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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낙동강따라 한강까지 자전거 여행기 - 30. 이화령에서 붙인 ‘부모님께 쓰는 영상편지’ 본문

연재/여행 속에 답이 있다

낙동강따라 한강까지 자전거 여행기 - 30. 이화령에서 붙인 ‘부모님께 쓰는 영상편지’

건방진방랑자 2019. 10. 21.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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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이화령에서 붙인 부모님께 쓰는 영상편지

 

 

 

10월 7일(수) 문경새재게스트하우스 → 충주시

 

 

나에게 만약 이런 미션이 주어졌다면, 카메라 구도는 어떻게 할지, 어떤 말을 할지 고민을 할 것이다. 그만큼 자연스럽게 해도 되는 이야기도 어떻게든 생각을 다듬어야만 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에 바로 달려들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 그 영상은 한결 긴장되고 무거운 영상이 될 것은 뻔하다. 그건 그냥 솔직하게 나를 드러내지 못하는 나의 심리가 담겨 있다고 볼 수 있다.

 

 

 

꾸미지 않음에, 과장되지 않음에, 진실이 담겨진 영상편지

 

하지만 아이들은 전혀 그러지 않았다. ‘놀이하는 인간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솔직히 진지하지 않다고 비판할 수도 있지만, 오히려 그렇게 자연스럽게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그걸 그대로 보여줄 수 있는 것은 건강하다는 뜻이다. 아이들은 놀이를 하듯 한 명 한 명 달려들어 영상을 찍기 시작했다. 민석이는 몇 번이고 되풀이 하여 찍었고 재욱이는 한 번 재촬영을 했으며, 현세와 준영이는 한 번에 바로 찍었다. 구구절절하지만 그렇다고 판에 박힌 말만 하지도 않았다.

 

 

호모루덴스들의 '영상편지 한 마당' 건강하고 활발발한 정신을 지닌 존재들.

 

 

현세는 말을 하다가 말문이 막혔는지, “할 말 없으니까, 키워줘서 고마워라는 말을 하여 한바탕 웃음을 줬고, 재욱이는 엄마랑 같이 다시 이화령에 오고 싶다는 말로 저 녀석이 저런 말도 다 하네.’라는 감동을 안겨줬으나 곧바로 물론, 차 타고!”라는 반전으로 넋을 빼놓았으며, 준영이는 엄마 아빠 안녕! 집에 가서 봐~ 빠빠~”라며 하이쿠 같은 간단의 미학을 보여줬고, 민석이는 일반적인 영상 편지 형식을 따라가며 저 녀석이 웬일로 진지하게 하지?’라고 의문스러워할 즈음에 특히나 엄마 밥이 맛있다고 느껴질지 꿈에도 몰랐어요라는 깨알 같은 디스정신dis spirit을 잊지 않아 배를 잡고 구르게 만들었다.

아이들에겐 영상 찍는 미션이 어떤 진지하고 무겁고 어렵기만 한 것이 아니었다. 그들의 그런 놀이정신을 나는 사랑한다. 그리고 놀이정신 그 가운데에, 진심도 열정도 함께 들어 있다고 생각한다.

 

 

 

영상편지는 위의 영상에서 관람할 수 있다. 

 

 

 

힘들었던 만큼, 짜릿한 다운힐 라이딩!

 

미션까지 완료했으니 이젠 이화령 고개를 내려가면 된다. 자전거의 좋은 점은 내려갈 땐 속도감을 온전히 느낄 수 있으며, 바람을 온 몸으로 맞으며 쾌감을 만끽할 수 있다는 점이다. 올라올 때 힘들었던 만큼 내려갈 땐 완전 짜릿했다. ‘티 익스프레스의 최고 속도는 100km가 넘는다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인위적인 속도이며 내가 컨트롤 할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기에 무섭긴 하되 정신은 없다. 하지만 다운힐 라이딩의 최고속도는 60km지만 모든 걸 내가 컨트롤할 수 있기에 무서움보단 짜릿함이 느껴진다.

 

 

경북에서 시작했는데, 드디어 충북에 들어섰다.

 

 

올라갈 땐 50분 정도가 걸렸는데, 내려올 땐 15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다. 행촌교차로 인증센터가 보여 아이들은 그곳에 인증도장을 찍으러 갔고, 나는 잠시 짐을 정리하기 위해 가방을 풀었다. 그때 확인해 보니, 펑크패치용 본드가 공구가방에 흘러 굳은 상태더라. 월요일에 펑크를 늦은 저녁까지 때웠었는데, 그때 뚜껑을 잘 닫지 않고 넣었었나 보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버려야 했다. 그때 두 가지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설마 이제 여행도 막바지를 향해 가고 있는데, 펑크가 나겠어라는 생각과, ‘오늘은 충주 시내로 들어가니 자전거점에서 하나 사야겠다는 생각 말이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그 때 잠시 스쳤던 생각이고, 곧 다시 달리게 되면서 본드가 없다는 사실은 감쪽같이 잊고 말았다. 하지만 그 별 것 아닌 것 같은 사건이 다음 날 엄청난 일을 불러일으키게 되니, 삶은 그래서 알다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기에 늘 준비해야 한다는 판에 박힌 결론은 내리고 싶지 않다. 누구든 그 일을 경험하고 싶어 경험하는 경우는 별로 없지 않은가. 단지 어떤 일이든 내 예상과 다르게 겪을 수밖에 없고, 그걸 극복해나갈 수밖에 없다. 그런 순간에 주위의 사람들과 그걸 얼마나 잘 극복해 나가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그럴 수만 있다면 차라리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 밍밍한 여행이 되어 아무 기억도 없는 것보다 그런 어려움을 함께 헤쳐나간 기억이 있는 게 훨씬 여행의 의미에 적합하다고 생각한다.

이제 다시 소조령이라는 산을 올라야 한다. 다시 이를 악물고 저속기어로 바꾼 후 페달을 밝는다. 어느덧 우린 영남지방을 벗어나 충청도로 들어섰다.

 

 

인증도장을 찍고 소조령을 바라보고 있다. 또 열심히 달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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