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별을 보고 소리를 들으며 세상을 이해하다
12시가 넘었다. 인근 테니스장 불도 완벽히 소등되고 빛이 모두 사라진 자리에, 감춰져 있던 빛이 드디어 보이기 시작했다. 인위적인 강렬한 빛이 사라진 자리에 자연의 빛들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 30초 노출로 찍은 밤하늘. 아마 성능이 더 좋은 사진기가 있었으면 더욱 잘 나왔을 텐데, 아쉽다.
고기를 구울 땐, 고기가 잘 익었는지 확인하기 위해 랜턴의 불을 켜고, 핸드폰의 ‘후레쉬’를 켜기도 했다. 고기를 다 굽고 먹기 시작했을 때도 랜턴을 켜놓은 상태였다. 아마도 ‘랜턴을 켜면 잘 보여 먹기 편할 것’이란 생각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 랜턴을 끄니, 그제야 주변이 또렷하게 보이더라. 때론 잘 보기 위해서 불을 꺼야 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는데, 그 중 백미는 밤하늘에 펼쳐진 별무더기였다.
진규는 진안에서 본 밤하늘에 대해, 주승이는 “왜 밀키웨이(우유를 흩뿌려 놓음)라 하는지 알 수 있었다”라는 이야기를 통해 호주 아웃백에서 본 밤하늘에 대해, 나는 “대피소에서 나가는 순간 밤하늘에 떠있는 무수히 많은 별을 보면서 겁을 먹었다니까. 왠지 심연의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어서”라는 이야기를 통해 지리산 종주 때 노고단에서 본 밤하늘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세 명은 각자 다른 장소에서 밤하늘을 봤기에 ‘자기가 본 밤하늘이 최고’라는 이야기하고 있었지만, 실상 그때 느낀 경이로움은 같았던 것이다.
▲ 바로 이런 사진처럼 말이다.
이야기로 세상을 본다
여기에 덧붙여 주승이는 별자리에 대해 “너무 인위적이지 않냐? 왜 몇 개의 별자리를 붙여놓고 그런 이름을 붙였는지 알 수 없다. 예를 들면 양자리 같은 것은 아무리 봐도 양같이 보이지 않고, 북두칠성 같은 경우는 ’큰 곰‘보다는 오히려 ’국자모양‘처럼 보이잖아. 그리스 신화에 너무 맞추려 한 것 같아서 별로야”라고 말했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얘기였다. 이런 얘기를 듣고 있으면, ‘인간은 어떻게 세상을 인식하나?’라는 주제가 생각났다. 예전엔 종교를 믿었기 때문에 당연히 세상을 관통하는 진리라는 게 있고, 그 진리를 체득함으로 세상을 이해하게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다. 인간은 이야기를 통해 세상을 인식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준규쌤의 말마따나 “과학은 하나의 이야기일 뿐이예요”라는 것이고, 각자의 이야기를 통해 세상을 재해석하여 이해하는 것이다. 그래서 밤하늘의 별을 보며 누군가는 그리스 신화를 떠올리고, 누군가는 지나간 옛사랑을 그리워하고, 누군가는 자신에게 짐 지워진 운명(영화 『라이온킹』)을 생각한다.
이처럼 세상도 결국은 어떤 이야기로 재구성하느냐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자본주의가 퍼뜨린 ‘내 돈 벌어 내가 쓰는데 뭐가 문제야’라는 식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고, ‘스스로 서서 서로를 살리는’ 식으로 받아들인 사람도 있으며, ‘체력은 국력(나라를 위해 섹스하세요)’라는 식으로 받아들인 사람도 있다. 당연히 어떤 이야기를 통해 세상을 인식하고 있느냐에 따라 그들의 생활방식이나, 삶의 태도는 180° 다를 수밖에 없다.
