玄軒先生集序
문장으로 이름 난 사람이 정말 적다
維少從載籍中 歷觀古之名人巨公處宰輔之地 功名著於春秋 若唐之房,杜,姚,宋 宋之韓,富,呂,范 詎不卓犖閎偉哉 乃其詞華文采 僅足以自見於一時而已 唯張曲江,陸敬輿,歐陽,司馬諸公 身都廊廟 佩天下蒼生之望 而文章之美 燀赫藝苑 蓋歷百代而僅有若而人 何其寥寥也
문장 재능과 경국의 재능을 동시에 가진 이는 더욱 더 적다
天之降才實難 或命以經濟 或畀以文詞 其能兼有而盡美者 蓋益難矣
우리 나라의 걸출한 인물들
我東文學不如中夏 固也 然其能者 往往多出於顯位 若麗之李文順,益齋,牧隱及我朝之高靈,德水,商嶺五六公 皆斡鼎軸贊辨章 而兼主詞壇之盟 殘膏賸馥 沾丏至今 雖其偏全雅俗 各有可議 要之皆庶幾不朽哉
걸출한 인물 현헌 선생
作人之效 莫盛於宣廟 而故相玄軒申公出焉 公生稟絶異之才 甫成童 博綜墳典 弱冠釋褐 歷敭華膴 爲薦紳領袖 中遘否運 厄於縲絏 囚於田里 悴於江潭 而文章益成 德譽益尊 晩際中興 首膺寵擢 握文衡掌統均 以至大拜 繼而有甲子丁卯之變 公彌綸盡瘁 上贊睿謨 下收群策 卒能夷兇弭難 再奠國步 則公雖不自尸其功 而譚相業者指故無得先公屈也 公於文詞 蓋得之天授
현헌 선생 문집의 특징
其在朝時 著述甚富 而頗放失 自癸丑來 居困處約者踰十稔 遂專精覃思 上下千古 蔚然成一家言 其爲詩不主一格 大抵出於唐人 而雜取中晩 以及盛宋諸子 擧皆割榮而攘羭焉 唯古樂府 自隆古漢魏以至隋唐 無不擬議 往往有酷肖者 亡論羅,麗所未有 卽前代名家 多所未遑 而公爲之綽然有餘地 古文詞遒逸俊發 光芒絢爛 時或步驟皇明諸大家 殆欲與之角壯而爭驅 內外篇或譚道妙 或析世務 多精詣獨到之見
문집으로 드러난 문장의 성취
至先天窺管一編 蓋入邵氏之門而闚其宎奧 非可以文字論也 夫功言之不能兼樹也 詩文之不能兩至也 自古昔以然 而公身生衰季 種學居業 卓然有立 名理爲士林之標準 位望繫國家之安危 而詩聲文軌 各擅詞場 邃識微言 直探理窟 往喆之所未全 公則備焉 諸家之所偏造 公則兼焉 若公非所謂全才大雅高視百代者耶
서문을 짓게 된 연유
公沒旣葬 胤子東陽公合公諸稿六十三卷而鋟行之 命維爲之序 維少而顓蒙 公以先人之故 辱進而敎之 得於薰染者多矣 公之在謫 維嘗爲公記旅菴 及公旣耆 維又爲文以壽公 其於公之生平 自謂粗得梗槩 今而序公之集 不敢以不文辭 九原可作 無亦有以當公意否 噫 -『谿谷集』
해석
문장으로 이름 난 사람이 정말 적다
維少從載籍中 歷觀古之名人巨公處宰輔之地
내가 어려서부터 史籍을 통해 두루 살펴보건대, 옛날의 名人 巨公으로서 재상의 지위에 몸담고 있던 이들 가운데
功名著於春秋
그 功名이 역사에 드러난 인물들을 거론한다면,
若唐之房ㆍ杜ㆍ姚ㆍ宋, 宋之韓ㆍ富ㆍ呂ㆍ范
예컨대 唐의 방ㆍ두ㆍ요ㆍ송(房杜姚宋)이나 宋 나라의 韓琦ㆍ富弼ㆍ呂夷簡ㆍ范仲淹 같은 사람들이야말로
詎不卓犖閎偉哉.
