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주의적 합일
최근, 프린스턴 수학자 죤 내쉬(John Nash)의 생애를 다룬 『뷰티풀 마인드』(Beautiful Mind)라는 영화가 말해주듯이, 수학적 환각과 노벨상의 차이는 백지장 한 장의 차이와도 같을 수 있는 것이다.
플라톤은 피타고라스의 적법적 후계자이다. 플라톤 자신이 여기저기서 파르메니데스나 피타고라스에게 진 빚을 깊은 존경심을 가지고 고백하고 있다. 파르메니데스는 희랍인들의 우주론적 구상을 추상적 사유의 길 위에 올려놓았다. 여기서 말하는 추상적 사유(abstract thought)는 외부의 사실에 관계없이 작동하는 마음의 원리 같은 것이다. 이렇게 감관적 세계를 무시하고 사유적 세계만을 리얼한 것으로 보는 이원론적 철학의 측면이 피타고라스의 수학에 의하여 더욱 체계화되었고, 플라톤의 이데아론으로 완성되기에 이른 것이다. 플라톤의 이데아론은 가시계(可視界)와 가사계(可思界)를 완전히 대립적인 구도 속에서 파악하는 이원론의 전형일 뿐 아니라, 그 배후에는, ‘동굴의 비유’가 말하는 바와 같이, 영혼의 해방주의라는 매우 신비주의적 색채가 짙게 깔려있다. 뿐만 아니라 초기기독교의 원형이라 말할 수 있는 영지주의(Gnosticism)도 인간을 영지(Gnosis)의 소유자로서 파악한다. 그리고 이 영지야말로 피타고라스의 수학처럼 우주의 모든 신비를 푸는 열쇠가 된다. 이 영지주의적 세계관의 배면에는 인간과 세계의 분열이 있고, 또 세계와 신의 분열이 있다. 신은 절대적 존재이며 빛(Light)이며 생명(Life)이며 영혼(Spirit)이며 로고스(Logos) 즉 말씀이다. 그런데 그것은 이 세계와 대적적으로 설정되어 있다.
신은 이 세계에 대하여 초월자이며, 이 세계의 창조주가 아니다. 창조주로서의 신은 하위개념의 데미어지(Demiurge)로서 따로 설정되어 있다. 이것은 바빌로니아의 천문학적 세계관과 복잡하게 얽혀있다. 그리고 초월적인 신의 다른 이름이 인간이다. 인간만이 순수한 신성의 가능성을 보유하고 있으며 신의 세계로 다시 복귀할 수 있는 영지를 소유하고 있는 것이다. 영지는 다름 아닌 ‘신에 대한 앎’(Knowledge of God)이다. 그리고 신과 인간을 중개하기 위하여 이 세계로 파견된 구세주의 도움을 받아 인간에 내재해 있는 그 앎에 대하여 각성을 하게 되고 다시 신과 융합될 수 있는 길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신비주의의 갖가지 형태들은 내가 말하는 파미르고원의 서남쪽, 그러니까 인도문명으로부터 페르시아, 바빌로니아, 팔레스타인, 이집트, 희랍 등의 제문명의 기저를 형성하는 것이며, 모든 원초적 샤마니즘적 사유와 결합되어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신비주의적 합일은 모든 바크티 신앙의 형태와 깊게 연관되어 있다.
▲ 성스러운 사원에 왜 음탕한 미투나(Mithuna)상을 조각해 넣었을까?
여러 설이 있다.
1) 남성의 성적 에너지의 상징인 시바와 여성의 성적 에너지의 상징인 샤크티(Shakti)의 결합을 통해 해탈을 추구한 힌두밀교의 영향
2) 브라흐만(Brahman) 청년들을 성적으로 교육시키는 교본
3) 음탕한 우신(雨神) 인드라를 즐겁게 해주어 벼락을 예방
4) 단순한 신들의 유희
5) 신들을 위한 인간들의 유희
6) 도덕관념에 쩔지 않는 당시 생활상의 적나라한 표현
7) 불교와 대항키 위하여 신도를 끄는 선전효과
8) 출가자들의 대리만족
가장 중요한 것은 인도인들은 성을 통하여 합일을 추구했다는 사실일 것이다. 쾌락의 극한상태에서 금욕의 정적을 유지하는 아이러니가 이 신상들의 모습 속에 서려 있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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