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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박준규란 책을 읽다 - 2. ‘눈물 시리즈’는 준규식 호곡장론 본문

연재/만남에 깃든 이야기

박준규란 책을 읽다 - 2. ‘눈물 시리즈’는 준규식 호곡장론

건방진방랑자 2019. 5. 25. 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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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으로 교보문고에서 자리를 옮겨 이야기 한마당이 펼쳐졌다. 대화는 두서없이 진행되었지만, 동섭쌤초등학교 교사 3이 던져준 숙제로 혼란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던 나에게 어떤 실마리를 제공해줬다.

 

 

 사람이 온다는 건 그의 역사와 함께 온다. 그러니 만나고 얘기 나누자. 

 

 

 

! ! ! 사람 책을 읽읍시다!

 

내가 단재학교로 들어오기 이전에 리빙 라이브러리Living Library라는 프로그램을 2회에 걸쳐 진행했다고 한다. 어떤 식으로 진행되었는지 본 적이 없으니 알 수는 없지만, 몇 명을 섭외하여 도서관에 온 사람은 책을 빌리는 대신, 섭외된 사람을 빌린다. 그리고 그와 함께 대화를 나누는 것이다. 얼핏 보면 그건 그냥 수다 떠는 거 아냐?’라고 의아해할 법 하지만, 일반적인 대화가 아니라 그 사람이 살아온 이야기, 그 사람의 가치관을 듣는 것이기에 다르다고 할 수 있다.

단재학교 초임교사로 어리버리하게 헤매고 있을 때 준규쌤은 카페로 나를 데리고 가더니, 단도직입적으로 공부 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라고 물었다. 평소의 꿈이 일 하면서 공부도 하는 것이었기에, “당연하죠!”라고 목소리 높였다. 그러자 준규쌤은 대학원에 가거나 그런 공부를 말하는 건가요?”라고 물었고, 나는 학위나 학문에 갇힌 공부가 아니라 연암 박지원이 열하에 가서 보고 느낀 것을 정리하여 열하일기를 지었듯, 다산 정약용이 강진에 유배당해 500권의 책을 펴냈듯 유유하게 흘러가는 시대의 흐름을 낚아 채 그걸 체계화하는 공부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 얘기를 듣고 뭔가 다른 얘기를 해주실 줄 알았는데, 대뜸 나는 런던에서 사람 책을 읽는다라는 책을 건네 주셨다. 아마도 그 책을 읽으면 당신이 하고자 하는 공부의 방향이 잡힐 것이다는 말을 하고 싶으셨던 거 같다.

그 책은 리빙 라이브러리를 직접 경험한 사람이 그때 만나 나눈 내용을 정리한 책이었다. 그 책을 읽다 보니, 사람이야말로 소우주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래 인용한 시도 리빙 라이브러리의 생각과 공명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사람이 온다는 건

사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

그 갈피를

아마 바람은 더듬어 볼 수 있을 마음.

내 마음이 그런 바람을 흉내 낼 수 있다면

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

-정현종, 방문객

 

 

준규쌤이 던져 준 책과 내용들은 박노해 시인이 사람만이 희망이다고 말한 것의 다른 버전 같았다. 사람을 읽으려면 그 사람의 삶을 온전히 받아들일 맘이 있어야 하며, 그건 곧 사람에 대한 믿음이 전제되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아마도 준규쌤은 여러 사람을 만나서 이야기를 듣고 그걸 자기화하는 공부를 해나가라는 조언을 하고 싶으셨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기서부터 나의 공부는 시작되었고, 그렇게 단재학교에서 4년이란 시간을 보내며 사람 책을 읽는 공부를 꾸준히 해오게 되었다. 오늘 준규쌤을 만나는 이유도 어찌 보면 박준규라는 책을 읽고 싶어서 이다. 과연 나는 박준규라는 책을 읽으며 어떤 독후감을 쓸 수 있을까?

 

 

이 글을 읽어보니, 이오덕 선생님이 교육현장에서 왜 그토록 힘들어했는지 더욱 잘 알 수 있었다. 두 분의 고민이 공명한다.

