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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철학, 삶을 만나다, 강신주, 이학사, 2006 본문

책/밑줄긋기

철학, 삶을 만나다, 강신주, 이학사, 2006

건방진방랑자 2019. 6. 12. 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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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과 삶

 

음미되지 않는 삶은 맹목적인 삶일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철학은 풍성한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불가피한 것이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 우리가 삶을 낯설게 만들어야만하는 이유는 우리의 삶 자체가 이미 우리로부터 낯설어지는 그 무엇이기 때문입니다. -pp 14

 

철학적 사유란 미리 삶을 낯설게 만드는 기술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pp 15

 

에피쿠로스는 세계 형성 이전에 무수한 원자가 허공 속에서 평행으로 떨어졌다고 설명한다. 원자는 항상 떨어진다. 이는 세계가 있기 전에는 아무것도 없었다는 것을, 동시에 세계의 모든 요소는 어떤 세계도 있기 이전인 영원한 과거로부터 실존했다는 것을 함축한다. 이는 또한 세계의 형성 이전에는 어떤 의미(Sens), 또 어떤 원인(Cause), 어떤 목적(Fin), 어떤 근거(Raison)나 부조리(Deraison)도 실존하지 않았다는 것을 함축한다. 意味非先在性은 에피쿠로스의 기본적인 테제이며, 이 점에서 그는 플라톤에도 아리스토텔레스에도 대립된다. Clinamen이 돌발한다. …… 클리나멘은 무한히 작은, ‘최대한으로 작은偏倚 Deviation(기울어짐)로서, 어디서, 언제, 어떻게 일어나는지 모르는데, 허공에서 한 원자로 하여금 수직으로 낙하하다가 빗나가도록’, 그리고 한 지점에서 평행 낙하를 극히 미세하게 교란시킴으로써 가까운 원자와 마주치도록, 그리고 이 마주침이 또 다른 마주침을 유발하도록 만든다. 그리하여 하나의 세계가, 즉 연쇄적으로 최초의 편위와 최초의 마주침을 유발하는 일군의 원자들의 집합이 탄생한다.

알뛰세 마주침의 유물론이라는 은밀한 흐름

 

 

죽음에 대한 에피쿠로소의 고찰

 

죽음은 두려운 일이 아니다.”라는 사실을 진정으로 깨달은 사람은 살아가면서 두려워할 것이 없다. 그러므로 내가 죽음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죽을 때 고통스럽기 때문이 아니라 죽게 된다는 예상이 고통스럽기 때문이다.”라고 말하는 사람도 헛소리를 하는 셈이다. 왜냐하면 죽음이 닥쳐 왔을 때 고통스럽지 않은데도 죽을 것을 예상해서 미리 고통스러워하는 일은 헛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가장 두려운 악인 죽음은 우리에게는 아무 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존재하는 한 죽음은 우리와 함께 있지 않으며, 죽음이 오면 이미 우리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죽음은 산 사람이나 죽은 사람 모두와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산 사람에게는 오직 죽음이 오지 않았고, 죽은 사람은 이미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에피쿠로소 메노이케우스에게 보내는 편지

 

 

좋은 철학에 대해

 

반시대성은 기본적으로 특정한 시간을 극복하고 미래로 나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 반시대적인 철학은 끝없는 운동과 생성을 긍정하는 철학입니다. 생성이란 과정을 거쳤기 때문에, 생성되기 이전의 상태나 생성된 뒤의 상태가 의미를 가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 …… 반시대성이란 개념은 철학의 힘을 상징할 뿐만 아니라, 참된 철학과 거짓된 철학을 구별하는 진정한 잣대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Erewhon(에레혼)이란 단어는 버틀러가 만든 조어입니다. 이 단어를 거꾸로 표기하면 ‘nowhere’, 어디에도 없다는 뜻이 됩니다. …… ‘nowhere’라는 표현은 ‘no-where’이지만 동시에 ‘now-here’이기도 합니다. ‘nowhere’라는 것은 반시대적 철학이 아직 공동체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기에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반면 ‘now-here’라는 것은 반시대적 철학이 지금 바로 이곳을 문제삼고 넘어서려 한다는 점을 부각시키고 있습니다. …… 전자는 철학의 비판적 힘을, 후자는 철학의 상상력의 힘을 나타낸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 철학은 지금-여기를 문제 삼기보다 여러모로 정당화하기에만 급급한 제도권의 철학, 혹은 지금-여기를 전혀 숙고하지 않고 아직은 없는세계만을 추구하는 종교적인 철학, 이 모두가 거짓된 철학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pp 72

 

 

우발성과 나란 존재

 

여러분이 나는 이러저러한 존재야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그 자체로는 아무런 의미도 없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마치 기우제를 지낸 후 비가 온다고해서 두 사건 사이에 필연성이 있는 것은 아닌 것과 같습니다. 바로 이와 같이 우리의 존재란 확고불변한 필연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현재의 여러분, 그리고 저 자신은 무한한 우발적인 만남의 결과. ‘로 설명될 수 있는 우연한 만남의 효과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지요. -pp 109

