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말씀과 인간의 언어
아타나시우스파와 아리우스파의 대결, 그리고 오늘날의 우리가 알고 있는 성경의 모습을 비로소 확정 지운 아타나시우스의 27서 정경의 출현, 이러한 문제를 단순한 종교교리상의 문제로 귀속시킬 수는 없다. 그 배면에서 진행되고 있는 인간들의 생활상과 역사의 하부구조, 경제사적 토대와 같은 매우 착실한 기반으로부터 분석해 들어가는 것이 타당하다.
한국의 독자들은 나의 역사서술방식이 약간 기독교 정통론에 대한 반감을 가지고 있다고 지적할지도 모르겠다. 나는 어떠한 경우에도 역사의 흐름에 대해 나의 주관적 포폄의 절대성을 강요하지는 않는다. 내가 비록 안타까움을 표현할지라도 독자들에게 그것이 강요되고 있는 것은 아니다. ‘클레오파트라(Cleopatra VII, BC 69~30)의 코’는 무의미하다. 내가 지나간 역사에 대해 세우고 싶어하는 가설대로 역사가 흘러갔다면 인간의 역사는 재미가 없는 것이 되고 말 것이다. 부정적인 방향이든 긍정적인 방향이든 그 주어진 역사의 모든 성쇠와 희비를 극복해가는 것은 당대 역사의 담임자들이며 민중이다. 기독교의 역사만 해도 ‘안타까운’ 측면이 있다 해도 오늘까지 흘러 내려온 기독교의 모습은 그 많은 민중들의 피땀에 의하여 최선의 방향으로 선택되어온 것이고 또 그렇게 흘러가리라고 나는 믿고 있다. 따라서 나는 기독교의 모든 정통적 교설에 대해서 아주 근원적으로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고 있다. 그러한 나의 마음자세를 의심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내가 반복해서 말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님의 말씀에 대한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사실’은 인간의 역사와 얽혀있으며 인간의 언어 속에 일차적으로 내재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어떠한 경우에도 인간의 언어와 하나님의 언어를 혼동해서는 아니 된다. 우리가 지금 탐색하고자 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하나님의 언어다. 그것은 오직 인간의 언어와 역사의 사실을 밝힘으로써만 접근될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의 언어에 대해서는 우리는 매우 날카롭고 다양한 관점의 메스를 가하기를 주저해서는 아니 되는 것이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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