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흄 : 근대철학의 극한
과학주의에서 회의주의로
근대철학을 그 극한으로까지 몰고 갔던 사람은 누구보다 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흔하 알다시피 흄의 철학은 ‘회의주의‘로 불려지는데, 대개는 회의주의’에 대한 비판으로 그의 사상에 대한 평가를 일축합니다. 그러나 진리를 추구한 근대철학에서 그러한 회의주의가 나타난 것은 무엇 때문이며, 그 의미는 무엇인가 하는 문제는 근대철학 전반을 이해하는 데 오히려 매우 역설적인 중요성을 갖습니다.
흄의 출발점은 로크와 비슷합니다. 그 역시 엄격한 과학적 지식을 추구합니다. 그에 따르면 “자연과학의 성과를 빌려 인간학을 구성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는 과학의 일종으로 간주되던 심리학에 기초해서 ‘경험적 인간학’을 구성하려고 합니다. 여기서 경험과 관찰이 일차적 위치를 차지함은 물론입니다. 이런 점에서 흄이 경험주의의 전통에서 출발하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 역시 불확실한 것들을 비판적으로 검토함으로써 인간에 대한 확실한 과학을 구성해야 한다는 근대적 과학주의를 공유하고 있었던 셈입니다. 흄은 여러 가지 관계들을 구분한 다음 그 중 과학이란 이름에 걸맞는 확실한 게 무언가를 찾아나섭니다. 마치 데카르트가 그랬듯이 말입니다. 그에 따르면 철학에는 일곱 가지 관계가 있는데, 이 중 ‘유사관계’ ‘양적 관계’ ‘질적 관계(성질의 등급)’ ‘반대관계’는 확실하지만, ‘동일관계’ ‘시간/공간상의 관계’ ‘인과관계’는 확실하지 않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쌍둥이가 서로 닮았다는 건 확실하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동일한 모습을 하고 있는지는 확실하게 확인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 중 특히 문제가 되는 게 인과관계입니다. 인과관계는 예컨대 손을 비비면 따뜻해진다든지, 나무를 비벼대면 열이 나고 이를 오래 지속하면 연기가 나며 불이 붙는다든지, 물건을 놓치면 떨어진다든지 하는 것처럼 두 개의 현상이 연속해서 나타나는 것을 말합니다. 이때 앞의 것을 원인, 뒤의 것을 결과라고 하지요.
그러나 홈은 인과관계란 ‘연접된,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 붙어 있는 두 인상(현상)의 관계에 대한 습관적인 판단’이라고 합니다. 예컨대 나무를 비비면 불이 붙는다는 것은 그런 경우를 자주 보다보니 생긴 습관이라는 겁니다. 그렇지만 그게 언제나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영화 「불을 찾아서」에서 주인공이 배운 대로 나무를 맞대 세워 비벼대지만 불은 붙지 않습니다. 그를 따라온 여인이 비비자 불은 다시 붙지만, 어쨌거나 나무를 비비면 불이 붙는다는 건 언제나 반드시 타당한 결론은 아니라는 겁니다. 다만 자주 일어나는 일이라서, 불이 붙을 것이란 판단을 하는 습관이 형성되어 있을 뿐이라는 거지요.
따라서 그는 확실한 네 가지 관계는 과학에 합당하지만, 인과관계를 비롯한 나머지 세 가지는 과학을 구성할 수 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알다시피 모든 법칙은 인과관계에 의해 표시됩니다. 인과성 없이는 어떠한 법칙도 생각할 수 없으며, 법칙 없이는 어떠한 과학도 생각할 수 없습니다. 결국 그는 애초의 뜻과는 반대로 과학의 불가능성을, 진리의 불가능성을 입증하고 만 것입니다. 이로써 근대철학의 목표는 도달할 수 없는 지점이란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회의주의’란 이러한 도달 불가능성을 표현하는 말인 셈입니다.
▲ 모네, 루앙 대성당 연작
그리스의 전통적인 광학이론에 따르면, 우리가 사물을 보는 것은 눈에서 시선이 나가 그것이 대상과 접촉함으로써 이루어진다고 한다. 다만 데모크리토스나 루크레티우스는 반대로 사물의 형상이 우리 눈에 들어오는 것을 ‘본다’고 보았다. 19세기 후반에 물리학자 헬름홀츠는 본다는 것은 빛의 입자가 사물에 반사되어 눈의 망막에 상을 그리는 것이라고 했다.
