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요리가 공부가 되는 현장
제이드 가든에서 걸어서 펜션에 도착했다. 생각보다 가까워서 걸을 만했다.
들어와선 곧바로 저녁 준비를 했다. 이번 저녁은 저번에도 말했다시피 ‘여행 마지막 밤엔 고기파티’라는 일반적인 흐름을 깨고 아이들이 직접 요리를 하여 함께 먹는 것이다.
▲ 열심히 각자 맡은 일을 하는 아이들.
요리와 공부의 공통점
여행 기간 중 함께 요리를 하고 함께 나누어 먹게 된 시작은 12년 4월에 단재 식구들이 함께 떠났던 천리포 수목원에서였다. 그 후로 한동안 전체여행을 가서 요리를 만들어 먹은 적은 없었고 각 팀별 여행에서나 요리를 하여 먹는 정도였다. 그러다 작년 9월에 격포로 전체여행을 갔을 때, 둘째 날 아침을 팀별로 준비하여 함께 먹으며 3년 만에 부활되었다. 그때부터 여행을 갈 땐 이런 식으로 요리를 함께 하고 나누어 먹게 된 것이다.
▲ 작년에 부안에 갔을 때, 오랜만에 요리를 하여 아침을 함께 먹었다.
지금처럼 직업이 분화되고 셰프라는 이름이 ‘요리사’보다 더 광범위하게 쓰이며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시대엔, ‘요리사가 되려는 사람만 요리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삶의 삼요소를 ‘의식주衣食住’라고 할 정도로, 입는 것과 먹는 것, 그리고 머물 공간은 살아가는 데 있어서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그런 것들을 돈으로 대체할 수 있다 하더라도, 자신이 조금이라도 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안정감에 엄청난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특히나 먹는 것의 경우는 단순히 만드는 것만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 다른 사람과 나누어 먹는 즐거움까지 함께 누릴 수 있다. 내가 만든 음식이, 남에게 어떤 기쁨을 주는지 즉각적으로 느낄 수 있기 때문에, 요리를 만들어 함께 나누어 먹는 것은 무척이나 중요하다.
▲ 요리를 하기 전에 체력부터 기르고 있는 태기와 성민이.
흔히 공부를 하는 이유에 대해 ‘배워서 남주자’라거나 ‘나의 배움이 사회에 유용하게 쓰였으면 좋겠다’라는 나눔의 관념, 공유의 관념으로 말하곤 한다. 물론 ‘더 공부하면 마누라 외모(남편의 직업이)가 바뀐다’와 같은 개인적인 욕망을 부채질하거나 ‘대학은 나와야 사람 구실을 한다’는 사회적 편견을 부추기기도 하지만, 공부의 본래면목은 이와 같은 원대한 꿈과 이상적인 비전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공부를 통해 나눔의 기쁨을 느끼고 함께 행복해지는 순간을 느끼기까지 엄청나게 많은 시간이 필요하고, 설혹 어떤 변화가 있다 할지라도 나로 인해 그런 변화가 왔다고 단정 짓기는 힘들다. 배움을 통한 변화는 풍화 작용에 의하여 아주 느릿하게 산이 깎여 나가듯, 매우 천천히 진행되기 때문이다.
그에 반해 요리는 짧은 시간에 내가 만든 결과물이 나오고, 그걸 함께 먹으며 직접적인 감상평까지 들을 수 있다. 이처럼 ‘나눔의 기쁨, 공유의 즐거움’을 곧바로 누릴 수 있는 것 중에 요리만한 것도 없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전체여행을 하는 동안에 함께 요리를 만들고 함께 나누어 먹는 건, 누군가 애써 가르쳐주지 않아도 공부의 본래면목을 자연히 느끼는 살아 있는 교육의 장이라 감히 말할 수 있다.
▲ 영화팀 수업 중 '배워서 남주자'란 시간이 있다. 개인적으로 공부한 내용들을 함께 나누는 거다. 요리도 이와 같다.
