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규쌤은 2009년에 단재학교를 열어 4년 동안 중고생들과 생활하다가 2013년에 단재학교를 떠나 지지학교를 개교하면서 초등생들과 생활하고 있다. 공교육 교사로 19년을 근무하고 대안학교 교사로 6년을 근무한 것이다.
▲ 지지학교는 1월 24일에 발표회를 마치고 3주 간에 방학에 들어갔다. 그 덕에 이 날엔 편하게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한 학생을 오롯이 지켜볼 수 있다는 장점
여기서 만나는 아이들은 공교육에서 나온 아이들이기에 획일성을 거부하고 다양성을 추구하는 아이들이라 할 만하다. 그 아이들 중 몇 명은 발작적인 증상을 보이기도 한단다. 화가 나서 격렬하게 화를 내며 위협적인 행동을 하거나, 어떤 것을 하기 싫으면 눈이 뒤집어져 생떼를 쓰거나 학교에 나오지 않고 버틴다거나 한다는 것이다. 공교육에서 이런 아이가 있을 경우, 다수의 아이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그 아이를 격리시키고 매뉴얼에 따라 처리하면 된다. 학생 수가 많기에 일일이 신경 쓸 수가 없다. 그에 반해 대안학교는 소수의 인원들이 다니는 작은 학교이기에 그런 아이에 대해 관찰이 가능하며, 어떤 식으로 변화해 가는지 기록이 가능하다. 이에 대해 준규쌤은 “아이에 대해 자세히 들여다보고 함께 방법을 찾아가는 활동을 할 수 있는 건 대안학교여서 가능해요. 그런 경험들을 많이 하여 여러 사례를 접해볼수록 아이에 대한 이해심도 당연히 높아지죠. 그리고 단기간만 보지 않고 1년 이상의 시간을 함께 보내니 공교육에선 절대 할 수 없는 경험을 한다고 할 수 있죠”라고 말해주신다. 그 말을 듣고 보니, 이것이야말로 대안교육의 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뿐만 아니라 공교육 교사는 교육과정으로 수업이 정해져 있기에 수업은 하되, 배움이 뭔지, 인간이 뭔지 고민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대안학교 교사는 주류교과라는 틀에 갇히지 않고 새로운 형태의 교육의 장을 만들어 나가기에 다양한 관점에서 고민해야만 한다. 고민하느냐, 하지 않느냐의 차이는 결국 교육을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로도 나타난다. 그렇기 때문에 대안학교의 장점을 십분 발휘하여 아이들이 어떤지 면밀히 관찰하여 이해의 폭을 넓혀 나가야 한다.
▲ 14살 때 만난 학생이 벌써 18살이 되었다. 한 학생을 이렇게 긴 시간동안 지켜보며 교육할 수 있다는 건 축복이다.
쇼를 하는 아이들
그러면서 짐짓 세상의 비밀을 얘기해주시려는 듯 “그런 아이들을 여럿 겪다 보니, 이젠 정리가 됐어요.”라고 말문을 여신다. 그렇지 않아도 그런 아이들의 심리가 궁금했기에 귀를 쫑긋 세우고 듣는다. 나는 그런 아이들의 경우 정말 이성을 상실해서 폭력적인 성향을 보이고 생떼를 쓴다고 생각해 왔다.
하지만 준규쌤은 “그런 경우 쇼라고 보면 됩니다”라고 단 번에 정리해주신다. 깜짝 놀랄 만한 얘기다. 보통의 부모는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여 상담을 받으러 가거나, 정신치료를 받으러 간다. 교사도 자신의 힘으론 어떻게 할 수 없다고 생각하여 두 손 두 발 들고 “외부기관의 도움을 받으세요”라고 아무렇지 않게 말한다. ‘발작적 폭력성=정신 이상’이라 서술해 버리니, 그 해결책도 이처럼 간단하게 나오는 것이다. 하지만 준규쌤은 그런 행동 자체도 결국 상황 판단에 따른 쇼라고 서술했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가 그런 행동을 보일 때마다 ‘저건 저 아이도 컨트롤 할 수 없어서(평범한 말로 미쳐서) 저러는 거야’라고 생각하며 비위를 맞춰주려 해선 안 된다는 얘기하신다. 물론 단호하게 처음부터 잘라낼 순 없기에, 어떻게든 그 아이와 밀당을 할 수밖에 없단다. 어찌 되었든 그런 노력을 통해 ‘니가 지금 하는 행동은 너에게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라는 것을 알려줄 수 있어야 하며 점차 그런 행동을 줄여나가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는 거다.