인상주의자들은 헬름홀츠의 이 이론에 큰 영향을 받았다. 그 이론에 따라 과학적으로 사물을 재현하려고 했던 이들은, 자신의 눈에 들어오는 빛이 어떤가에 따라 사물은 다르게 보이며, 따라서 다르게 그려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아침에 본 성당과 한낮에 본 성당, 저녁의 어스름한 빛에 본 성당은 모두 다른 형상으로 그려져야 했다. 그래서 모네(Claude Monet)는 루앙 대성당을 이렇게 각기 다른 모습으로 그렸다. 그가 연작들을 많이 남긴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러나 사물의 인상은 빛의 속도에 따라 달라지는데, 그림을 그리는 속도는 아무리 빨라도 그럴 수가 없었다. 인상주의의 딜레마. 그렇다면 이들이 그린 그림은 과연 과학적인 재현이라고 할 수 있을까? 아니, 그림은 꼭 그렇게 과학적인 재현이어야 하는 것일까?
버클리는 “존재하는 것은 지각된 것이다”라고 했고, 흄 또한 존재하는 것은 우리가 갖고 있는 ‘인상’들일 뿐이라고 말했다. 따라서 모든 존재하는 것은 다른 ‘인상’을 가질 때마다 다르게 존재하는 것이다. 세상은 오직 그렇게 우리가 갖고 있는 표상으로서만 존재할 뿐이며, 표상 뒤에 어떤 사물이, 불변의 대상이 있다고 보는 것은 습관에 의한 착각이라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보면, 영국 경험주의자들의 철학은 후세의 인상주의 화가들과 매우 유사한 것처럼 보인다. ‘철학적 인상주의’라고 해야 할까? 그런데 이는 ‘대상’이니 ‘실체’니 하는 불확실한 것을 철학에서 내몰기 위해 오직 확실한 것만으로 철학을 수립하려는 생각에서 시작한 것이었는데, 결론은 오직 불확실하고 일시적인 인상들밖에 없다는 것으로 끝이 나고 만다. 인상주의의 딜레마가 이미 철학적 아이러니로 예견된 것일까?
주체의 해체, 주체철학의 해체
흄은 버클리가 남겨둔 유보조항을 비판하면서 경험주의를 좀더 극단으로 밀고 갑니다. 버클리는 지각된 것을 관념이라 하고, 지각하는 것을 정신이라 합니다. 예를 들면 어떤 물건을 보고 ‘사과’로 지각한다면 ‘사과’는 관념이고, 그걸 지각한 것은 정신이라는 겁니다. 그런데 알다시피 버클리는 “존재하는 것은 지각된 것이다”라고 하며, 지각되지 않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간주합니다. 그러나 지각하는 정신만은, 지각되는 게 아니지만 존재한다고 합니다. 요컨대 지각하는 ‘주체’, 인식하는 주체(데카르트)가 ‘정신’이란 이름으로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이지요.
하지만 흄은 이런 예외조차 인정하지 않습니다. 흄은 사물을 보고 생긴 것은 인상이요, 그 인상의 기억이나 결합으로 만들어진 게 관념이라고 합니다. 사과가 지금 앞에 없지만 예전에 본 사과를 떠올리거나, ‘사과밭’이란 말을 만든다면 그건 관념인 거지요. 인상과 관념의 차이는 사고로 눈을 잃은 장님을 생각하면 쉽게 이해됩니다. 선천적인 장님은 사과란 말을 들어도 아무것도 떠올리지 못합니다. 그는 인상도, 관념도 갖지 못합니다. 그러나 사고로 눈을 잃은 장님은 사과란 말을 듣고 빨간색의 먹음직스런 과일을 떠올릴 수 있지요. 그는 인상은 갖지 못해도 관념은 가질 수 있는 겁니다.