함께 만들고 나눠 먹는 기쁨이 가득한 둘째 날 저녁 식사 시간
펜션에 도착하자마자 아이들은 쉬지 못하고 바로 요리를 해야 했다. 그러니 좀 쉬었다 했으면 하는 바람도 있을 것이고 짜증도 날 법 하지만, 누구 하나 그런 소리를 일절 하지 않고 각 팀별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한다. 민석이와 현세와 성민이네 팀은 볶음밥을, 준영이와 규빈이네 팀은 떡볶이를, 지훈이와 지민이와 태기네 팀은 짜장면을 만들기로 했다.
여긴 그래도 부엌이 두 군데에 있으니, 두 팀이 동시에 요리를 할 수 있었다. 그래서 준영팀과 지훈팀은 야채를 다듬고 요리를 하기 시작했고, 민석팀은 웬만큼 요리가 끝날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준영이와 규빈이는 떡볶이를 하기 위해 양배추와 양파와 당근을 서로 역할을 분담하여 다듬었다. 두 아이 모두 요리에 관심도 많고 많이 해봤기 때문에, 여느 팀에 비해 빠르게 만들 수 있었다. 야채를 다듬는 게 끝이 나자, 마트에서 사온 떡볶이 소스를 넣고 약한 불로 서서히 졸여가기 시작한다. 야외 부엌엔 향긋한 냄새가 감돌았다.
지민이와 태기는 감자와 당근, 양파를 다듬었다. 매주 금요일마다 요리 수업을 하며 야채를 여러 번 다듬다 보니, 이젠 능수능란하게 하더라. 그때 지훈이는 ‘강 건너 불구경’하듯 자기 팀이 요리를 함에도 거의 참여하질 않았다. 다듬어진 야채를 냄비에 담아 잘 볶은 후에, 짜장소스를 부어 간을 맞췄다.
▲ 지민이와 태기는 열심히 만든다.
이렇게 서서히 두 팀이 완성되어 가자 민석팀도 야외 부엌의 빈 공간에 투입되어 야채를 다듬고 볶음밥을 만들 준비를 했다. 야채와 햄을 먹기 좋은 크기로 자르고, 드디어 볶을 차례가 온 것이다. 그런데 이때 결정적인 실수를 하고야 말았다. 프라이펜에 양파만 먼저 넣고 볶았기 때문이다. 아무 생각 없이 양파를 넣고 볶고 있는데, 그 때 구세주가 등장했다. 규빈이는 그 상황을 옆에서 지켜보고 있다가 화들짝 놀라며 “양파부터 넣으면 어떻게 해? 빨리 불을 끄고 양파를 건져내!”라고 알려준다. 그러면서 “당근이나 감자 같이 잘 익지 않는 것부터 볶다가 맨 마지막에 양파를 넣어야 해”라고 야채를 볶는 순서까지 알려주며 그 상황을 일단락 지었다. 규빈이가 마지막 말을 던지는 장면이 왠지 낯설지 않다. 이 모습은 마치 고추 심기를 도와주고 이장님이 수고비를 챙겨주자 그걸 받지 않고 “나중에 고추 딸 때나 불러 주세요”라는 말을 남기고 미련 없이 길을 떠났던 어느 사내의 발언을 떠올리게 하는 장면이라고 할 수 있었다.
▲ 드디어 자리가 남아 민석팀도 요리를 만든다.
이렇게 준비된 요리들로 저녁을 함께 먹었다. 변산에서 요리를 했을 땐 아침이었기에 남기는 음식이 많았지만, 이날 저녁엔 거의 남기지 않았다. 세 가지 요리 중 무엇 하나 빠지지 않을 정도로 맛있었다. 그래서 말도 거의 하지 않고 음식 맛에 취해 먹기 바빴다. 서로가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면서 요리를 만든 아이들은 뿌듯한 기분을 느꼈을 것이다. 행복이 있다면 아마도 이 순간의 충만한 기분 같은 게 아닐까.
▲ 함께 만들어 함께 먹기에, 우리는 식구다. 단재 식구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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