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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생전蔣生傳 - 惺所覆瓿藁 본문

한문놀이터/인물

장생전蔣生傳 - 惺所覆瓿藁

건방진방랑자 2019. 11. 13. 0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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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생의 이야기

蔣生傳

 

장생의 과거

蔣生不知何許人. 己丑年間, 往來都下, 以乞食爲事. 問其名則吾亦不知, 問其祖父居住則曰: “父爲密陽座首, 生我三歲而母沒, 父惑婢妾之譖, 黜我莊奴家. 十五, 奴爲娶民女, 數歲婦死, 因流至湖南西數十州, 今抵洛矣.”

其貌甚都秀, 眉目如畫, 善談笑捷給, 尤工謳, 發聲凄絶動人. 常被紫錦裌衣, 寒暑不易. 凡倡店姬廊, 靡不歷入慣交. 遇酒輒自引滿, 發唱極其懽而去.

 

모사의 끝판왕

或於酒半, 效盲卜醉巫懶儒棄婦乞者老仍所爲, 種種逼眞; 又以面孔學十八羅漢, 無不酷似; 又蹙口作笳簫箏琶鴻鵠鶖䳱鴉鶴等音, 難辨眞贗. 夜作鷄鳴狗吠, 則隣犬鷄皆鳴吠焉.

朝則出乞於野市, 一日所獲幾三四斗, 炊食數升, 則散他丐者, 故出則群乞兒尾之, 明日又如是, 人莫測其所爲.

 

잃어버린 노리개를 찾아주다

樂工李漢家, 有一叉鬟學胡琴, 朝夕與之熟.

一日, 失綴珠紫花鳳尾, 莫知所在. “蓋朝自街上來, 有俊年少調笑偎倚, 因而不見.” 啼哭不止.

生曰: “! 小兒何敢乃爾. 願娘無泣, 夕當袖來.” 翩然而去.

及夕, 招叉鬟出, 迤從西街傍景福西墻, 至神虎門角. 以大帶綰鬟之腰, 纏於左臂, 奮迅一踊, 飛入數重門, 時曛黑莫辨逕路, 倏抵慶會樓. 上有二年少秉燭相迓, 相視大噱, 因自梁上鑑嵌中出金珠羅絹甚多, 鬟所失鳳尾亦在焉, 年少自還之. 生曰: “二弟愼行止, 毋使世人瞰吾蹤也.”

遂引還飛出北城, 送還其家. 未明詣李家謝之, 則醉臥齁齁, 人亦不知夜出也.

 

죽었게 살았게?

壬辰四月初吉, 賖酒數㪷大醉, 攔街以舞, 唱歌不綴, 殆夜倒於水標橋上. 遲明, 人見之, 死已久矣. 屍爛爲蟲悉生翼飛去, 一夕皆盡, 唯衣襪在.

武人洪世熹者居于蓮花坊, 最與之昵. 四月, 李鎰防倭, 行至烏嶺, 見生芒屩曳杖, 握手甚喜曰: “吾實非死也, 向海東覓一國土去矣.”

因曰: “君今年不合死. 有兵禍, 向高林勿入水. 丁酉, 愼毋南來, 或有公幹, 勿登山城.” 言訖, 如飛而行, 須臾失所在.

果於琴臺之戰, 憶此言, 奔上山得免. 丁酉七月, 以禁軍在直, 致有旨於梧里相. 都忘其戒, 回至星州, 爲賊所迫, 黃石城有備, 疾馳入, 城陷倂命.

余少日狎游俠耶, 與之諧謔甚親, 悉覩其技, 噫其神矣! 卽古所謂劍仙者流耶. -惺所覆瓿藁

 

 

 

 

 

해석

 

장생의 과거

 

蔣生不知何許人.

장생은 어떤 사람인지 모른다.

 

己丑年間, 往來都下, 以乞食爲事.

기축(1589)년간에 서울 도읍 아래를 왕래하며 빌어먹는 것으로 일을 삼았다.

 

問其名則吾亦不知,

이름을 물으면 나는 또는 모르네.”라고 말했고,

 

問其祖父居住則曰: “父爲密陽座首[각주:1], 生我三歲而母沒,

조상의 거주지를 물으면 아버지는 밀양의 좌수가 되었는데 내가 태어난 지 3년에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父惑婢妾之譖, 黜我莊奴家.

아버지는 종과 첩의 모함에 빠져 나를 농장의 종 집으로 내쫓았네.

 

十五, 奴爲娶民女, 數歲婦死,

15살에 종으로 민가의 아녀자에게 장가들었는데 몇 년에 아내가 죽자

 

因流至湖南西數十州, 今抵洛矣.”

흘러 호남과 호서의 수십 고을을 지나 이제 서울에 왔지.”

 

其貌甚都秀, 眉目如畫,

모습은 매우 우아하고 고우며 눈썹과 눈은 그림 같으며

 

善談笑捷給, 尤工謳, 發聲凄絶動人.