인상은 직접적인 것이고 관념은 한번 거쳐서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러나 둘 사이에 본질적인 차이는 없다고 합니다. 그저 우리의 감각을 자극하는 강도의 차이만이 있을 뿐입니다. 흄에 따르면 ‘정신’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다만 관념과 인상의 다발만이 있을 뿐이라고 합니다. 어떤 때는 슬픈 감정이 나타나기도 하고, 어떤 때는 무서움이 나타나기도 하고, 또 어떤 때는 동그란 컵에 대한 관념이 나타나기도 하는, 이러한 것들이 스치고 지나가는, 그리고 그것들이 묶여 있는 것들의 집합으로밖에 정의할 수 없다고 합니다.
흄은 ‘나’ ‘주체’ ‘자아’ ‘정신’으로 불리던 것에 대해 그것은 인상과 관념의 묶음, 지각의 다발일 뿐이라고 합니다. 그건 다만 인상이나 관념이 번갈아 스쳐가는 극장, 그것도 무대조차 따로 없는 극장 같은 거라는 거죠. 결국 ‘나’라는 게, ‘정신’이라는 게 따로 없다는 것입니다.
예컨대 「토탈 리콜」이란 영화를 보면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뇌에 주입함으로써, 화성 총독의 친구인 주인공이 총독의 권력에 대항하는 반란자가 됩니다. 전혀 다른 사람이 된 거지요. 동일한 사람이 인상과 관념, 그 기억(리콜)의 다발이 바뀜에 따라 전혀 다른 사람이 되는 거지요. 그렇다면 ‘나’라고 하는 항구적인 주체가 과연 있느냐는 질문이 당연히 제기되지 않겠습니까?
이리하여 흄은 ‘정신’이나 ‘주체’라는 범주를 해체하게 됩니다. 데카르트는 물론이고, 로크나 버클리도 자명한 것으로 간주했던 근대철학의 출발점을 말입니다. 이와 같은 흄의 주장은 어떤 실체도 인정하지 않는 버클리식의 유명론을 ‘정신’이나 ‘주체’에 대해서까지 적용시킨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즉 근대적 문제설정 속에서 유명론을 끝까지 밀고 나간 결과, 근대철학의 출발점이었던 ‘주체’라는 범주를 해체하게 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 아프리카 가면
“오직 인상만이 있을 뿐이다”라는 경험주의자의 말은 이렇게 바꿔 말해도 좋을 듯하다. 인상 뒤에는 아무것도 없다. 그런데 비슷하게도 니체는 이렇게 말했다. “가면 뒤에는 아무것도 없다.” 무슨 말일까? 가면 뒤에는 가면을 쓰는 얼굴이 있지 않은가? 아니면 얼굴 없는 허공이, 배트맨도, 쾌걸조로도 가면 뒤에는 평범한 시민이 있지 않은가? 그러나 그 가면을 쓰는 순간, 그는 평범한 시민이 아니라 배트맨이고 조로일 뿐이다. 가면을 쓴 채로 그가 평범한 시민으로 행동한다고 생각해 보라!
마찬가지로 우리는 엄마 앞에선 아이가 되고, 학생 앞에선 교사가 되며, 연인 앞에선 그의 커플이 된다. 아이의 가면, 교사의 가면, 연인의 가면, 그 각각의 순간에는 그 가면만이 있을 뿐이다. 가면을 벗으려 하면 상대방은 하나같이 놀라고 당혹하며, “정신차려!”하고 외친다. 그렇게 우리는 수많은 가면들을 바꾸어 쓰면서 다른 인물이 되어 산다. 그 가면들 뒤에 나가 따로 있는 게 아니라 각각의 순간에 어떤 가면을 쓴 인물만이, 가면만이 있는 것이다. 각각의 순간마다 우리의 모든 얼굴은 하나의 가면인 것이다. 인상주의, 그것은 어쩌면 니체가 말한 ‘가면의 철학’은 아닐까?
근대철학의 전복
위에서 본 것처럼 흄은 근대철학의 목표라고 할 수 있는 ‘진리’ 혹은 ‘과학’의 불가능성을 보여주었습니다. 나아가 좀더 근본적으로 근대철학의 입지점인 ‘주체’ 자체가 결코 안정적이거나 자명한 것이 아님을 또한 보여주었습니다. 근대의 과학주의는 물론, 주체철학 자체가 어떤 근본적 곤란에 처해 있음을 보여준 것입니다.
