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풍이 휩쓴 상황에서 나온 당풍을 지닌 시인들
국조(國朝)의 시체(詩體)가 비록 서로 같지 않으나 대개 당풍과 송풍이 뒤섞여 있는데, 송풍이 더 많다. 가정(嘉靖)과 만력(萬曆) 연간에 최고죽(崔孤竹) 2,백옥봉(白玉峯) 3,이손곡(李蓀谷) 4 세 사람이 당풍으로 자임하였다. 내가 그들의 시를 보니 기력(氣力)과 조격(調格)은 비록 미치지 못하는 점이 있었으나, 당풍을 닮지 않았다고 할 수 없었다. 이 세 사람 이후로 이지봉(李芝峯) 5이란 사람이 뒤를 이어 나왔는데, 그의 시 역시 최고죽이나 이손곡의 체(體)였다. 이지봉 이후에 신군택(申君澤)이 뒤를 이어 나왔는데, 그의 시는 맑고 아름다워 맛이 있었다. 그러니 군택은 참으로 이지봉과 어깨를 나란히 한 사람이다.
신군택이 유배된 곳이 문학하기 좋은 곳
군택이 뜻밖의 재앙에 걸려 강계(江界)로 내쳐졌는데, 강계는 훈육씨(獯鬻氏) 6와 접해 있으면서 큰 강으로 경계가 나뉘어 있으므로 강계라고 부른다. 이 강은 백두산(白頭山)에서 발원하여 천여 리를 흘러 바다로 들어간다. 주자(朱子)가 천하의 삼대수(三大水)를 논한 가운데 이 압록강이 들어 있으니 7, 참으로 천하의 장관이다. 군택이 이 땅으로 유배된 것이 어찌 조물주가 그의 필력(筆力)을 돕고자 해서가 아니란 것을 알겠는가.
장열의 예처럼 산택이 그의 시를 도우리
옛날에 장열(張說)이 악주(岳州)에 유배된 이후로 시가 전에 지은 것들보다 훨씬 훌륭하였으므로, 당시 사람들이 강산이 도운 것이라고 하였는데 8 군택 역시 그러하였다. 얼마 뒤면 사환(賜環) 9되어 와서는 필시 나에게 자신이 지은 여러 작품을 보여 줄 것이니, 나는 그때 마땅히 술잔을 잡고서 다시금 품평할 것이다. 무술년(1658, 효종9) 여름에 동명은 쓴다.
인용
- 신유(申濡, 1610~1665)로, 본관은 고령(高靈), 자는 군택(君澤), 호는 죽당(竹堂)ㆍ이옹이다. 1657년(효종8)에 대사간으로 있으면서 국왕을 능멸하였다 하여 강계에 유배되었다가 천안으로 옮겨졌다. 그 뒤 유배에서 풀려나 현종조에 형조 참판, 예조 참판 등을 역임하였다. 글씨에 능하였으며, 저서로는 《죽당집》이 있다. [본문으로]
- 고죽은 최경창(崔慶昌, 1539~1583)의 호이다. 본관은 해주(海州)이고, 자는 가운(嘉運)이다. 박순(朴淳)의 문인이며, 당시(唐詩)에 뛰어나 백광훈(白光勳)ㆍ이달(李達)과 함께 삼당 시인(三唐詩人)으로 불렸는데, 시가 청절하고 담백하다는 평을 얻었다. 또한 문장에도 뛰어나 하응림(河應臨)ㆍ송익필(宋翼弼) 등과 함께 팔문장(八文章)으로 일컬어졌으며, 서화에도 뛰어났다. 저서로는 《고죽유고(孤竹遺稿)》가 있다. [본문으로]
- 백광훈(白光勳, 1537~1582)으로, 삼당 시인 중의 한 사람이다. 본관은 해미(海美), 자는 창경(彰卿), 호는 옥봉(玉峯)이다. 선조조에 이산해(李山海)ㆍ최립(崔岦) 등과 더불어 팔문장(八文章)으로 불렸다. 글씨에도 일가를 이루어서 영화체(永和體)에 빼어났다. [본문으로]
- 손곡은 이달(李達, 1539~1612)의 호이다. 이달은, 본관은 신평(新平), 자는 익지(益之), 또 다른 호는 서담(西潭)ㆍ동리(東里)이다. 홍주(洪州)의 관기(官妓)에게서 태어나 서자로 자랐다. 원주 손곡에 묻혀 살았기에 호를 손곡이라고 하였다. 처음에는 당시 유행에 따라 송시(宋詩)를 배우다가, 정사룡(鄭士龍)에게 두보(杜甫)의 시를 배웠다. 자신과 시풍이 비슷한 최경창, 백광훈과 어울려 시사(詩社)를 맺었는데, 문단에서 이들을 삼당 시인이라고 불렀다. 이들은 봉은사를 중심으로 하여 여러 지방을 찾아다니며 시를 지었는데, 주로 전라도에서 많이 모였다. 임제(林悌), 허봉(許篈), 양대박(梁大樸), 고경명(高敬命) 등과도 자주 어울려 시를 지었다. 저서로는 《손곡집》이 있다. [본문으로]
- 지봉은 이수광(李睟光, 1563~1628)의 호이다. 이수광은,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윤경(潤卿)이다. 이조 판서를 지냈으며, 사신으로 여러 차례 명나라에 다녀오면서 천주교 지식과 서양 문물을 소개하여 실학 발전의 선구자가 되었다. 저서로는 《지봉유설(芝峯類說)》, 《채신잡록(采薪雜錄)》 등이 있다. [본문으로]
- 북방 오랑캐를 칭하는 말로, 여기서는 후금(後金), 즉 청(淸)나라를 가리킨다. [본문으로]
- 주자가 말하기를 “천하에는 세 개의 큰 물이 있으니, 강수(江水), 하수(河水), 혼동강(混同江)이 이것이다.” 하였는데, 강수는 양자강, 하수는 황하, 혼동강은 압록강을 말한다. [본문으로]
- 장열은 당나라 낙양(洛陽) 사람으로 자는 도제(道濟)ㆍ열지(悅之)이며, 연국공(燕國公)에 봉해졌다. 문장이 뛰어나서 허국공(許國公) 소정(蘇頲)과 함께 이름을 나란히 하여 연허대수(燕許大手)라고 칭해졌다. 현종(玄宗) 때 어떤 일로 인해 당시의 권신(權臣)인 요숭(姚崇)의 모함을 받아 악주(岳州)로 쫓겨났다가 얼마 뒤에 복관(復官)되었는데, 그 이후로 시가 더욱 처완(悽惋)해졌으므로, 사람들이 “강산이 도운 것이다.”라고 했다. 《全唐詩話 人物》 [본문으로]
- 귀양살이에서 풀려나는 것을 말한다. 옛날에 대부(大夫)가 임금에게 죄를 얻고 국경에서 처분을 기다릴 때 임금이 결(訣)을 주면 돌아오지 말라는 것이요, 환(環)을 주면 돌아오라는 뜻이었다. 환(環)과 환(還)의 음이 같기 때문에 이렇게 이르는 것이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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