담소를 잘했고 민첩하고도 재빨랐으며 더욱 노래를 잘해 소리를 내면 처량해 매우 사람을 감동시켰다.

 

常被紫錦裌衣, 寒暑不易.

항상 붉은 비단 겹옷을 입고서 추우나 더우나 바꾸지 않았다.

 

凡倡店姬廊, 靡不歷入慣交.

대체로 창기의 가게와 기생의 가게를 지나며 들어가 익숙히 사귀지 않음이 없었다.

 

遇酒輒自引滿, 發唱極其懽而去.

술자리를 만나면 문득 스스로 가득 마시고서 창을 하여 기쁘게 하고서야 떠났다.

 

 

 

모사의 끝판왕

 

或於酒半,

혹은 반쯤 취함에

 

效盲卜醉巫懶儒棄婦乞者老仍所爲, 種種逼眞;

맹인ㆍ점쟁이ㆍ무당ㆍ게으른 선비ㆍ소박맞은 아내ㆍ걸인ㆍ늙은이가 하는 걸 흉내 내니 하나하나 똑같았다.

 

又以面孔學十八羅漢, 無不酷似;

또한 가면을 쓰고 십팔나한을 흉내 내니 흡사하지 않음이 없었으며

 

又蹙口作笳簫箏琶鴻鵠鶖䳱鴉鶴等音,

또한 입을 오므려 피리ㆍ퉁소ㆍ아쟁ㆍ비파ㆍ기러기ㆍ고니ㆍ무수리ㆍ집오리ㆍ까마귀ㆍ학 등의 소리를 내니

 

難辨眞贗.

진위를 분간하기 어려웠다.

 

夜作鷄鳴狗吠, 則隣犬鷄皆鳴吠焉.

밤에 닭울음소리 개짖는 소리를 내면 이웃의 개와 닭이 일제히 울고 짖었다.

 

朝則出乞於野市, 一日所獲幾三四斗,

아침이면 야시장에 나가 비니 하루 만에 거의 삼사 말을 얻었고

 

炊食數升, 則散他丐者,

밥을 지으면 몇 되나 되니 다른 거지에게 나눠줬기 때문에

 

故出則群乞兒尾之,

거지떼가 꼬리를 물었다.

 

明日又如是, 人莫測其所爲.

다음날도 또한 이와 같았고 사람들은 하는 걸 헤아릴 수 없었다.

 

 

 

잃어버린 노리개를 찾아주다

 

樂工李漢家, 有一叉鬟學胡琴[각주:2],

일찍이 악공 이한의 집에 더부살이할 적에 한 쌍갈래로 쪽을 진 아이가 호금을 배우러

 

朝夕與之熟.

아침저녁으로 그와 함께 하여 친해졌다.

 

一日, 失綴珠紫花鳳尾, 莫知所在.

하루는 구슬이 달리고 붉은 꽃이 있는 봉황의 노리개를 잃고 있는 곳을 알질 못했다.

 

蓋朝自街上來,

계집이 말했다. “대체로 아침에 길에서부터 오다가

 

有俊年少調笑偎倚, 因而不見.”

준수한 소년이 웃음을 지으며 몸이 닿았는데 그 때문인지 보이지 않습니다.”

 

啼哭不止.

울기를 그치질 않았다.

 

生曰: “! 小兒何敢乃爾.

장생이 말했다. “! 어린놈의 자식들이 어찌 감히 이런 지경인가.

 

願娘無泣, 夕當袖來.”

원컨대 낭자는 울지 마시오. 저녁에 마땅히 소매에 넣고 오겠소.”

 

翩然而去.

나는 듯 떠났다.

 

及夕, 招叉鬟出,

저녁이 되어 머리 땋은 계집을 나오게 하고

 

迤從西街傍景福西墻, 至神虎門角.

서쪽 거리 곁의 경복궁 서쪽 담장을 따라 신호문의 모퉁이에 이르러

 

以大帶綰鬟之腰, 纏於左臂,

큰 띠로 계집의 허리를 묶고 왼 팔에 감고

 

奮迅一踊, 飛入數重門,

분주하고 빨리 한 번에 뛰어 몇 겹의 문을 날들 들어갔으니

 

時曛黑莫辨逕路, 倏抵慶會樓.

때는 어둑해 길을 분간하기 어려웠는데도 순식간에 경회루에 도착했다.

 

上有二年少秉燭相迓, 相視大噱,

위에 두 소년이 있어 촛불을 잡고 서로 맞이하며 서로 보며 껄껄 웃고선

 

因自梁上鑑嵌中出金珠羅絹甚多,

대들보 위의 뚫린 곳에서 금ㆍ구슬ㆍ비단ㆍ명주를 꺼내는데 매우 많았다.

 

鬟所失鳳尾亦在焉, 年少自還之.

계집이 잃은 봉황의 노리개도 또한 있었는데 소년들이 스스로 돌려줬다.

