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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화에 나타난 존당파ㆍ존송파의 평론연구 - 4.4 이의현, 존송파(尊宋派)임에도 두보를 시의 정맥으로 보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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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화에 나타난 존당파ㆍ존송파의 평론연구 - 4.4 이의현, 존송파(尊宋派)임에도 두보를 시의 정맥으로 보다

건방진방랑자 2022. 10. 23.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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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이의현, 존송파(尊宋派)임에도 두보를 시의 정맥으로 보다

 

 

고려 말의 학자 이제현(李齊賢, 1287~1367)역옹패설(櫟翁稗說)에서 두보는 시의 표현이 절묘하고위의 책, 1권의 櫟翁稗說, 144, “杜少陵有地偏江動蜀, 天遠樹浮秦……方知此句少陵爲, 蜀傳神, 而妙處正在阿堵中也.” 동파의 시는 호탕하다위의 책, 1권의 櫟翁稗說, 158東坡云: 火色上騰雖有數, 急流勇退豈無人? 又豪宕可人.”고 하였는데 이는 소식 시에 나타나고 있는 호탕한 풍격을 평한 말이다.

 

 

 

두보를 정점으로 삼은 이의현

 

한편 이의현(李宜顯)도곡잡저(陶谷雜著)40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시는 성정을 말하는 것으로 시경삼백 편에 비록 정()과 변()이 있을지라도 대략 온유돈후라는 네 글자를 벗어나지 않았으니, 이것이 천고(千古)에 시를 논하는 표준인 것이다.……

당대(唐代)에 이르러서 더욱 정련되어 모든 시체가 두루 갖추어졌고 두릉(杜陵)이 집대성하였다. 이것이 또한 시가의 정맥이다. 시를 지음에 있어서 이런 규칙을 벗어나면 시라고 할 수 없다. 송나라 사람은 비록 스스로 기축(機軸)을 냈을지라도 또한 각자가 그 성정을 잃지 않아서 오히려 진실한 뜻이 넘치는 것이 있다.……비유하자면 시경(詩經) 삼백 편과 초사(楚辭), 한대(漢代)와 위대(魏代)의 시()로부터 성당(盛唐)의 이백과 두보 등 여러 사람에 이르기까지는 그 재주가 비록 차등이 있을지라도 모두 옥인데 옥에 또한 품질의 고하(高下)가 있는 까닭이다. ()은 옥돌과 같고 명()은 수정과 유리 등속이다.

詩以道性情. 詩經三百篇, 雖有正有變, 大要不出溫柔敦厚四字, 此是千古論詩之標的也. ……

至唐益精鍊, 衆體克備, 而杜陵集大成, 此又詩家正脉然也. 爲詩而偭此矩, 則不可謂之詩矣. 宋人雖自出機軸, 亦各不失其性情, 猶有眞意之洋溢者. …… 譬之則三百篇ㆍ초사(楚辭),漢魏以至盛唐李杜諸公, 其才雖有等差, 而皆是玉也. 玉亦有品之高下故也. 宋則珉也, 明則水晶琉璃之屬也.

 

 

이의현은 인용문에서 시의 정의, 시의 표준을 제시한 다음, 그 기준인 성정의 표현과 온유돈후한 풍격에 의거하여 역대 시를 평가하여 두보가 집성자이자 시의 정맥이라고 하였다. 아울러 송시도 성정을 잃지 않고 진실한 뜻이 표현되어 있어서 평가할 만하다고 하였다. 여기에서 하나 주목할 점은 이의현은 존송파임에도 불구하고 두보를 시의 정맥으로 인정한 바탕위에서 송시의 가치를 인정했다는 사실이다.

 

 

 

존송파는 당시를 인정한 상태에서 송시를 얘기하다

 

지금까지의 논의에서 존송파는 이백에 대하여는 표현적 측면에서 시작의 자연스러움과 재빠름[詩率意立成者], 두보에 대하여는 표현적 측면에서 절묘(絶妙), 조탁미(彫琢美), 소식에 대하여는 표현적 측면에서 기절(奇絶), 용사(用事)의 묘용(妙用), 신의(新意), 풍격(風格)의 측면에서 기개(氣槪), 호탕(浩蕩), 황정견에 대하여는 표현적 측면에서 용사(用事)의 묘용(妙用), 환골탈태(換骨奪胎), 횡요생경(橫拗生硬), 풍격의 측면에서 기개(氣槪) 등에 대하여 평론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존송파의 시론과 시평을 볼 때 주목해야 할 점은 그들의 평론을 피상적으로 보면 모두 존당파와 같은 느낌이 들고 그 평론 속에 이백과 두보의 우수한 점을 인정하고 있기 때문에 존송파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는 것이다. 그러나 존송파는 존당파에 비하여 송시의 특징을 더욱 높게 평가하고 인정하였다. 따라서 존송파는 송시(宋詩)를 추존하고 소식과 황정견의 시를 높이 평가하여 이인로는 소식과 황정견을 두보와 비견할 수 있다고까지 하였지만, 당시(唐詩)에 비해 모든 면에서 뛰어나다는 관점은 아니다. 다시 말하면 소식과 황정견의 시가 모든 면에서 당시(唐詩)보다 뛰어난 것이 아니고 당시보다 뛰어난 점이 있다는 것이다. 이는 바로 소식과 황정견이 두보, 이백보다 모든 면에서 뛰어나다는 것이 아니라 이백과 두보보다 뛰어난 점이 있다는 것이다. 존송파 역시 존당파가 파악했던 당시(唐詩)의 우수성을 인정하여 최고의 시인으로 이백과 두보, 특히 두보를 상정하고 평론을 전개하였다. 이는 황산곡이 두보를 대단히 추존한 점에서도 알 수 있다.

 

송시(宋詩)가 당시(唐詩)보다 뛰어난 점은 학문을 바탕으로 한 의론과 용사와 전고의 정확한 활용이고 다음으로는 환골탈태법을 통한 조어(造語)와 련자(鍊字)이다. 이에 대하여 존송파는 존당파보다 더욱 높게 평가하였고 한국에서 고려말과 조선초기에 송시, 즉 소식과 황정견의 시가 추존한 주된 원인이었다고 사료된다.

 

 

 

 

 

 

인용

목차

한문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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