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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김진숙을 만나다 - 1. 309일을 차디찬 철골조물에서 버티다 본문

연재/배움과 삶

김진숙을 만나다 - 1. 309일을 차디찬 철골조물에서 버티다

건방진방랑자 2019. 6. 6.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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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순탄한 삶을 산 사람보다 맘껏 좌충우돌한 삶을 산 사람에게 끌린다. 그리고 자신만을 위한 삶을 산 사람보다 남과 어우러지는 삶을 산 사람에게 끌린다.

그런 삶에 끌린다는 건, 내가 그렇게 살아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난 여전히 정해진 길만 가려하고 내 문제에만 천착해 있으니 말이다. 그러니 아무리 한 평생 맘껏 노닐다 가면 그 뿐이라 외칠지라도 그렇게 할 만한 배짱이 없으며 다함께라는 구호를 들먹거릴지라도 공허한 울림에 그친다.

그런 나이기에 실제로 신념대로 산 사람을 만나보고 싶었다. 김진숙 위원장은 나에게 자신의 삶을 산 사람이며 타인을 위한 삶을 산 사람이라는 아이콘으로 다가왔다. 그래서 나는 꼭 김진숙 위원장을 만나고 싶었다.

 

 

   꼭 만나고 싶었는데, 이런 자리를 통해 만나게 되니 가슴이 떨린다.

 

 

 

고정관념 너머에 그 사람이 있다

 

한겨레 인터뷰 특강을 하는 효창공원 백범 기념관으로 향하는 길에, 김진숙 위원장의 이미지와 말투, 성격을 상상해 봤다.

이미지는 왠지 모르게 날카로울 것 같았고 말투는 대중구호를 외치듯 똑부러지고 거칠 것만 같았으며 성격은 한 치의 흐트러짐도 용납지 않는 완벽주의자일 것만 같았다. 이것이야말로 일반인이 운동권을 바라보는 편견이 아닐까. 더욱이 김진숙 위원장은 309일을 차디찬 철골조물 위에서 버텨낸 사람이기에, 더 극단적으로 그런 관념에 들어맞을 거라 생각했다.

 

 

백범 기념관을 찾아가는 길은 즐거웠다. 

 

 

그런데 첫 이야기를 듣는 순간부터 그런 관념은 깨졌다.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올라갔을 때가 16일 새벽 세 시였댔드랬습니다. 영하 13나 되는 추운 날이었죠. 그런데 그 때 무슨 생각을 한 줄 아세요?” 여기까지 들을 때만해도, 일반적인 이야기가 나올 줄 알았다. 예를 들면, 어떻게 시위할 것인가, 어떻게 사람들에게 이런 상황을 알려서 연대할 것인가 하는 이야기들 말이다. 그런데 김진숙 위원장은 허를 찔렀다.

하루 웬 종일 후회했었드랬습니다. 어찌나 추운지. 뭐 하러 새벽에 올라와서 이 고생이야. 이럴 줄 알았으면 낮에 올라올 걸 후회가 되더라구요.” 이 말이 나오는 순간, 회장엔 웃음꽃이 만발했다. 김진숙 위원장은 무거운 사람도, 그렇다고 딱딱한 사람도 아니었다. 어찌나 재밌고 맛깔스럽게 이야길 하던지 아무리 힘들었던 당시의 이야기를 할지라도 울분에 가득 찬, 그래서 마음을 짓누르는 이야기가 아닌 희화화하여 함께 즐기며 통쾌해 할 수 있는 이야기였던 것이다. 아마도 309일을 버틸 수 있었던 저력은 그런 웃음과 여유에서 나오는 게 아니었을까.

 

 

그녀는 만담꾼이었다. 이야기에 막힘이 없고 사람을 몰입하게 만드는 매력이 있었다. 

 

 

 

고통스런 혁명은 혁명이 아니다

 

내가 춤 출 수 없다면 그것은 혁명이 아니다(If I can't dance it's not my revolution - Emma Goldman)’라고 했던가. 울분과 회한으로 세상에 맞서는 사람은 처음엔 성과를 보일 진 모르지만, 시간이 지나면 쉽사리 무너지고 만다. 울분과 회한이 자신의 생을 좀먹고 타인과의 관계에 오히려 독이 되기 때문이다. ‘나 자신을 땅 밑으로 꺼지게 만드는 사람이라고 내 친구는 전에 사귀었던 사람을 평가했는데, 그런 평가야말로 울분과 회한으로 삶을 사는 사람에게 합당한 평가이리라.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어떤 일을 하든 부정적인 마음으로 자신의 추진력을 삼을 것이 아니라, 자신 안에 끓어오르는 긍정적인 힘으로 세상에 맞서야 한다.

김진숙 위원장과 김여진과 날라리(이들의 활약담은 2부에서 나옴)’들이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이겨낼 수 있었던 저력에는 삶을 즐길 수 있는 쾌활함이 있었기 때문이리라. 그들은 삶에 직면하여 맘껏 춤출 수 있었기에 이미 그 순간, 혁명은 이루어진 것이었다.

 

 

  그렇게 우린 골리앗을 넘어뜨렸다.  함께 축제처럼 즐기면서. 

 

 

 

동지에 대한 마음이 그를 움직이게 했다

 

동지 두 명을 잃었다. 김주익 열사는 129일 동안 85호 크레인에서 농성을 벌였지만, 도무지 가능성이 없음을 직감하고 밥을 올려준 밧줄에 목을 매어 자살했다. 그리고 한 명의 동지인 곽재규 열사도 4도크 콘크리트 바닥에 몸을 던졌다.

두 동지를 땅에 묻고 돌아오는 길에 가슴 한 복판엔 분노가 타올랐지만, 어찌 할 수 없다는 자괴감이 들었다고 한다. 날씨가 추웠기에 자연스레 보일러 스위치에 손이 가더란다. 하지만 그 때 평소와는 달리 존재가 무너지는 듯한 충격에 주저앉고 말았단다. ‘두 사람은 차가운 땅바닥에 누워있는데, 난 살아보겠다고 보일러를 켜고 있다니하는 죄책감이 무섭게 짓눌렀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때부터 보일러를 켜지 않고 살았다고 한다. 자고 일어나면 귓불에 동상이 걸린 적도 여러 번이지만, 그렇게 해야만 죄책감에 서 어느 정도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란다.

 

 

 

 

 

 

해고는 살인이다

 

해고는 살인이다라는 말이 회장 가득 울렸다. 그리고 그 말을 따라 내 가슴에도 울컥하는 감정이 있었다. 해고당하는 순간, 자신의 존재가치가 무너진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대부분의 노동자들은 사원아파트에 살기 때문에, 집을 비워줘야 한다는 현실이 눈앞에 닥친다. 또한 집을 비워주지 않는다 해도 서로 친하게 지내던 이웃이 어느 순간부터 상종도 하지 않으며 여러 이야기들을 뒤에서 하고 다닌단다. 어제의 동지가 순식간에 적이 되고야 마는 것이다. 해고를 당하는 순간, 나의 존재는 없어지고 나는 만인의 적이 된다. 해고가 살인만큼 잔인한 이유가 거기에 있다.

 

 

 

 

 

인용

목차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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