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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성서의 이해, 제12장 디아테사론과 몬타니즘 - 몬타니즘과 평창동 휴거파 본문

고전/성경

기독교 성서의 이해, 제12장 디아테사론과 몬타니즘 - 몬타니즘과 평창동 휴거파

건방진방랑자 2022. 3. 3.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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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타니즘과 평창동 휴거파

 

 

유스틴이 죽고난 후 타티안은 로마교회로부터 이단으로 규정되고 축출되었다(AD 172), 그 이유는 그가 엔크라타이트의 멤버이며, 영지주의 사상가 발렌티누스(Valentinus)의 추종자라는 것이었다. 엔크라타이트(Encratite)란 시리아의 금욕주의 크리스챤종단(an ascetic Christian sect)을 말하는데 극기’ ‘절제’ ‘금욕을 의미하는 희랍어 엔크라테이아(enkrateia)에서 종단 이름이 생겨났다. 이 종파 사람들은 결혼을 피했으며(독신주의), 육식을 금했고, 술이나 취기를 불러일으키는 어떠한 음료도 거부했다. 그들은 성찬식에서도 술을 쓰지 않고 우유나 물로 대치했다.

 

타티안은 로마에서 축출된 후 고향인 시리아로 돌아갔다. 그의 가르침은 동방세계에서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 그리고 디아테사론5세기까지 시리아 교회에서 널리 쓰였다.

 

2세기 중엽 마르시온(Marcion, ?~160) 정경이 성립하고 디아테사론이 만들어지는 그 시기에 우리가 또 기억해야 할 매우 광렬하게 영적인 운동이 있다. 그 운동의 시조 몬타누스(Montanus)의 이름을 따서 몬타니즘(Montanism)이라고 부른다. 아마도 몇 년 몇 월 몇 일에 휴거가 일어나리라고 선포하면서 광렬하게 목청이 찢어지라고 방언을 외치는 가운데 세계 매스컴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평창동의 휴거파들을 연상하면 대강 그림이 그려질 것이다. 소아시아에서 AD 156/7년경에 시작했지만, 그 유명한 카르타고의 교부 테르툴리아누스(Tertulianus, c. 155/160~220 )가 한때 몬타니즘의 열렬한 대변자였다는 사실을 상기하면 몬타니즘도 그 비방자들에 의하여 그려지는 그림처럼 그렇게 저열한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것은 초기 기독교 교단이 이스태블리쉬(establishment, 질서) 되어가면서 사도시대의 뜨거운 성령과 열렬한 파루시아에의 기대와 번뜩이던 광채를 상실하고, 도덕적인 해이감에 지배당하는 현상을 거부하고, 강렬한 예언과 방언과 재림과 성령과 도덕적 엄격주의(moral rigorism)을 제창하면서 그 나름대로 일대 타격을 가하고 나온 성령부흥운동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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