간의 고행으로 금욕적 경건함이 체화된 인간이었고, 요즈음 말로 한다면 매우 ‘리버럴(liberal, 진보적인)’한 사상가였다.
그는 철저한 네오플라토니스트(Neo-platonist)였다. 네오플라토니즘적인 사유를 기독교의 신비적 종교체험과 결합시키려 했다. 네오플라토니즘이라는 사상 자체가 알렉산드리아에서 태어난 운동이며 알렉산드리아의 지적 분위기를 잘 반영하는 사상체계인데, 알렉산드리아 출신의 플로티누스(Plotinus, AD 204~270), 그리고 그 이전의 알렉산드리아의 유대인 사상가 필로(Philo Judaeus, C. BC 15~AD 50)를 통하여 그 정체를 더듬어 볼 수 있다. 플로티누스의 사상을 잘 뜯어보면 우리가 흔히 영지주의(Gnosticism)라고 막연하게 폄하하고 곡해했던 사상의 분위기와 일맥상통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네오플라토니즘이라는 것은 플라토니즘의 초월주의, 아리스토텔레스의 현세주의와 현상세계의 계층적(hierarchical) 이해, 그리고 유대교-기독교전통을 포함하는 모든 동방세계의 종교적 신비주의를 융합한 당대의 가장 총체적 사상이었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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