 

 

사랑에 대해

 

바디우는 사랑the Two’로 정의 내립니다. 이것은 사랑하는 남녀에게는 하나를 가능하게 해주는 매개가 불가능하다는 점을 선언한 것입니다. 오히려 사랑은 사랑하는 당사자 사람을 제외한 일체의 간섭을 배제하려는 힘을 갖고 있습니다. 호동 왕자와 낙랑공주의 이야기가 이를 잘 보여줍니다. 낙랑공주는 자신과 호동왕자의 사랑 사이에 개입하는 일체의 요소를 거부하고 배제하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국가를 지켜주는 자명고를 찢어버렸던 것입니다. 그녀에게는 국가도, 아버지도, 그리고 공주라는 신분도 사랑의 관계에서는 전혀 중요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만약 이런 것들이 사랑에 간섭하려고 한다면, 그녀는 그것들을 거부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 하나로의 통로가 없다는 전제하에서, 다시 말해 불가피한 이라는 상황하에서만 사랑은 사랑으로서의 자신의 힘을 잃지 않을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상대방에 대한 완전한 인식을 성취한다는 것, 하나가 된다는 것은 사실 사랑의 종말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바디우에 따르면 일 수밖에 없는 사랑이 하나가 된다는 것은, 사랑하는 두 사람이 가족 논리에 포획되었다거나 아니면 상대방을 확실히 알고 있다는 유아론적 착각에 빠져 있는 것을 의미할 뿐입니다. -pp 130

 

 

방법론적 고독의 사랑

 

방법론적 고독이란 우리가 나의 바깥에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사람에 대해 내가 아는 것이 전혀 없다는 것을 고백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합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침묵 속에서 나의 외부에 있다는 사실, 그래서 만약 그 사람이 나를 사랑한다면 그것은 기적과도 같은 축복이자 은총이라는 사실, 이것이 바로 사랑의 진리이자 의 진리인 것입니다. -pp 135

 

 

니체의 영원회귀

 

니체의 운명애는 영원회귀라는 그의 개념과 밀접히 연결되어 있습니다. 영원회귀라는 말은 말 그대로 영원히 반복되는 세계와 삶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 니체의 묘수풀이는 사실 우리가 1000년 전에 자신이 어떤 행동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알 수 없다는 데 있습니다. 바로 이 점이 운명애를 주어진 삶의 조건에 대한 체념이나 굴종으로 만들지 않는 힘이라고 말할 수 있지요. 단지 우리가 아는 것은 지금 나의 이 행동이 앞으로 영원히 반복될 것이라는 사실 뿐입니다. -pp 266

 

 

우발성과 삶

 

거미는 자신의 거미줄을 힘이 닿는 대로 허공 속에 뿜어냅니다. 간혹 바람이 전혀 불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그러면 그의 거미줄은 허무하게도 땅바닥에 내동댕이쳐집니다. 그렇다고해서 거미가 실망하는 것은 아니겠지요. 다시 한 번 힘을 내어 허공 속으로 거미줄을 뿜어냅니다. 다행히도 이 때 신선한 바람이 불어옵니다. 그럼 이제 그 바람을 타고 거미줄은 다른 나뭇가지에 금방 둘러 붙습니다. 그런데 거미는 몹시 신중한 동물입니다. 그는 자신의 발을 그렇게 걸린 거미줄에 조용히 갖다 대고 미세한 진동을 감지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불행히도 어떤 사람이 거미줄을 찢고서 걸어갑니다. 다시 거미줄은 땅바닥으로 추락합니다. …… 마침내 거미는 이제 자신의 줄이 안전하다는 것을 확신하게 됩니다. 그리고 유유히 곡예를 하듯이 자신이 있던 나무에서 또 다른 나무로 건너가는 것이지요.

…… 그렇다면 어차피 죽을 것인데, 왜 우리는 하루하루를 힘들게 살아가야만 하는 것일까요? 여러분은 분명히 대답할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바로 우리의 삶이 탄생에서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일직선의 모습을 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삶은 항상 새로운 사건과 마주치고, 우리의 경로는 예상치 못한 일탈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 점에서 우리의 삶은 거미가 이동하는 것을 닮아 있다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항상 우발성에 노출되어 있고 항상 낯선 사건과 마주치기 때문이지요. 이 때문에 우리의 삶은 자신의 의지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법입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이것이 불행한 일로 보이겠지만, 우리는 이것이 우리 삶에 주어진 축복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기대하지 않았던 수많은 사건이 여러분의 삶을 다채롭고 특이하게 물들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pp 303

 

 

 

 

인용

목차

기독교가 빠진 자리에 들어온 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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