 

生曰: “二弟愼行止, 毋使世人瞰吾蹤也.”

장생이 두 아우는 행동거지를 삼가고 세상 사람들이 우리들의 행적을 엿보게 하지 말라.”라고 말했다.

 

遂引還飛出北城, 送還其家.

마침내 계집을 끌고 다시 날 듯 북성을 나가 그 집으로 돌려보냈다.

 

未明詣李家謝之, 則醉臥齁齁,

날이 밝지 않아 이씨의 집에 가서 사례하려 했지만 곤드레만드레 쿨쿨 자고 있어

 

人亦不知夜出也.

사람이 또한 밤에 나간 지를 몰랐다.

 

 

 

죽었게 살았게?

 

壬辰四月初吉, 賖酒數㪷大醉,

임진(1592)4월 초하루에 술 몇 말을 외상으로 사 만취하여

 

攔街以舞, 唱歌不綴,

길을 막고 춤췄고 창가를 멈추질 않다가

 

殆夜倒於水標橋上.

거의 밤이 되어 수표교 위에 이르렀다.

 

遲明, 人見之, 死已久矣.

천천히 밝아오자 사람이 그를 보니 죽은 지 이미 오래였다.

 

屍爛爲蟲悉生翼飛去,

시체가 문드러져 벌레가 되더니 모두 살아서 날아 사라지니

 

一夕皆盡, 唯衣襪在.

하루 저녁에 모두 사라져 오직 옷과 버선만 있었다.

 

武人洪世熹者居于蓮花坊, 最與之昵.

무인 홍세희라는 사람은 연화방에서 기거했는데 가장 그와 친했었다.

 

四月, 李鎰防倭, 行至烏嶺,

4월에 이일[각주:3]을 따라 왜적을 방어하는데 다녀 조령에 이르러

 

見生芒屩曳杖, 握手甚喜曰:

장생이 짚신 신고 지팡이 끄는 걸 보고 악수하면서 매우 기뻐하며 말했다.

 

吾實非死也, 向海東覓一國土去矣.”

나는 실제 죽은 게 아니고 동해의 향해 한 나라를 찾으러 간 거네.”

 

因曰: “君今年不合死.

이어 말했다. “그대는 올해 죽음어선 안 되나

 

有兵禍, 向高林勿入水.

전쟁의 화가 있으니 높은 나무를 향하고 물엔 들어가지 말고

 

丁酉, 愼毋南來,

정유(1597)년에 남쪽에 가는 걸 삼가 말며,

 

或有公幹, 勿登山城.”

혹 관청의 주관하는 일이 있으면 산성에 오르지 말게.”

 

言訖, 如飛而行, 須臾失所在.

말을 마치고 나는 듯 떠나 잠깐 사이에 있는 곳을 몰랐다.

 

果於琴臺之戰, 憶此言,

홍세희는 과연 탄금대 전쟁에서 이 말을 기억하여

 

奔上山得免.

산에 달려 올라가 죽음을 피할 수 있었다.

 

丁酉七月, 以禁軍在直,

정유년 7월에 금군[각주:4]으로 숙직하는데

 

致有旨於梧里相. 都忘其戒,

오리[각주:5] 정승에게 교지를 주는데 모두 경계를 잊어버려

 

回至星州, 爲賊所迫,

돌다가 성주에 이르러 적에게 포박당했고

 

黃石城有備, 疾馳入,

황석성이 대비하고 있단 소리를 듣고 빠르게 달려 들어갔지만

 

城陷倂命.

성이 함락되어 목숨을 나란히 했다.

 

余少日狎游俠耶, 與之諧謔甚親,

내가 소시 적에 유협한 이들과 친했고 그와 농담을 할 정도로 매우 친했기에

 

悉覩其技, 噫其神矣!

모두 그 기술을 보았으니 아! 신이로운 이로다.

 

卽古所謂劍仙者流耶. -惺所覆瓿藁

곧 옛적에 말했던 검선의 무리인가.

 

 

인용

작가 이력 및 작품

 

 

 

 

  1. 座首: 이조 때 지방의 州郡縣에 두었던 鄕廳의 우두머리. [본문으로]
  2. 叉鬟 : 머리를 두 갈래로 땋은 작은 계집종. / 胡琴: 깡깡이 비슷한 악기 이름 [본문으로]
  3. 李鎰 (1538~1601) : 1583년에 오랑캐 니탕개가 난을 일으켜 경원을 함락시키자, 경원부사로 임명되어 적을 몰아내었다. 임진왜란 때 상주에서 고니시를 맞아 싸우다가 패해 달아났지만, 평양을 수복할 땐 선봉장이었다. [본문으로]
  4. 禁軍: 禁旅·禁兵이라고도 한다. 중국에서 황제의 거성을 禁籬 또는 禁中이라고 부른 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본문으로]
  5. 梧里: 李元翼(1547~1634)으로 임진왜란 중에 四道都體察使를 겸하며 좌의정이 되어, 나라일을 보살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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