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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강따라 한강까지 자전거 여행기 - 26. ‘없음’으로써 ‘쓰임’으로 삼는 지혜 본문

연재/여행 속에 답이 있다

낙동강따라 한강까지 자전거 여행기 - 26. ‘없음’으로써 ‘쓰임’으로 삼는 지혜

건방진방랑자 2019. 10. 21.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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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없음으로써 쓰임으로 삼는 지혜

 

 

 

10월 7일(수) 문경새재게스트하우스 → 충주시

 

 

일요일에 낙동강 자전거 길에 도착했을 때, 스마트폰 사용에 대해 규칙을 정했다. 사용할 수 있는 건 음악을 듣거나, 지도를 찾는 것뿐이며 한 명이라도 다른 용도로 사용할 경우 스마트폰을 압수하겠다고 한 것이다. 원래는 여행 시작부터 스마트폰을 압수할 생각이었는데, 민석이가 지도도 봐야 하고, 쓸 데가 많은데 그건 너무한 거 같아요라고 이의제기를 해서 그와 같이 규칙을 정한 것이다.

 

 

게스트하우스 마당에서 보면 문경새재가 보인다.

 

 

 

스마트폰이 끊임없이 눈과 의식을 지배한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며 이제는 아무렇지 않게 전화도 하고, 인터넷도 하게 되었다.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게 더 이상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게 된 것이다. 여행을 하는 동안 스마트폰 사용을 자제했으면 하는 이유는 작은 화면에 나의 의식이 갇혀 주위의 풍경을 보지 못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무관심해지기 때문이다.

여행을 떠나는 이유는 평소엔 미처 보지 못했던 풍경들에 마음을 뺐기고, 일상처럼 흘려보내던 내 감정을 맘껏 느끼며, 늘 같이 있어 무뎌진 상대방의 다른 면모를 보기 위해서다. 그러려면 마음의 여유가 필요하고 정신적인 자유가 필요하다. 빈 공간이 있을 때 비로소 어떤 감정들이 어릴 수 있으니 말이다.

 

 

쇠귀 선생님은 16년 1월 15일에 잠드셨다. 이젠 그의 정신을 지금 세상에 어떻게 계승하냐가 남았다.

 

   

三十輻共一轂 當其無, 有車之用. 埏埴以爲器, 當其無, 有器之用

삼십 개의 바퀴살이 하나의 바퀴통에 모이는데 바퀴통 속이 비어있음에 수레로서의 유용함이 있다. 찰흙을 이겨서 그릇을 만드는데, 그 그릇이 비어있음에 그릇으로서의 유용함이 있다. -노자11

흙을 이겨서 그릇을 만드는 경우, 그릇으로서의 쓰임새는 그릇 가운데를 비움으로써 생긴다. ‘없음으로써 쓰임으로 삼는 지혜. 그 여백 있는 생각. 그 유원幽遠한 경지가 부럽습니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신영복, 돌베개출판사, 2010

 

 

자본주의 사회의 기본 마인드는 소유하라. 지식을 끊임없이 소유해야 하고 자본을 끊임없이 소유해야 하며, 관계를 끊임없이 소유해야 한다. 많이 소유하면 소유할수록 유능한 사람으로 대우받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은 무능하며 게으른 사람으로 낙인찍힌다. 이런 사회야말로 전우치란 영화에서 전우치가 말한 것처럼, “우환이 많은 세상일 수밖에 없지만, 누구도 이에 대해 반론을 제기하지 못한다.

하지만 무언가 새로운 생각이 어리고, 새로운 관계를 창안하며, 현실의 무게가 아닌 쾌활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비워낼 수 있는 용기도 필요한 법이다. 그릇의 쓰임은 그릇을 비워냄으로 생기고, 바퀴의 쓰임도 바퀴통의 중앙을 비워냄으로 생긴다. 이처럼 사람도 자의식을 지우고, 앎을 버리고, 지식의 파편을 비워내며, 관계를 끊어낼 때 비로소 쓰임을 찾게 된다. 비워냄으로 여유가 생기고 여백을 지님으로 생각이 넉넉해질 수 있기에, 되도록 아이들이 스마트폰을 쓰지 않았으면 했던 것이다.