위대하고 탁월했다고 해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乃其詞華文采
그러나 詞華나 文采 면에서 평가한다면 이들 모두는
僅足以自見於一時而已.
겨우 한 시대에 자신을 드러내는 정도로 족한 인물들이었다고 하겠다.
唯張曲江ㆍ陸敬輿ㆍ歐陽ㆍ司馬諸公
다만 장곡강(張曲江 당(唐) 나라 장구령(張九齡)을 말함)ㆍ陸敬輿 당 나라 陸贄와 歐陽脩ㆍ司馬 송나라 司馬光 등 諸公만이
身都廊廟 佩天下蒼生之望
廊廟를 직접 총괄하면서 천하 창생의 기대를 한 몸에 짊어진 가운데
而文章之美 燀赫藝苑
문장에도 또한 아름다운 재능을 발휘하여 예술 세계에 찬란한 빛을 드리웠다고 해야 할 것이다.
蓋歷百代而僅有若而人
그러고 보면 대체로 백 代를 지나오는 동안에 이렇듯 몇 사람밖에 찾아 낼 수가 없으니
何其寥寥也
어쩌면 그렇게도 쓸쓸하기만 하단 말인가.
문장 재능과 경국의 재능을 동시에 가진 이는 더욱 더 적다
天之降才實難
하늘이 인재를 이 세상에 내려 주는 것을 실로 신중하게 하는 까닭에
或命以經濟 或畀以文詞
어떤 때는 經世濟民의 사명을 부여하기도 하고 어떤 때는 文詞의 재질만을 발휘하게끔 하니,
其能兼有而盡美者
이 두 가지 재능을 아울러 소유하고서 모두 아름다운 경지를 펼쳐 보일 수 있는 사람을 찾기란
蓋益難矣
그래서 더더욱 어려운 일이라고 할 것이다.
우리 나라의 걸출한 인물들
我東文學不如中夏 固也
우리 동방의 문학이야 물론 중국만은 못하다 하겠지만
然其能者 往往多出於顯位.
그래도 이 분야에 능한 이들이 이따금씩 고관(高官)들 중에서 상당수 나오기도 하였다.
若麗之李文順ㆍ益齋ㆍ牧隱及我朝之高靈ㆍ德水ㆍ商嶺五六公
가령 高麗朝의 李奎報ㆍ李齊賢ㆍ李穡이나 我朝의 高靈 申叔舟ㆍ德水 李荇ㆍ商嶺 金貴榮 등 5~6公으로 말하면,
皆斡鼎軸贊辨章 而兼主詞壇之盟
모두 정승의 직책을 수행하면서 均明한 정치가 이루어지도록 임금을 도왔었는데, 이와 함께 詞壇의 盟主 자리에 올라
殘膏賸馥 沾丏至今
지금까지도 그 餘澤을 후세에 끼쳐 주고 있는 터이다.
雖其偏全雅俗 各有可議
그들 각자에 대해서 살펴볼 때 누가 치우치고 온전하며 누가 고상하고 비속한지 물론 의논할 만한 요소가 있다고는 하겠으나,
要之皆庶幾不朽哉
요컨대 이들 모두는 그런대로 불후(不朽)의 영역에 속하는 인물들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걸출한 인물 현헌 선생
作人之效 莫盛於宣廟
우리나라에서 인재를 양성하여 실효를 거둔 것으로 말한다면 宣廟 때에 이르러
而故相玄軒申公出焉
最高潮에 달했다고 할 것인데, 故相 玄軒 申公도 바로 이때 세상에 출현하였다.
公生稟絶異之才
공은 선천적으로 특별히 비범한 재능을 품부받고 태어나 소년기에 접어들면서
甫成童 博綜墳典
벌써 三墳五典(중국의 상고 시대의 서책들을 말함)을 널리 達通하였고
弱冠釋褐 歷敭華膴 爲薦紳領袖
弱冠의 나이에 벼슬길에 오른 뒤 두루 화려한 직책을 역임하며 薦紳들의 領袖가 되었다.