이는 근대적인 문제설정이 안고 있었던 딜레마를 폭발적으로 드러낸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근대철학의 ‘극한’이요 ‘한계지점’이었습니다. 이로써 근대적 문제설정은 해체되며, 근대철학의 ‘위기’라는 사태가 초래됩니다. 그래서 그 이후의 대다수 철학자가 이 위기에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 하는 노력을 하게 되고, 이것이 그 이후의 근대철학을 새롭게 발전시키게 됩니다.
어쨌든 흄의 주장은 모든 것을 의심하는, 급기야 ‘생각하는 나’(정신, 주체)까지도 의심하는 극단적인 회의주의였습니다. 이같은 흄의 회의주의는 ‘한계선에 선 근대철학’의 다른 이름이었고, 그러한 의미에서 흄은 근대철학의 ‘한계인’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근대적 문제설정의 한계 안에 있었습니다. 처음에 본 것처럼, 그는 인간에 대한 과학을 구성하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었고, 참된 지식ㆍ확실한 지식이 어떻게 가능한가를 엄밀하게 검토하다 보니 인과적인 과학은 불가능하다는 결론에 도달한 것이었지요. 그런 점에서 흄의 문제설정 자체는 근대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다음과 같이 얘기할 수 있습니다. 흄은 근대철학의 문제설정에서 출발해, 유명론적 사고의 해체 효과를 그 내부에서 최대한 작동 시킨 것이며, 그 결과 근대철학의 한계선에 도달한 것입니다. 그 한계선이란 출발점과 이어져 있는 것인데, 결국은 한 바퀴의 원을 그리면서 출발점에 다시 도착한 것입니다. 그리고 거기서 출발점 자체를 근대철학의 내부로부터 해체시켜 버리는 것입니다.
따라서 근대의 한계 안에 있던 흄으로서는 그 자신이 드러낸 근대철학 자체의 근본적 딜레마 앞에서 당혹해 하고 난감해 합니다. 『인성론』의 결론에서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 앞에 놓여 있는 선택지는 잘못된 이성, 아니면 무이성뿐이다. 나로서는 여기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일반적인 이성이 할 수 있는, 즉 이러한 난관이 거의, 아니 전혀 주목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뿐”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 말의 두 페이지쯤 뒤에서 “인간의 동일성, 나라는 주체의 동일성에 대한 견해를 엄밀히 검토한 결과, 나는 완전히 미궁에 빠져서 어떻게 그 견해들을 수정해야 할지 또 어떻게 그것들을 일관되게 만들 수 있을지 솔직히 알 수 없다”고 하면서 자신의 책을 끝내고 있습니다.
▲ 안동 하회별신굿탈놀이의 하회탈
가면(假面)은 글자처럼 ‘가짜 얼굴’이 아니다. 아프리카나 이른바 원시부족들에게는 특히 그렇다. 그들은 영양의 가면을 쓰면 정말 영양의 신체가 되어 움직이고, 영양의 느낌, 영양의 감응(affect)을 주며 춤을 춘다. 그런 식으로 가면은 그들을 동물이 되게 하고, 다른 신체를 생성하게 한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가면의 용법을 잘 모른다. 거꾸로 가면을 ‘진짜 얼굴’(이게 사실은 하나의 가면인데)을 가리기 위해 사용하는 경우를 잘 안다. 가면무도회, 거기서 사람들은 가면의 얼굴대로 춤추지 않으며, 가면이 담고 있는 감정과 감응을 표현하지 않는다. 그들은 다만 자신의 얼굴을 가리고, 자신의 감정과 느낌을 가리기 위해 가면을 쓴다. 가면이 가짜 얼굴이 되는 것은 바로 이때다. 그러나 혹시 그 경우에도 가면은 자신의 얼굴을 가리려는 욕망을 음각으로 드러내는 건 아닐까? 마치 자신의 마음을 감추기 위해 자신의 표정을 지우는 도박장의 포커 페이스처럼.
탈출도, 귀환도 아닌……
흄이 수행한 근대철학의 해체는 분명 근대적 문제설정의 경계 내부에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렇지만 그가 단지 그 안에만 머물러 있었다고 하는 것은 정확한 평가가 아닐 것 같습니다. 때로 그는 그 경계선 밖으로 넘어갑니다.
