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랍신전의 성격: 전업 성직자의 부재
기독교를 이교신앙과 구분 지우는 가장 획기적 사실은 전문적 성직자의 존재였다. 다시 말해서 오직 성직에만 전념하는 전업클래스의 존재였다. 헬라스(희랍) 종교에는 이러한 전업 성직자계급이 존재하질 않았다. 희랍의 신전이라는 것은 문자 그대로 신이 거(居)하는 전당이었으며 그 속에 사람이 들어가서 예배하는 곳이 아니었다. 희랍의 신전이란 인간들의 예배장소가 아닌 신의 거처였다. 신전은 반드시 폴리스와 일체를 이룬다. 신전은 대개 폴리스의 중심에 있는 아고라나 아크로폴리스에 위치하고 있으며 그것은 폴리스 시민의 공동소유였다. 그 신전에 거하는 신은 대개 그 폴리스의 수호신이었으며, 물론 폴리스마다 다른 다양한 신을 모시고 있었다. 예배란 개념은 따로 없고 희생의 제식(sacrificial rites)만 있었는데, 그 제식은 원칙적으로 시민이면 누구든지 거행할 수 있었다. 그 희생제식은 신전 주변의 돌무덤의 제단(bōmos) 위에서 행하였다. 가축을 사용하는데 머리에 리본을 달아 관을 씌우고 앞에 가게 하고 피리를 불면서 행렬이 이어졌다. 제단에 도착하면 주변에 물을 뿌리고 또 보리씨를 뿌린다. 그리고 난 후 가축의 목을 치켜올리고 마카이라(machaira)라는 칼로 목을 쭉 찢어 피를 내고 간을 꺼내어 신에게 보인다. 펄떡이는 간을 보고 신이 제물을 용납하셨다고 인정되면, 가축을 도살하여 긴 뼈는 발라서 제단에 바치는데 하이얀 지방질로 덮고 그 위에 향초나 후추 같은 것을 뿌린다. 그리고 태워서 그 향내나는 연기가 하늘로 오르게 하여 신이 흠향케 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머지 살을 솥에 삶아 맛있게 요리하여 제식에 참여한 모든 사람들이 같은 분량으로 나누어 먹는다. 남는 분량이 있으면 동네로 가져가서 이웃에게 나누어준다. 이때 혓바닥은 제일 중요한 사람이 먹고, 피혁은 제사를 주관한 사람이 갖는다. 이렇게 하여 신과 인간이 같이 즐기는 것이다.
희랍의 종교는 폴리스에 사는 사람들의 세간(世間) 즉 속(俗)에 속한 것이었다. 막스 베버의 말대로 그것은 출세간적 종교가 아니라 입세간적(intra-world religion)종교였다. 성(聖, the sacred)과 속(俗, secular)의 확연한 이원적 구분이 없었다. 따라서 신전의 제사장은 그 폴리스의 행정장관과 일치했다. 모든 고급관료는 어떤 의미에서 성스러운 제사를 지내야할 의무를 지니고 있었다. 전쟁을 하기 전이라 든가, 전쟁이 끝나고 나서든가, 의회를 소집한다든가, 장관의 이취임식이라든가 이러한 모든 것이 제식으로 이루어졌다. 폴리스라는 사회를 화합적으로 작동시키는 모든 제스처가 이러한 종교적 제식이었다. 이러한 종교는 실상 정치적이었다. 그것은 ‘정치종교’(political religion)였다. 따라서 정치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고 사회의 결속력이 없어지면 신전은 폐허가 되고 만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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