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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금강경 강해, 제십팔분 - 18.1~2 ~ 如來有天眼 본문

고전/불경

금강경 강해, 제십팔분 - 18.1~2 ~ 如來有天眼

건방진방랑자 2022. 11. 23.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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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모든 것을 한몸으로 보아라

일체동관분(一體同觀分)

 

 

18-1.

수보리야! 네 뜻에 어떠하뇨? 여래는 육안이 있느뇨? 없느뇨?’ ‘그러하옵니다. 세존이시여! 여래는 육안이 있사옵니다.”

須菩堤! 於意云何? 如來有肉眼不?” “如是. 世尊! 如來有肉眼.”

수보리! 어의운하? 여래유육안불?” “여시. 세존! 여래유육안.”

 

18-2.

수보리야! 네 뜻에 어떠하뇨? 여래는 천안이 있느뇨? 없느뇨?” “그러하옵니다. 세존이시여! 여래는 천안이 있사옵니다.”

須菩堤! 於意云何? 如來有天眼不?” “如是. 世尊! 如來有天眼.”

수보리! 어의운하? 여래유천안불?” “여시. 세존! 여래유천안.”

 

 

앞 절에서 말한 육안(肉眼)’은 그냥 우리말대로 육안이며, 우리의 평상적 몸을 구성하는 감각기관으로서의 육안이다. 그러나 육안이라는 말은 항상 어폐가 있다. ‘눈이 본다할 때, 과연 눈이 보는가? 눈동자를 후벼 파내어 책상 위에 놓는다면 과연 그것은 보는 작용을 하는 것일까? 눈은 과연 보는 것일까? 감각기관의 기능의 국부성은 그것 자체로 독립되는 것이 아니라, 그 기능을 가능케 하는 신체 전체와 관련되어 있다는 것은 우리가 너무도 상식적으로 깨달을 수 있는 우리 몸의 사태이다. 눈은 결코 보지 않는다. 그것은 보는 과정의 한 단계를 담당하는 빈 그릇과도 같은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본다고 하는 전체적 과정은 어떻게 이루어 지는가? 그것이 바로 여기서 말하는, 육안(肉眼) 천안(天眼) 혜안(慧眼) 법안(法眼) 불안(佛眼)이라는 총체적 과정인 것이다. 이것은 생리적 과정의 사실인 동시에 우리 인식의 단계적 제고를 말하는 것이다.

 

천안(天眼)’의 원어는 ‘divyaṃ cakṣus’이다. 티베트역()()의 눈’(Ihaḥi spyan)으로 번역하였다. 콘체역은 “heavenly eye.”

 

 

 

 

인용

목차

금강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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