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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강따라 한강까지 자전거 여행기 - 49. 감정이 팔팔 끓기에 사람이다 본문

연재/여행 속에 답이 있다

낙동강따라 한강까지 자전거 여행기 - 49. 감정이 팔팔 끓기에 사람이다

건방진방랑자 2019. 10. 21.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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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감정이 팔팔 끓기에 사람이다

 

 

 

여주 → 양평 배로농원  / 58.04km

 

 

한참 달리다 보니 작년 도보여행 때 남한강 홍보영상을 찍었던 이포보를 지나서 달린다. 이미 시간은 3시가 넘었지만 아직 점심은 먹지 않았다. 그쯤 되니 아이들 사이에 의견이 분분해진다. 점심을 먹고 가자니 펜션에 도착하는 시간이 늦어지고, 펜션에 일찍 가서 저녁을 거하게 먹자니 지금 당장 배가 고프다. 그래서 결국 양평에서 점심을 먹고 가는 것으로 정했다.

 

 

 

 도보여행의 추억이 있는 이포보를 지나서 달린다.

 

 

 

재욱이와 현세가 감정으로 엉키다

 

양평읍내로 들어가 식당을 찾아 헤맸다. 조금 헤매니 김밥천국처럼 많은 메뉴를 시킬 수 있는 음식점이 보여 그리로 들어갔다. 이미 시간은 430분이 되었다. 점심치고는 늦은 점심이지만 그만큼 맛있었다. 다 먹고 준영이는 근육이 욱신거린다고 하여 멘소래담을 사러 음식점을 나가려 준비했다. 그때 재욱이와 현세가 갑자기 큰소리를 내며 싸우기 시작한다.

발단은 훈민정음 미션과 관련이 있었다. 비속어를 쓰면 벌점을 받는 미션으로 내가 직접 들으면 바로 체크하여 벌점을 주지만, 내가 듣지 못하고 다른 아이들만 들은 경우가 문제가 됐다. 그 경우 아이들은 비속어를 썼다고 나에게 말하게 되는데, 비속어를 쓴 당사자는 일러바치는 상대방의 행동이 고깝게 보였던 것이다. 훈민정음 미션이 시작됐을 때부터 이때까지 누군가 일러바치는 상황이 연거푸 발생하니 감정이 쌓여 있다가 이때 폭발하여 현세와 싸우게 됐다. 현세도 깡다구라면 뒤지지 않으니 재욱이에게 성질을 내며 달려들고, 그러면 그럴수록 재욱이도 화가 나서 더 강하게 부딪히게 되었다. 결국 싸움을 말림으로 일단락되었지만, 편의점에 들어간 현세는 재욱에 대해 여전히 화가 난 것처럼 말하더라.

 

 

늦은 점심을 먹기 위해 양평읍으로 들어서고 있다. 도보여행은 여기서부터 시작했었다.

 

그런데 편의점에서 간식을 사고 나오자마자 재욱이 옆에 가더니 , 내가 잘못했어라고 순식간에 사과를 한 것이고, 재욱이도 니가 그렇게 말하니, 내가 어떻게 해야 할 줄을 모르겠다며 받아들였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서로 심하게 갈등을 일으키던 상황이었는데 갑자기 사과한 이유가 궁금하여 현세에게 물어보니, “어색한 관계가 싫어서 그랬어요라고 대답하더라.

사람은 누구나 할 것 없이 팔팔 끓는 감정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 감정이 어디로 튈지, 그래서 어떤 상황을 만들어낼지 모르는 것이다. 그걸 누군가는 시한폭탄이라 표현하기도 하지만, ‘폭탄이란 느낌보다 그만큼 뜨거운 가슴을 지니고 있다는 긍정적인 표현이 더 어울릴 것 같다. 물론 재욱이든 현세든 완벽한 사람은 아니다. 자라며 더 커갈 것이고, 지금보다 더 많은 갈등 상황을 경험하며 슬기롭게 극복해나가는 방법을 알게 될 것이다.

 

 

밥을 먹고 났더니, 다시 어둠이 내리기 시작한다.

 

 

 

 

자전거 여행 마지막 저녁까지 늦은 시간에 도착하다

 

여주에서 양평으로 가는 길은 익숙한 길이다. 2009년엔 국토종단을 하며 6번 국도를 따라 걸었던 곳이자, 작년엔 도보여행 때는 자전거 길(구중앙선 철도)을 따라 걸었던 곳이다. 그런 익숙한 길을 간다는 건 맘에 안정감을 준다.

그곳에서 얼마를 달리니 국토종단 때 신세를 졌던 오빈교회가 보이더라. 거기서 목사님과 밤늦도록 종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의 신앙이 어떤지 확인했던 곳이라 기억에 난다. 생각 같아선 들어가 인사를 하고 싶었지만, 자전거 여행 중이어서 몰골도 몰골이고 이젠 시간이 꽤 지나 목사님은 내가 누군지 모를 것이기에 들어가진 않았다.

 

 

이미 6년이 지났다. 그런데 그 때의 고마움은 여전히 남아있다.

 

 

펜션은 양평역 근처에 있다. 양평역에 도착하니 어느덧 시간은 7시가 넘었다. 오늘만큼은 좀 일찍 들어가서 쉬나 했더니, 자전거 여행 내내 한 번도 일찍 숙소에 도착한 적이 없게 되었다. 오늘은 맞바람이 가장 큰 변수였고, 마지막 날이라 최대한 여유를 부리며 달리다 보니, 그랬던 것이다.

