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 닫는 글: 반복할 수 있는 조건
2015년 10월 4일부터 10일까지 6박 7일간의 일정으로 떠났던 자전거 여행, 그리고 2015년 10월 24일에 쓰기 시작하여, 본격적으론 2016년 1월 3일부터 2월 18일까지 한 달 보름동안 썼던 자전거 여행기는 ‘반복적으로 선을 긋는 행위’가 어떤 결과를 낳는지 고스란히 보여준다.
▲ 애셔의 작품 [그림 그리는 손], 애셔의 작품은 기이한 형태를 띠고 있다. 기하학적인 순환인데, 이게 바로 반복의 느낌과 비슷하다.
반복할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여행을 떠나기 전까지만 해도 ‘과연 낙동강을 따라 남한강까지 간다는 게 가능할까?’라는 걱정이 앞섰고, 여행기를 쓰기 전까지만 해도 ‘그 때의 기억을 어떻게 남길까?’라는 고민이 들었다. 그런데 자전거 여행도 순조롭게 마칠 수 있었고, 여행기도 부침은 있었지만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 결과만 놓고 보면 ‘엄두도 나지 않던 일’을 해낸 것 같지만, 실상 과정을 이야기하면 작은 몸짓 하나 하나가 쌓이고 쌓인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바로 이런 생각에서부터 시작하면 된다. 지레 겁먹을 필요도, 나는 아직 준비가 안 됐다며 뺄 필요도 없다. 지금 내가 선 자리에서 무엇이든 시작하면 되니 말이다. 페달을 밟는 반복된 행위를 통해 대구에서 서울까지 오게 되었듯, 끼적거리는 반복된 행위를 통해 여행기를 마치게 되었듯이, 지금 자기가 할 수 있는 가장 단순한 일부터 반복해서 하면 된다.
▲ 페달을 밟는 반복된 행위를 통해 우린 대구에서 서울까지 올 수 있었다.
반복할 수 있는 힘, 마음 찾기
어떤 일을 시작하려 할 때 일반적으론 ‘계획을 세우고 실행한 후, 결과를 평가하고 피드백하여 다시 계획을 수립한다’와 같이 ‘계획→실행→평가→피드백→계획→실행……’의 방법을 얘기해줄 테지만, 그런 기술적인 부분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마음이 바로 서있으면 어떻게든 반복적인 행위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떤 일을 하다가 중간에 그만 둘 경우, ‘이런 프로세서 중에 한 부분이 잘못되어 끝까지 하지 못했다’고 판단하기보다 ‘마음을 아직 다잡지 못했구나’라고 판단해야 맞다.
그럼 이쯤에서 ‘여는 글’에서 얘기했던 『맹자孟子』에 나오는 글의 전문을 함께 보도록 하자.
맹자가 “인이란 사람의 마음이고 의란 사람의 길이다. 그 길(의)을 버리고 가려 하지 않고 그 마음(인)을 잃고서도 찾을 줄을 모르니, 슬프구나!
사람이 닭과 개를 잃어버리면 그것을 찾을 줄을 알지만, 마음을 잃고서도 찾을 줄을 모른다. 학문의 길이란 다른 게 없다. 그 잃어버린 마음을 찾는 것뿐이다.”라고 말했다.
孟子曰:“仁, 人心也; 義, 人路也. 舍其路而弗由, 放其心而不知求, 哀哉! 人有雞犬放, 則知求之; 有放心, 而不知求. 學問之道無他, 求其放心而已矣.”- 『孟子』 「告子章句上」11
일을 시작할 때 우린 위에서 얘기한 일반적인 프로세서에 따라 무턱대고 계획부터 세우려 한다. 우리에게 방학은 계획표를 세우는 일부터 시작됐던 것을 상기해보면 쉽게 이해가 될 것이다. 방학 계획표를 세울 때 우리는 한 번도 ‘어떤 방학을 보내고 싶지?’, ‘방학에 하고 싶은 게 뭐지?’라고 스스로에게 물어본 적은 없이, 그저 시간 단위로 잘게 나누어 해야 할 것들을 배치하곤 했다. ‘그런 고민을 해야 할 시간에 그냥 한 자라도 더 공부해’라는 부모의 핀잔을 들으며, 그런 물음 자체가 정답이 없는 물음이기에 괜한 시간낭비라 생각하며 더 이상 고민하지 않게 되었다. 한 번도 그와 같은 고민을 해보지 못한 어른이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그와 같은 쏘아붙임과 무시였던 것이다.
▲ 우린 당연히 어떤 상황이 되면 마음을 찾기 보다 계획을 먼저 짜기에 바빴다.
이런 현실에 대해 맹자는 “학문의 방법이란 잃어버린 마음을 찾는 것뿐이다”고 단호하게 말하며 선을 긋는다. 그가 이야기를 전개하는 과정은 간단명료하다. ‘인간이라면 당연히 인仁과 의義가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 후, 당연히 있어야 할 것이 사라져 버려서 빈껍데기만 남았는데 어떻게 공부가 되겠냐는 것이다.
이 경문에 주희朱熹는 “학문을 한다는 게 본디 하나의 방법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방법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놓쳐버린 마음을 구하는 데에 있을 뿐이다. 그렇기에 마음을 찾는다면, 의지가 맑고도 밝아지며, 의리가 밝게 드러나 고고한 이치에 가 닿을 수 있다. 그렇게 하지 못하면 혼돈에 빠지고 맘대로 행동하게 되어 비록 공부를 하려 한들 마침내는 깨우치는 게 하나도 없게 된다(學問之事, 固非一端, 然其道則在於求其放心而已. 蓋能如是則志氣淸明, 義理昭著, 而可以上達; 不然則昏昧放逸, 雖曰從事於學, 而終不能有所發明矣.).”고 주註를 달았다. 이미 마음을 바로 잡은 후에 공부한다면, 단순히 지식 하나를 알고 시험 점수를 잘 받는 정도에 그치는 게 아니라 자신의 심기를 세우며 이치를 깨우치며 세상을 밝게 비치는 데까지 이르게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마음을 잃은 상태에서 공부한다면, 아무리 배우려 애쓴다 하더라도 어떤 것도 배우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
유학儒學(조선이 교조화 시킨 통치로서의 유학이 아닌 철학으로서의 유학)의 기본적인 생각은 ‘기초적인 학문을 배움으로 고고한 이치에까지 이른다(下學而上達 『논어』 「헌문」 37)’는 것이다. 맹자는 이런 기본적인 생각에 ‘잃어버린 마음을 되찾은 후에야 비로소 배울 수 있다’는 생각을 덧붙인 것이다. 잃어버린 마음을 찾는다는 것은 알고 보면, 빈껍데기로 남아 있는 자신의 알맹이를 채우는 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떤 일을 시작하려는 사람에게 ‘계획은 뭐니?’, ‘계획은 잘 짰어?’라고 물을 게 아니라, ‘마음은 정했어?’라고 물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런 물음을 통해 자신의 마음을 다시 한 번 되짚어 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 배움의 방법은 다른 게 없다. 잃어버린 마음을 찾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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