여기서 두드러진 것은 믿음에 대한 흄의 이론입니다. 흄에게 인과관계는 습관에 불과한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인상이나 관념을 결합시켜 어떤 지식을 형성합니다. 이 지식은 ‘법칙’이 아니라 ‘믿음’입니다. 즉 참된 지식이나 진리 대신에 믿음이란 개념이 들어서는 것입니다.
흄은 믿음을 이렇게 정의합니다. “현재의 인상과 관련이 있는, 혹은 그것들로 결합되어 있으며 그것들로 연합되어 있는 생생한(살아 있는!) 원리”라고 말입니다. 믿음은 힘을 가지며 생생하게 살아 있어서 그것을 믿는 사람에게 실제적인 효과를 갖습니다. 또한 그것은 견고하고 확실하고 안정감을 갖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 개개인에게 확실한 지식이라는 감을 주고, 그것에 입각해서 행동하게 만든다고 합니다.
흄에 따르면 믿음은 허구와 다르며, 심지어 허구가 아니라고 합니다. 그러면 믿음과 허구는 어떻게 다른가? 두 가지 점에서 다르다고 합니다. 첫째, “느낌이 다르다.” 둘째, “파악하는 방식이 다르다.”
느낌이 다르다는 것은, ‘확실하고 안정감이 있다’ 혹은 ‘옳다’라고 느끼는 것은 믿음이 되지만, 그렇지 못한 것은 믿음이 못 된다는 것입니다. 예컨대 두 사람이 『레 미제라블』(Les misérables)을 읽는다고 합시다. 한 사람은 돈키호테 같아서 거기 나오는 얘기를 역사적 사실로 읽었다고 합시다. 다른 한 사람은 단지 소설 속의 얘기로만 읽었고 말입니다. 두 사람은 동일한 순서(책에 나와 있는 순서)로 동일한 ‘관념’을 얻게 되지만, 그 얘기를 역사적 사실로 믿는 사람은 이것을 참이다.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따라서 시사하는 가치가 있다면 그것을 믿고 따를 것입니다. 그러나 소설책(허구)으로 읽은 사람은 ‘이럴 수도 있지’라는 식으로 받아들일 겁니다. 이 경우 하나의 소설책이 두 사람에게 서로 상이한 영향력을 미친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요컨대 상이한 ‘효과’를 갖는 것이죠. 여기서 이런 개념이 매우 불충분하고 모호하다는 것을 물고 늘어지진 맙시다. 오히려 주목해야 할 것은 믿음의 개념 그것이 갖는 영향력의 문제, 효과의 문제입니다.
근대철학에서 믿음을 다루는 전형적인 방식은 그것을 허구, 허위, 비진리로 다루는 것입니다. 데카르트가 그랬듯이, 믿음이란 대상에 대한 참된 인식을 가로막는 장애물일 뿐입니다. 그것은 넘어서야 할 허구의 세계일 뿐입니다.
그러나 믿음에 대한 흄의 견해는 그것을 다루는 극히 새로운 사고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흄은 어떤 지식이 진리인가 아닌가를 따지는 게 아니라 ― 이것은 근대적인 물음이지요 ― 이 지식이 그걸 믿는 사람에게 어떤 효과를 갖는가를 질문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진리의 문제설정을 벗어나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어쩌면 당연해 보입니다. 왜냐하면 흄이 보기에 진리란 존재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점에서 믿음에 대한 흄의 논의는 참된 지식의 가능성을 검토하는 것에서 시작했지만, 그것에 대한 철저한 해체에 이르러 얻은 새로운 결과물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참(진리)은 아니지만 사람들이 참으로 믿고 있는 그러한 관념이 존재한다는 거죠. 나아가 그것이 어떻게 작용하는가라는, 결코 근대적이지 않은 질문까지 했다는 것입니다. 흄은 이제 근대적 한계의 외부로까지 나간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는 여기서 멈추고 다시 근대 안으로 회귀합니다. 앞서 그가 난감해 하는 모습도 보았지만, 여기서도 그는 “믿음이고 추론이고 다 거부하고 싶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진리를 찾아야 하는데 결국 ‘진리는 없다’로 판단되었던 셈이고, 진리를 찾고 싶은데 진리가 아닌 것만 있다는 이야기밖에 못했으니, 이런 논의 자체를 자기는 다 거부하고 싶다는 것입니다. 결국 그는 근대의 외부로 나가자마자 다시 내부로 회귀하고 마는 것입니다.