양평역 근처의 슈퍼에서 먹을거리를 잔뜩 사서 펜션으로 향한다. 펜션은 북한강 변에 자리하고 있으며 길에서 바로 보이는 게 아니라 꽤 깊이 들어가야 나온다. 그러다 보니 수도권임에도 전화도 잘 되지 않는 곳이었다. 그래서 건물에서 나와 밑으로 조금 더 내려와야만 겨우 안테나가 뜨기 시작한다. 아이들은 어제 통닭을 먹었음에도 오늘도 통닭이 먹고 싶다고 하여 전화도 잘 되지 않는 그곳에서 안테나 찾아 삼 만리를 하다가 기어코 통화가 되어 주문을 했다.

 

 

구중앙선을 따라 가는 길이라, 터널이 많다. 잘 정비되어 꼭 환상체험을 하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준영이와 현세가 감정으로 엉키다

 

펜션에 거의 왔을 때 아침에 비 예보가 있는데 몇 시에 출발할까?”라고 물어봤다. 그랬더니, “새벽에 출발합시다라고 민석이가 강하게 말하더라. 비가 오기 전에 아예 끝내자는 얘기였는데, 새벽엔 아무래도 깜짝 이벤트를 준비하기에 시간이 부족하여 그렇게 할 순 없었다. 그래서 결국 6시에 출발하는 걸로 정했고 그에 따라 5시에 일어나기로 했다.

나의 경우 기상시간을 정하는 게 급했던 데 반해, 아이들의 관심은 오로지 스마트폰에만 있었다. 아무래도 문경새재게스트하우스에서 출발할 때 스마트폰을 압수하며 펜션에 도착하면 바로 돌려줄게라고 했기에, 아이들은 펜션=스마트폰을 할 수 있는 곳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자전거에서 짐을 풀자마자 바로 숙소로 올라왔고 챙길 것이 많은 준영이는 한참이 걸리도록 올라오지 않았다. 이때 현세가 먼저 스마트폰을 달라고 왔기에, 모든 스마트폰을 주며 좀 있다가 준영이가 오면 전해줘라고 말했다.

조금 있으니 준영이가 왔고 역시나 스마트폰을 달라고 하더라. “아까 현세에게 줬으니, 현세에게 달라고 해라고 말해줬다. 그랬더니 준영이는 현세에게 명령조로 스마트폰 갖다 줘라고 말했고, 현세는 아니꼽다는 말투로 내가 왜 갖다 줘야 해라고 버티는 상황이 되었다. 솔직히 그 순간엔 그게 하나의 시발점이 될 거라곤 생각도 못했다. 자전거 여행을 통해 어느 정도 친해졌을 거라고, 그래서 어느 정도 이해하게 되었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실제론 서로 감정이 안 좋았다. 준영이는 현세가 너무 형들에게 깝친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며, 현세는 준영이가 너무 잘난 체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작년에 남한강 도보여행 후의 파티 사진. 마지막은 이런 느낌인데, 이 날은 그러지 못해 아쉬웠다.

 

 

 

엉키면 폭발하지만 그럼에도 함께 봐야 한다

 

그런 식으로 감정이 쌓인 상황에서 부딪힌 것이니, 내 생각처럼 쉽게 끝날 리는 없었다. 결국 둘은 폭발하여 어느 순간 뒤엉키기 시작하더니 치고 박고 싸웠다. 너무 순식간에 일어난 상황이라 당황스러웠다.

감정과 감정이 마주치면 상승작용을 일으키며 폭발하게 된다. 그때 그 폭발된 감정이 상대방 때문이라고 쉽게 얘기할 테지만, 알고 보면 자신의 여러 상황들이 만들어낸 감정일 수밖에 없다. 팔팔 끓는 감정은 그래서 때론 열정적으로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추진력이기도 하지만, 때론 폭력성이기도 한다. 긴 시간동안 체력을 써야 하는 여행을 하며 긴장했던 탓도 있을 것이고, 내일이면 끝난다는 안도감으로 느슨해진 탓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오후엔 재욱이와 현세가, 저녁엔 준영이와 현세가 부딪히게 된 거다. 당연히 가운데 껴 들어가 둘의 싸움을 말렸다. 그러자 준영이는 마음을 가다듬고 오겠다며 밖으로 나가더라.

이 때문에 축제의 분위기를 만끽하며 축배를 들어야할 파티는 살얼음판처럼 냉기가 흐르는 분위기로 바뀌었다. 준영이는 바람을 쐰다며 조금 있다가 들어온다고 하기에, 세 명의 아이들만 통닭을 먹으며 그 모습을 담아야 했다. 아이들은 통닭을 먹는 둥 마는 둥 하다가 먼저 자리를 펴고 누워 잠을 자기 시작했고, 그때서야 준영이가 들어와 통닭을 먹더라. 그렇게 우리는 어색한 시간을 함께 경험하며 자전거 여행의 마지막 밤을 아무런 얘기도 없이 보내야 했다.

 

 

고기도 굽지 않고 통닭을 먹는 조촐한 파티, 거기다가 4명이서 함께 즐기진 못해도, 마지막이란 느낌은 정말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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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사진

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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