中遘否運 厄於縲絏
그러다가 중도에 좋지 못한 운세를 만나는 바람에 결박당한 채 고초를 겪는가 하면
囚於田里 悴於江潭
시골에서 연금생활을 하기도 하고 초췌한 안색으로 물가를 거닐기도 하였는데,
而文章益成 德譽益尊
그럴수록 문장은 더더욱 이루어지고 德譽는 더욱더 높아지기만 하였다.
晩際中興 首膺寵擢
그리하여 만년에 이르러서 中興(인조반정을 말함)을 맞이하게 되자 맨 먼저 발탁되는 은총을 입고
握文衡掌統均 以至大拜
홍문관 대제학과 이조 판서의 직책을 수행하였으며 마침내는 정승의 지위에 오르게 되었다.
繼而有甲子丁卯之變
그리고 그 뒤 잇따라 일어난 갑자년(1624, 인조 2)의 변란과 정묘년(1627, 인조 5)의 변란 때에도
公彌綸盡瘁
공이 있는 힘을 다 기울여 다방면으로 수습하면서
上贊睿謨 下收群策
위로는 임금의 계책을 돕고 아래로는 뭇사람들의 주장을 거두어 써서
卒能夷兇弭難 再奠國步
마침내 흉적을 섬멸하고 변란을 막아 낸 결과 국가를 다시 반석 위에 올려놓았다.
則公雖不自尸其功
그러고 보면 공이야 물론 공로를 세웠다고 자처하지 않겠지만
而譚相業者指故無得先公屈也
정승으로서의 업적을 이야기하는 자의 입장에서는 아무래도 공에 앞서서 다른 사람을 손꼽을 수는 없으리라고 여겨진다.
公於文詞 蓋得之天授
공은 文詞 방면에 있어서도 대체로 선천적인 재능을 부여받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현헌 선생 문집의 특징
其在朝時 著述甚富 而頗放失
그런데 공이 조정에 몸담고 있을 때 저술한 것들이 매우 많았는데 상당량이 그만 분실되고 말았다.
自癸丑來 居困處約者踰十稔
그러다가 계축년(1613, 광해군 5) 이래로 10년 넘게 고달픈 생활을 하는 동안
遂專精覃思 上下千古 蔚然成一家言
마침내 온 정신을 기울여 사색에 전념한 결과 上下 千古에 걸쳐 성대하게 一家를 이루게끔 되었다.
其爲詩不主一格 大抵出於唐人
그 詩의 성격을 살펴보건대, 하나의 격식에 매이지는 않았으나 대체로는 唐 나라 시인들을 기초한 것으로서
而雜取中晩 以及盛宋諸子
中唐과 晚唐으로부터 盛宋에 이르는 시기의 諸子들을 뒤섞어 취했다고 할 것인데,
擧皆割榮而攘羭焉
擧皆가 그들이 피워 낸 꽃술을 따고 그들이 길러 낸 숫양을 竊取한 것들이라고 하겠다.
唯古樂府 自隆古漢魏以至隋唐
다만 古樂府의 경우에 있어서만은 융고(隆古 古代의 전성기)로부터 漢ㆍ魏를 거쳐 隋ㆍ唐에 이르기까지
無不擬議 往往有酷肖者
두루 상고하며 취급하지 않은 것이 없지만 그런 가운데에서도 이따금씩 너무도 비슷한 것들이 나타나곤 한다.
亡論羅ㆍ麗所未有
여하튼 간에 新羅 시대나 高麗 시대를 막론하고 이런 작품 세계는 아직껏 있지를 않았고
卽前代名家 多所未遑
또 前代의 名家들이라 할지라도 대부분 그렇게 할 겨를이 없었는데
而公爲之綽然有餘地
공만이 이런 일을 참으로 여유작작하게 해낸 것이었다.
古文詞遒逸俊發 光芒絢爛
또 古文 형식의 글을 보더라도 힘차면서 천재성이 드러나는 가운데 그 광채가 현란하기만 하다.
