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작년 도보여행의 종착지인 충주에 도착하다
▲ 10월 7일(수) 문경새재게스트하우스 → 충주시
소조령에 오른 지 20분 만에 정상에 오를 수 있었다. 이화령처럼 정상에 휴게실이 있고 전망대가 있진 않지만, 정상이라고 적힌 팻말이 보이자 절로 탄성이 흘러 나왔다. 이렇게 순식간에 어려운 고비들이 끝나니 기분이 좋았다. 지금 시간은 12시 53분밖에 되지 않았다. 이젠 거의 평지만 달리면 되기 때문에 가벼운 마음으로 페달을 밟아 나아가기만 하면 된다.
이화령의 내리막길을 달릴 때 캠코더로 찍고 싶었는데, 자칫 잘못하면 큰 사고가 날 거 같아 찍지 못했다. 하지만 이곳에선 찍어야겠다고 맘을 먹었다. 다운힐의 짜릿한 순간을 남기지 못하면 후회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캠코더를 끈으로 동여 매 바람 저항에도 날아가지 않도록 단단히 묶은 후에 촬영을 시작했다. 내려가는 속도가 있다 보니 공기 저항으로 캠코더가 자꾸 옆으로 돌아가려 하기에 한 손으로는 캠코더를 붙잡고 한 손으로 핸들을 잡고 내려간다. 위험한 상황임을 알기에 최대한 온몸의 신경을 곤두세운다. 다행히도 촬영도 순조롭게 잘 되었고 나름 다운힐의 짜릿함도 느낄 수 있었으니 이석이조다.
▲ 다운힐의 쾌감을 담았다. 지훈이는 여유가 있는지 맞은 편에서 오는 여행객에게 인사를 건넨다.
현세 먹는 것의 소중함을 깨닫다
오늘은 드디어 작년 도보여행의 종착점이었던 충주에 들어가는 날이다. 도보여행이 끝난 곳에서 자전거 여행이 시작된다는 상징성이 있고, 어찌 되었든 한 번 왔던 곳이기에 낯섦이 아닌 친근함이 있다.
수안보에 와서는 잠깐 회의를 했다. 이미 준영이는 이곳에 가족여행을 와본 적이 있다고 하더라. 그래서 음식점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어서 이곳에서 점심을 먹기로 게스트하우스에서 출발 전부터 계획해놓고 있었다. 메뉴를 정하는데, 서로의 의견이 쉽게 일치하지 않아 수안보 근처를 돌아다니며 음식점을 찾기로 했다. 그때 맘에 드는 백반집을 찾아 그곳에 김치찌개, 된장찌개 등을 시켜서 먹었다. 현세와 재욱이는 밥 한 공기를 더 시켜서 먹었고, 준영이는 무려 네 공기를 더 시켜서 먹었다. 확실히 체력 소모가 많은 여행이다 보니, 아이들은 먹을 기회가 있으면 배불리 먹으려 한다.
▲ 수안보에서 배불리 먹었다. "밥 한 공기 추가요"를 외치는 현세.
현세의 경우 자전거 여행 중 식성이 바뀐 대표적인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자전거 여행 전에는 밥은 거의 1/3 공기만 먹고 거의 군것질을 하는 정도였다. 그래서 그땐 “식탐이 별로 없어요”라는 말을 했었고 ‘먹고 싶은 것은 언제든 먹을 수 있으니 그런가 보다’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자전거 여행을 하면서는 밥 두 공기는 보통이고 반찬들도 어떻게든 많이 먹으려 하더라. 그래서 물어보니 “언제든 먹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자전거 여행이라 힘도 많이 드니 먹을 수 있을 때 먹어두려구요”라고 말했다. 이렇게 바뀐 식성은 자전거 여행이 끝나고 일상으로 돌아와서도 그대로 유지 되었다. 예전엔 피자를 시키면 한 두 조각 정도만 먹었을 텐데, 이젠 먹을 수 있는 만큼 많이 먹게 되었으니 말이다. 흔히 이런 경우 ‘키가 크려나 보다’라고 말할 테지만, 난 ‘여행이 먹는 것의 소중함을 알게 했다’고 정리한다.
▲ 이제부터는 평지를 달려 충주로 들어간다. 익숙한 곳으로 간다는 것은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여행 중 처음으로 여유로운 오후 시간을 보내다
밥을 먹고 2시 30분에 출발했다. 29.75km만 남았기에 아무리 천천히 가도 6시면 충분히 도착할 수 있다.
4일간의 여행 중 3일 동안은 늘 시간에 쫓기며 여행을 해야 했다. 첫째 날엔 준영이 자전거를 고치고, 낙동강 자전거길을 찾느라 늦게 출발하여 늦었고, 둘째 날엔 연쇄적으로 펑크가 나는 바람에 무려 6시간을 고친다고 애쓰느라 늦었고, 셋째 날엔 특별한 일은 없었지만 둘째 날의 여파로 대부분의 자전거를 수리하느라 늦었다. 그에 비하면 오늘은 완전 수월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 날들에 비하면 오늘은 시간에 쫓길 이유도, 어떤 피치 못할 상황에 당황할 이유도 없는 아주 무난한 날이다.
▲ 달천이 팔봉교를 지난다. 기암괴석이 장난 아니다.
5시 20분에 탄금대에 도착하여 신립장군동상이 있는 곳까지 산책을 한 후에 근처 편의점에서 저녁을 먹고 찜질방에 들어왔다. 7시도 되지 않았는데 찜질방에서 뭘 하면 저녁시간을 보낼지가 은근 걱정이 된다.
여행이 중반에 접어들었다. 내일부턴 우리가 걸었던 길을 거슬러 달려간다고 생각하니 마음도 한결 가볍다. 원래 여주에서는 도보여행 때 잠을 잤던 ‘남한강황토불한증막’에서 잠을 자려 했다. 그곳은 현세 말로 정리하면 “1층에서 잠을 잤는데, 깨어보니 2층이었어요”라는 추억이 있다. 하지만 오늘도 내일도 찜질방에서 자면 피로가 전혀 풀리지 않을 것 같아, 내일은 여주에 있는 모텔에서 자기로 했다. 이래저래 편안한 밤이다.
▲ 탄금대엔 산책을 하러 왔다. 모처럼 여유가 있는 저녁 시간이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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