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근대철학의 위기
유명론과 경험론의 관계에 대해서, 그리고 로크ㆍ버클리ㆍ흄의 사상을 유명론과 관련해서 다음과 같은 몇 가지 결론으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첫째, 유명론은 로크에 의해 근대적인 문제설정으로 포섭되었습니다. 그 결과 유명론이 가지고 있었던 반관념론적인 성격은 근대철학 내부에서 딜레마를 드러내고, 결국 극한으로까지 가게 됩니다. 버클리와 흄의 작업이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유명론은 관념론으로, 혹은 회의주의로 전환되었지요. 경험적 지식에 대한 신뢰에서 출발한 경험주의는 그 반대물로, 즉 경험이라는 것은 도대체 믿을 수 없고 진리를 형성할 수 없다고 하는 반대물로 전화되었습니다. 결국 이렇게 함으로써 근대철학은 위기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회의주의’는 극한에 선 근대철학, 극한에 선 유명론의 다른 이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둘째, 아까 흄은 근대의 한계선에, 그 경계선에 서 있다고 했습니다. 그는 근대적인 문제설정 안에서 유명론적 관점을 극단으로까지 밀고 나감으로써 근대적 문제설정의 끝에 도달합니다. 그런데 그곳은 바로 근대철학의 출발점이었습니다. 흄은 거기서 근대철학의 출발점이 결코 자명하거나 확실한 게 아니라 취약하고 불확실한 것이라는 것을 절감하면서 이것을 폭발적으로 드러냅니다. 그리고 거기서 근대철학의 출발점이었던 주체라는 개념, 진리라는 개념을 해체시켜 버립니다. 이로써 근대철학 전반의 기초를 뒤흔드는 ‘위기’가 시작된 것입니다. 흄 자신조차 그로 인해 당황하게 되고 난감해 하게 되는 이 ‘위기’가 이후 근대철학을 새로이 규정합니다.
스피노자와는 달리 흄이 근대철학의 위기를 야기했으며, 스피노자에 비해서 쉽사리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이 제기한 문제와 대결하게 만들었던 것은, 흄이 근대철학의 문제설정에서 출발했고 여전히 그 안에 머물며 근대철학의 딜레마를 드러내는 곳에서 멈추어 서 있기 때문입니다. 반면 스피노자는 근대적인 문제설정 자체를 비껴가고 애초부터 그 외부에 섰기 때문에 대다수의 근대철학자들로부터 이해받지 못했고, 외면당했던 것입니다.
셋째, 흄은 주체를 관념의 다발로 보았으며 그 다발이 믿음을 형성하는 것으로 보았습니다. 이 믿음은 그걸 믿는 ‘주체’에겐 생생하고 안정적인 사실로 간주되며, 따라서 실질적인 효과를 갖습니다. 이는 지식이나 관념을 다루는 근대적인 방식에서 벗어나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개인들의 사고와 행동을 규정하는 표상체계(예컨대 이데올로기나 담론)의 이론으로 나아갈 수 있는 요소를 갖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흄에게 믿음은 단지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것일 따름이었습니다. 이 믿음이 어떠한 사회-역사적 조건에서 형성되며, 그것이 어떤 방식으로 개인들을 포섭하고 움직이는가를 사고하기에는 흄의 이러한 탈근대적 요소는 너무나 미약했습니다. 믿음을 형성하는 사회-역사적 조건에 대한 이론 역시 아직은 사고하기 힘들었음은 물론입니다.
반면 믿음을 ‘주체’인 개인이 갖고 있는 관념이라고 본 점에서 그는 여전히 근대철학의 내부에 머물러 있음을 확인하게 됩니다. 결국 흄이 근대철학의 외부로 나가면서 찾아냈던 탈근대적 요소는 근대적 문제설정에서 벗어나지 못함으로써 개인들이 가진 관념에 머물고 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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