‘쾅 하는 소리’가 만든 다양한 이야기
결국 인간이란 이야기를 통해 ‘미지未知의 세계’를 ‘지知의 세계’로 인식하며 살아간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질 때쯤 재밌는 상황이 펼쳐졌다. 새벽 내내 ‘쾅!’하는 소리가 주기적으로 계속 났는데, 이 소리 하나에 우리는 다양한 이야기를 만들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소리가 난다는 건 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사실이었지만, 어디서 나는지 모르니 다양한 추측이 따를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 그 소릴 들었을 땐 당연히 인근 부대에서 포사격이 있는 줄 알았다. 총소리보다는 약간 컸기 때문에, 포사격소리라고 단정 지은 것이다. 하지만 새벽이 되었음에도 여전히 들리자 다른 스토리를 써갔다. 영화 『타짜』의 마지막 씬에서 고니가 아귀에게 “시나리오 쓰고 있네. 미친XX가!”라고 말하는 것처럼, 우리도 한바탕 소설을 써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이에 진규는 기차가 지나갈 때 터널을 통과하면 철컹거리는 소리가 터널에서 응축되어 그와 같은 굉음이 발생한다고 말했다. 이 근처에 그와 같은 쇳소리가 날만한 장소가 없었기 때문에 얼핏 신빙성이 있어 보였지만 단순히 터널과 연관시키기엔 뭔가 부족한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난 터널을 통과하며 나는 소리라기보다 여름 더위로 낮엔 철로가 늘어졌다가 새벽이 되며 기온이 내려가 철로가 원상태로 돌아갈 때 기차바퀴와의 접촉이 만든 울림음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 소리는 새벽 4시가 지나도록 계속 되었고 아침이 되어선 더는 들리지 않았다. 소리의 출처가 아예 미궁으로 사라지고 만 것이다.
▲ 맞다! 시나리오 쓰고 있다. 하지만 그 시나리오들이 세상을 해석하는 하나의 관점이다.
어찌 되었든 이런 상황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이야기를 통해 세상을 인식하려 한다는 사실이다. 이야기가 만들어지려면 우리의 지식으로는 알 수 없는 어떤 상황이 있어야 한다. 미지의 세계, 미지의 생물, 미지의 소리, 미지의 영역이야말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원천이다. 사람이 가장 활발하게 이야기를 만들 때가 언제냐면, 바로 누군가를 짝사랑할 때다. 그 사람은 나에게 미지의 영역이지만, 어떤 생각을 하는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고 싶기에 수많은 이야기를 써내려가게 한다. 그 사람의 작은 행동 하나에도 수많은 의미를 부여하며 소설책 한 권을 완성한다.
이처럼 이야기란 ‘미지의 영역’을 ‘지의 영역’으로 끌어들이려는 노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때 작용하는 것은 당연히 미지의 세계를 피하려는 노력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맞닥뜨리고 해석하려는 노력이라 할 수 있다. 우리도 밤하늘의 별을 보면서, ‘쾅!’하는 소리를 들으면서 수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었던 건 바로 그와 같은 노력이라 할 수 있다. 그때 그런 이야기가 맞는 얘기냐, 틀린 얘기냐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하나의 현상을 각자의 시각으로 풀어낸 것이기에, 그런 방식으로 세상을 이해하고 있다는 것만을 받아들이면 되니 말이다.
여담이지만, 아침에 집에 갈 때 우리가 머문 곳 바로 옆에 가니, 쓰레기처리장이 있었고 쓰레기 트럭이 철제 박스를 내려놓을 때 ‘쾅!’하는 소리가 났다. 난 아무 생각 없이 그 소리를 듣고 있는데, 진규가 “야! 어제 그 소리가 이 소리 아니냐?”라고 하더라. 그 말을 듣고 생각해보니 ‘똑같아도 너무도 똑같은 소리’라는 확신이 들었다. 새벽 내내 들었던 소리의 행방을 명확하게 안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단서 하나를 잡아서 다행이다.
▲ 이 근처에서 밤새도록 들렸던 쾅소리는 어디서 난 것일까?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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