 

 

 

울어재낄 수 있는, 그 마음

 

최근에 준규쌤은 페이스북에 눈물 시리즈(다큐멘터리 눈물시리즈를 말하는 게 아님돠)’를 연재했다. 현실을 그대로 담은 경험담이기에 무협소설을 읽듯 긴박감 넘치게 한 번에 읽을 수 있었다. 긴 내용이긴 해도 충분히 읽을 가치가 있고 순식간에 읽혀지니 시간 날 때 읽어보란 의미로 아래에 인용해둔다.

 

 

남자가 흘리는 눈물은 어찌 보면 보수적인 한국사회가 억압해 놓은 금기를 넘어서는 일이기도 하다. ‘남자는 태어나서 세 번만 운다는 식의 금기를 만들어 한없이 강해지도록 인내하고 참아내도록 요구하는데, 준규쌤은 그런 금기를 깨버렸기 때문이다. 자신의 감정 때문이든, 사회적인 부조리 때문이든, 부모들의 강압에 힘들어하는 아이들 때문이든 맘껏 울어재낄 수 있다면, 그건 건강하고 밝은 것이다.

연암의 글을 읽으면 준규쌤이 흘린 눈물의 의미가 더욱 입체적으로 보인다.

 

 

사람들은 단지 칠정(희노애락애오욕) 가운데서 오직 슬퍼야 울음이 나오는 줄 알 뿐 칠정이 모두 울게 할 수 있는 줄은 모르지.

기쁨이 지극하면 울 수가 있고, 분노가 사무쳐도 울 수가 있으며, 즐거움이 넘쳐도 울 수가 있고, 사랑함이 지극해도 울 수가 있으며, 미워함이 지극해도 울 수가 있고, 욕심이 지극해도 울 수가 있어. 가슴 속에 답답한 것을 풀어버림은 소리보다 더 빠른 것이 없거니와, 울음은 천지에 있어서 우레와 천둥과 같다고 할 수 있지. 지극한 정이 드러나, 드러나면 능히 이치에 맞게 되니, 웃음과 무엇이 다르리오?

人但知七情之中, 惟哀發哭, 不知七情都可以哭. 喜極則可以哭矣, 怒極則可以哭矣, 樂極則可以哭矣, 愛極則可以哭矣, 惡極則可以哭矣, 欲極則可以哭矣. 宣暢壹鬱, 莫疾於聲, 哭在天地, 可比雷霆. 至情所發, 發能中理, 與笑何異? -朴趾源, 熱河日記, 好哭場論

 

 

연암은 삼종형이 청나라 황제 고희연에 사절단으로 가게 되자, 따라간다. 그때 드넓은 요동벌판을 보았고, “울어 재낄 만하다고 한 마디를 외친다. 보통 엄청난 광경이나 자연의 위대함을 보면, 환호성을 지르거나 감탄하여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는 표현을 쓰지 한 바탕 울어볼만 하다는 표현을 쓰진 않는다. 그러니 그 옆에 따라가던 사람이 어째서 울만 하다고 표현하나?”라고 묻자, 연암이 울음의 의미를 설명해준 것이다.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팝 아트. '행복한 눈물'을 패러디한 작품

 

 

연암은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우는 건, 꽉 막힌 세상에서 천지사방이 환히 트인 세상으로 나왔기 때문에 기뻐서 우는 것이라 이야기 하며, 그처럼 나도 산으로 꽉 막힌 조선 땅에서만 살다가 요동의 드넓은 벌판을 보니 기뻐서 그러노라 대답했다. 그러면서 사람은 슬퍼서도 울 수 있지만, 기뻐도, 분노해도, 즐거워도, 사랑해도, 미워해도, 욕심이 나도 모두 울 수 있다고 울음의 의미를 확장한다. 연암에게 울음이란 격해진 감정을 표현하는 하나의 방법이었을 뿐이다.

연암은 희의 감정이 폭발하여 울었다고 한다면, 준규쌤은 노의 감정이 복받쳐 올랐기에 울었다고 할 수 있다. 단지 슬퍼서 흘린 눈물이 아닌, 다른 칠정에 의해 눈물을 흘릴 수 있다는 건 그만큼 감수성이 살아 있다는 얘기고, 그만큼 현실을 가슴 깊이 끌어안아 그 감정을 느낄 수 있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그런 부분들이 느껴지니 준규쌤의 눈물에 공감할 수 있었고, ‘눈물 시리즈가 더욱 맛깔스런 글로 읽혔다.

 

 

인용

목차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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