▲ 교사나 심리학과 의사나 한 사람의 인생을 다룬다. 그런데 너무도 쉽게 사람에 대한 판정을 내려 버린다.
행동을 바꿀 만한 빌미를 주는 교사여야 한다
‘쇼’라는 단어에 확 꽂혔다. 그건 아이들을 바라보는 틀을 바꿔야 한다는 말이기도 했다. 위에서 ‘리빙 라이브러리’에 대해 이야기했듯이, 그건 그 아이의 이야기를 제대로 듣고 함께 변해갈 수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이기도 했다.
그런데 아이의 변화는 그냥 일어나지 않는다고 한다. 즉 변할 만한 빌미가 필요하단다. 갑자기 자기 행동을 바꾸면 그렇지 않아도 자존심이 바닥인 아이 입장에선 ‘자기의 잘못을 시인하는 꼴’ 밖에 되지 않기에 바꾸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교사가 그런 행동을 고칠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하던지, 뭔가 존경할만한 구석이 있는 게 중요하다는 얘기다. 그래야 아이가 행동을 바꾸며 “저 선생님이 저렇게 열심히 하니 나도 변해야지”라고 말하거나, “저 선생님은 존경할 만하니까 행동을 바꿨어”라고 변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아이들도 어른과 같이 ‘곧 죽어도 자존심’이란 사실을 알 수 있다.
이 말을 들으니, 개운해졌다. 어떻게든 아이들과 함께 만들어갈 것들이 많다고 느껴졌고 미리 금을 그어 ‘넌 안 돼’라고 생각해선 안 된다는 것을 알게 됐다. 아이들을 어른의 시선으로 평가하거나, 조급해 하지만 않는다면 훨씬 많은 부분에서 갈등보단 해결책을 찾아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준규』란 책을 덮다
글쓰기에 대한 이야기부터, 교육론과 아이들에 대한 인식론까지 쉴 새 없이 얘기는 진행됐다. 수많은 얘기를 전부다 기억할 수 없어, 독후감으로 남기는 내용은 부분 부분 생각나는 내용으로 채울 수밖에 없었다. 올해 학교에서 아이들과 함께 뒹굴면서 여러 경험을 하다보면, 준규쌤의 말 중에 순간순간 생각날 이야기들도 있을 것이다.
한참 이야기를 나누다가 갑자기 “공교육 교사로 일하다가 지금은 대안교육의 교사로 있는데, 후회해 본 적은 없으세요?”라는 뜬금없는 질문을 던졌다. 그러자 준규샘은 “전혀 그런 생각은 해본 적 없어요. 아마 학교에 있었다면 돌아버려서 제 정신이 아니었을 거예요. 그래도 예전엔 아이가 가난하다고 해서, 가정환경에 문제가 있다고 해서 차별하거나 깔아뭉개지는 않았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그런 것들이 모두 붕괴되어 버렸어요. 교실의 풍토가 변해서 아이들은 뭘 하기도 전에 패배감에 휩싸여 있는데, 어찌 멀쩡하게 교사로 설 수 있겠어요?”라고 대답해주셨다. 박준규라는 책에 쓰여 있는 이야기 중에 엄청난 임팩트가 있는 말이기에 여기에 적으며, 『박준규』란 책을 읽은 소감을 마칠까 한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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