時或步驟皇明諸大家
그리하여 어느 땐가 혹 황명(皇明)의 여러 大家들과 응수할 기회를 갖게 되기라도 하면
殆欲與之角壯而爭驅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여 과연 누가 더 힘이 세며 누가 더 잘 달리는지 겨루어 보려고도 하였던 것이었다.
內外篇或譚道妙
공의 문집을 보면 內篇과 外篇에서 혹 道體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하고
或析世務 多精詣獨到之見
혹 세상의 일을 분석적으로 논하고 있기도 한데, 대부분 정밀한 조예와 공만의 독특한 견해를 펼쳐 보여 주고 있다.
문집으로 드러난 문장의 성취
至先天窺管一編
그리고 《天窺管》 한 編으로 말하면,
蓋入邵氏之門而闚其宎奧
대개 소씨(邵氏 宋 邵雍임)의 학문 분야에 들어가서 깊이 숨겨진 비밀 세계를 엿본 것이라고 할 것이니,
非可以文字論也
이는 문자를 가지고 논할 성격의 것이 아니라고 하겠다.
夫功言之不能兼樹也
대저 立功과 立言의 경지는 아울러 이룩할 수가 없는 것이고
詩文之不能兩至也
또 시의 세계와 산문의 세계 모두에서 최고의 수준을 보여 주는 것은 불가능한 일로서
自古昔以然
이는 오랜 옛적부터 당연시되어 왔다고 할 것이다.
而公身生衰季 種學居業
그런데 공은 쇠퇴기에 접어든 말세에 태어났음에도 불구하고 학문을 쌓고 문예에 종사하여
卓然有立
탁월한 업적을 성취하였다.
名理爲士林之標準 位望繫國家之安危
그리하여 그 名理가 士林의 표준이 되고 그 位望이 국가의 安危와 직결이 되어 있는 가운데
而詩聲文軌 各擅詞場
시와 산문 양쪽 분야에서 각각 宗匠의 위치를 독점하였는가 하면
邃識微言 直探理窟
심원한 학식과 은미한 언사로 곧장 道體를 탐색해 들어갔던 것이었다.
往喆之所未全 公則備焉
그러고 보면 과거의 哲人들이 온전하게 행하지 못했던 것에 반해 공은 이를 제대로 갖추었고
諸家之所偏造 公則兼焉
諸家가 한 분야에만 머물렀던 데 비해 공은 양쪽 모두를 겸하였으니,
若公非所謂全才大雅高視百代者耶
공 같은 인물이야말로 이른바 재능을 온전히 발휘한 큰 선비로서 百代를 鳥瞰한 이라고 해야 하지 않겠는가.
서문을 짓게 된 연유
公沒旣葬 胤子東陽公合公諸稿六十三卷而鋟行之
공이 별세하여 장례를 치른 뒤에 胤子인 동양공(東陽公 申翊聖)이 공의 유고 63권을 모아 간행하면서
命維爲之序
나에게 서문을 쓰도록 명하였다.
維少而顓蒙 公以先人之故
그런데 나로 말하면 어려서 아무것도 모를 때에 공이 先人의 친구였던 인연으로
辱進而敎之 得於薰染者多矣
외람되게 공의 앞에 나아가 가르침을 받으면서 감화된 바가 많았었다.
公之在謫 維嘗爲公記旅菴
그리고 공이 유배 중에 있을 때에는 내가 일찍이 공을 위하여 旅菴의 記文을 지은 적이 있었고,
及公旣耆 維又爲文以壽公
그 뒤 공이 춘추 60을 맞았을 때에는 내가 또 글을 지어서 공을 위해 祝壽한 적도 있었다.
其於公之生平 自謂粗得梗槩
그러고 보면 공의 평소 행적에 대해 내가 생각해도 조금은 그 대체적인 내용을 알고 있다고 여겨지기에
今而序公之集 不敢以不文辭
지금 와서 공의 문집에 서문을 쓰는 일을 감히 글재주가 없다는 이유로 사양할 수가 없었다.
九原可作 無亦有以當公意否 噫 -『谿谷集』
그러나 지하에 계시는 공께서 일어나 보신다면 과연 공의 뜻에 맞게 지어졌다고 여기실지 어떨지 모를 일이다. 아!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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