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그뱅, 절대적 진리는 없다
달라이라마의 어조는 단호했고 간결했다. 어제 단 하루의 만남이었지만 우리는 그 만남을 통하여 서로에게 깊은 신뢰감을 주고 받았다. 사실 그가 내뱉고 있는 말들은 거대한 종교계의 현실적 지도자로서는 몸을 좀 사려야할 그런 말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어마어마한 말들을 그는 거침없이 내뱉었다. 나는 그의 그러한 정직한 태도가 너무도 좋았다. 어느 샌가 나는 그의 한 친구로서, 제자로서 한없는 경복의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그는 무엇보다도 진실한 인간이었다. 나는 그의 과학에 대한 생각을 집요하게 파고 들어갔다.
“비그뱅(Big Bang)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연기론에 위배되는 것이 아닙니까? 원인이 없이 시작되는 사건이니까요.”
“비그뱅(Big Bang)이라는 사건을 단순히 원인없는 결과로 볼 때에는 연기론에 위배됩니다. 그리고 비그뱅이라는 이론 속에 숨어있는 형이상학(metaphysics)적 가설도 항상 검증의 대상이 되어야겠지요. 그러나 비그뱅은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의 시작이라는 상식적 이벤트가 아니라, 가장 근원적인 문제, 우리가 목격하는 모든 현상의 기저인 시간과 공간 그 자체가 그로부터 생겨났다는 이야기이므로 그것은 연기론적 논의를 벗어난다고 하겠습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의 연기론적 논의는 모두 시공간내에서 일어나는 사건에 관한 논의입니다.”
“비그뱅 이전에 우리가 상상할 수도 없는 다른 차원의 우주가 있었고, 그 우주의 결과로서 비그뱅이 태어났다고 하면 어떻겠습니까?”
“불교에서 말하는 끊임없는 억겁년의 순환구조를 말하면 그런 얘기는 얼마든지 가능할 수 있겠지만 중요한 것은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시공간의 세계 이전에 어떠한 세계가 있었다 할지라도 이미 그것은 인과적 관계로서 연결될 수는 없다는 주장이 비그뱅이론의 특성입니다. 그러니까 연기적 세계는 현실적으로 우리가 살고 있는 시공간 내에서 우리가 유추(reasoning)할 수 있는 사태와 관련되어 있는 것입니다.”
달라이라마의 물리학적 세계관에 관한 인식은 매우 정확했다. 사계의 많은 훌륭한 학자들과의 토론을 통해서 얻은 통찰일 것이다. 나는 말을 계속했다.
“우리가 상정하고 있는 우주는 계속 변화하고 있으므로, 그 변화의 거대한 방향성을 결정짓는 사태들로부터 비그뱅(Big Bang) 이론은 유추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이 우주는 계속 팽창하고 있다는 가설을 제시했다면 이미 비그뱅(Big Bang) 이론은 그 가설 속에 내포되어 있었다고도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비그뱅이론의 타당성은 현재 우리가 우주로부터 관찰하는 사태로부터 유추된 가설체계로서의 타당성일 뿐이며, 또 그것이 현실적으로 많은 다른 우주의 현상들을 설명하는 데 도움을 주기 때문에 타당한 가설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러한 현실적인 타당성이나 유용성의 체계가 바뀔 때에는 비그뱅(Big Bang)가설 자체에도 불가피한 변화가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과학적 진리도 구극적으로는 상대적 진리일 뿐입니다. 성하께서는 절대적 진리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절대적 진리는 없습니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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