하지만 스마트폰의 작은 화면 속에 아이들의 시선이 머물고, 끊임없이 새로운 자극들이 의식을 지배하면서 아이들은 여행을 떠났으면서도 여행을 떠나지 않은 것과 같아지고 말았다. 그래서 이젠 결단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낙동강-한강 자전거 여행] 영상의 한 장면. 핸드폰에 대한 규칙을 얘기하고 있다.

 

 

 

스마트폰 사라지자 이야기 소리가 들려 온다

 

하지만 잠시 망설였다. 분명히 압수한다고 하면 아이들과 부딪힐 건 뻔했기 때문이다. ‘감정싸움으로 번져 기분까지 상해가면서 여행을 할 필요가 있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찌 보면 나도 어느 순간부턴 분란을 만들기 싫어하게 됐다. 그래서 아닌 걸 알지만 그냥 놔둘 때도 있고, 그냥 인정해버릴 때도 있다. 더욱이 지금처럼 스마트폰을 빼앗지 않아도 여행을 하는 데엔 전혀 지장이 없을 땐 더욱 더 뭘 굳이 그렇게까지라는 생각이 든다. 그만큼 어느 부분에선 포기하게 되었다는 말이다.

하지만 아이들도 이미 자신들의 행동이 도를 넘어섰다는 것을 알고 있고, 이걸 그대로 놔둔 상태로 여행을 했다간 이도저도 아닐 것 같아서 압수하기로 맘먹었다. 그래서 살짝 이젠 아무렇지도 않게 대놓고 쓰는 상황이 되었으니, 오늘부터 펜션에 도착할 때까지는 스마트폰을 압수할 거야라고 운을 뗐다.

아이들의 반응을 지켜보니, 가장 극렬하게 거부할 거 같던 민석이는 오히려 쿨하게 너무 막 쓰긴 했어라며 바로 줬고, 현세도 그러면 지금 좀 더 웹툰을 봐둬야지라며 그 상황을 받아들였으며 준영이는 오늘 리더이기에 스마트폰을 내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오히려 재욱이가 극한 반응을 보이더라. 자신은 음악만 듣고, 지도만 찾았는데 억울하다는 거였다. 그러면서 음악도 못 듣고, 지도도 못 보면 자전거는 무슨 재미로 타요?”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미 모두 다 내는 분위기였기에 재욱이도 불퉁불퉁 대다가 결국 스마트폰을 냈다.

 

 

[낙동강-한강 자전거 여행] 영상의 한 장면. 재욱이까지 핸드폰을 내며 압수는 큰 갈등 없이 할 수 있었다. 이게 신의 한 수였다는 사실.

 

 

어쨌든 이때 스마트폰을 압수한 건 신의 한 수였다. 어제까지만 해도 각자 스마트폰으로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자전거를 탔기 때문에 비트가 강한 음악이 하루 종일 나와서 어지러울 지경이었는데 이때부턴 자연의 소리를 들으며 조용히 자전거를 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어디 이뿐인가? 이젠 음악을 듣질 못하니, 준영이가 가져온 라디오를 들으려 몰려들기도 하고, 그조차 여의치 못할 땐 아카펠라를 부르며 가기도 했다. 스마트폰이 사라지며 눈과 의식이 놓여나자 비로소 아이들의 이야기소리와 웃음소리가 되돌아온 것이다.

중반기에 접어든 자전거 여행은 스마트폰에서 해방된 채 이렇게 시작되었다. 오늘은 가장 고난이도라는 이화령과 소조령 두 개의 산을 넘어야 한다. 신나게 달려보자.

 

 

출발 준비 완료. 4일째 여행 본격적으로 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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