5. 근대철학의 위기
유명론과 경험론의 관계에 대해서, 그리고 로크ㆍ버클리ㆍ흄의 사상을 유명론과 관련해서 다음과 같은 몇 가지 결론으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첫째, 유명론은 로크에 의해 근대적인 문제설정으로 포섭되었습니다. 그 결과 유명론이 가지고 있었던 반관념론적인 성격은 근대철학 내부에서 딜레마를 드러내고, 결국 극한으로까지 가게 됩니다. 버클리와 흄의 작업이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유명론은 관념론으로, 혹은 회의주의로 전환되었지요. 경험적 지식에 대한 신뢰에서 출발한 경험주의는 그 반대물로, 즉 경험이라는 것은 도대체 믿을 수 없고 진리를 형성할 수 없다고 하는 반대물로 전화되었습니다. 결국 이렇게 함으로써 근대철학은 위기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회의주의’는 극한에 선 근대철학, 극한에 선 유명론의 다른 이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둘째, 아까 흄은 근대의 한계선에, 그 경계선에 서 있다고 했습니다. 그는 근대적인 문제설정 안에서 유명론적 관점을 극단으로까지 밀고 나감으로써 근대적 문제설정의 끝에 도달합니다. 그런데 그곳은 바로 근대철학의 출발점이었습니다. 흄은 거기서 근대철학의 출발점이 결코 자명하거나 확실한 게 아니라 취약하고 불확실한 것이라는 것을 절감하면서 이것을 폭발적으로 드러냅니다. 그리고 거기서 근대철학의 출발점이었던 주체라는 개념, 진리라는 개념을 해체시켜 버립니다. 이로써 근대철학 전반의 기초를 뒤흔드는 ‘위기’가 시작된 것입니다. 흄 자신조차 그로 인해 당황하게 되고 난감해 하게 되는 이 ‘위기’가 이후 근대철학을 새로이 규정합니다.
스피노자와는 달리 흄이 근대철학의 위기를 야기했으며, 스피노자에 비해서 쉽사리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이 제기한 문제와 대결하게 만들었던 것은, 흄이 근대철학의 문제설정에서 출발했고 여전히 그 안에 머물며 근대철학의 딜레마를 드러내는 곳에서 멈추어 서 있기 때문입니다. 반면 스피노자는 근대적인 문제설정 자체를 비껴가고 애초부터 그 외부에 섰기 때문에 대다수의 근대철학자들로부터 이해받지 못했고, 외면당했던 것입니다.
셋째, 흄은 주체를 관념의 다발로 보았으며 그 다발이 믿음을 형성하는 것으로 보았습니다. 이 믿음은 그걸 믿는 ‘주체’에겐 생생하고 안정적인 사실로 간주되며, 따라서 실질적인 효과를 갖습니다. 이는 지식이나 관념을 다루는 근대적인 방식에서 벗어나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개인들의 사고와 행동을 규정하는 표상체계(예컨대 이데올로기나 담론)의 이론으로 나아갈 수 있는 요소를 갖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흄에게 믿음은 단지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것일 따름이었습니다. 이 믿음이 어떠한 사회-역사적 조건에서 형성되며, 그것이 어떤 방식으로 개인들을 포섭하고 움직이는가를 사고하기에는 흄의 이러한 탈근대적 요소는 너무나 미약했습니다. 믿음을 형성하는 사회-역사적 조건에 대한 이론 역시 아직은 사고하기 힘들었음은 물론입니다.
반면 믿음을 ‘주체’인 개인이 갖고 있는 관념이라고 본 점에서 그는 여전히 근대철학의 내부에 머물러 있음을 확인하게 됩니다. 결국 흄이 근대철학의 외부로 나가면서 찾아냈던 탈근대적 요소는 근대적 문제설정에서 벗어나지 못함으로써 개인들이 가진 관념에 머물고 마는 것입니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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