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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선생 중용강의, 27장 - 9. 존덕성(尊德性)과 도문학(道問學)의 조화로운 학문풍토를 위해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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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선생 중용강의, 27장 - 9. 존덕성(尊德性)과 도문학(道問學)의 조화로운 학문풍토를 위해

건방진방랑자 2021. 9. 21. 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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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9. 존덕성(尊德性)과 도문학(道問學)의 조화로운 학문풍토를 위해

 

 

치지(致知)가 모든 학문에 위세(威勢) 떠는 세상의 문제점

 

그런데 또 지금 현대문명의 가장 큰 문제가 뭡니까? 치지(致知)라는 게, 그 자체가 물리학이 되었건 뭐가 됐건, 그 과학적 지식이란 것이 결국은 내성(內聖외왕지학(外王之學)에서 보면 일면에 불과한 것인데도 불구하고, 마치 모든 진리를 다 말하는 것처럼 모든 것에 군림하고 있으니 이런 넌센스가 어디 있냔 말이야. 서양의 과학, 그것은 동양에서 말하는 치지(致知)의 일부분일 뿐인데, 그걸 좀 배웠다고 그것이 마치 절대적인 뭐나 되는 것처럼 착각을 하고 사람들을 겁주고 있으니. 물리학이나 생물학이니 하는 모던 사이언스라고 해봐야 그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환경에 대한 하나의 이해일 뿐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물질적 세계를 지배하는 법칙에 대한 하나의 물음일 뿐이라고. 그것은 주자가 말한 격물치지와 완벽하게 동일한 외연과 내포를 갖는 세계일뿐이야! 그 격물의 참뜻을 회복해야만 존덕성(尊德性)과 도문학(道問學)이 함께 설 수가 있어요!

 

여러분들이 초등학교 때부터 대학까지 줄곧 한 것은 바로 도문학(道問學)일 뿐입니다. 그것도 서양에서 발달한 얄팍한 것만 배운 거야. 존덕성(尊德性)이 빠졌고 여기 왼쪽 세트가 다 빠져 버렸어요. 교육이란 게 뭐예요? 도문학(道問學)을 하는 이유가 뭐냐구? 존덕성(尊德性)과 도문학(道問學)이 일체를 이루고 있는 이 중용(中庸)적 세계를 탐구하는 것이 바로 교육이 지향하는 목적점 아냐? 그런데 지금 이 도문학(道問學), 이 오른쪽 꺼만 하고 있다 이거야. 그래서 쪼금은 정미(精微)로워졌지? 쪼금 새로워지는 것 같았지? 그러나 그것만 가지고는 안 되요. 이 양면이 통합되는 새로운 존덕성(尊德性)과 도문학(道問學)을 추구하는 학문이 필요합니다. 내가 하고 있는 기철학이 바로 그 세계예요.

 

과학이라는 것에 떨 것 없어요. 과학이라는 것은 결국 세계를 아는 것입니다. 공룡이 어떻게 죽었어? 최근의 학설은 외계로부터 운석이 떨어져서 그것이 햇빛을 가리는 바람에 멸종됐다는데, 그것도 일설일 뿐이예요. 그리고 사람도 언제 그런 일을 당하게 될 지 누가 알아? 그렇게 되면 아인슈타인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그 지식이 무슨 소용이 있냐구. 그러니까 여러분들은 그런 것에 너무 현혹되지 말아라 이거야. 아무리 위대한 스티브 호킹이 무슨 말을 할지라도 그것은 부분적으로만, 그의 설이 기반하고 있는 가정 위에서만 참일 뿐입니다. 거기에 속을 것 없어요. 물론 그것을 정확하게 배우려는 도문학(道問學)의 자세는 항상 가져야 하겠지만. 인간에게 가장 진실한 것은 궁극적으로 인간이 산다라는 것 그 사실 밖에는 없습니다. ! 본문을 봅시다.

 

 

 

격물(格物)하면서 그와 동시에 치지(致知)하라

 

그러므로 군자는 하늘로부터 받은 덕성을 높이면서도 동시에 묻고 배움에 말미암으며, 넓고 큰 데 이르면서도 동시에 정밀하고 미세한 것을 다하며[故君子尊德性而道問學, 致廣大而盡精微],” 여기에 내가 전에 속지 말라고 얘기한 것이 바로 나왔죠? 여러분들의 가능성을 밟아 죽이는 게 뭐라 했어요? 넓게 공부하면 깊이가 없고, 깊게 파면 넓지 못하다는 이런 개똥같은 말이 어디 있느냐고 했잖아! 진실로 넓게 공부하면 깊어질 수밖에 없고 진실로 깊어지면 넓어질 수밖에 없어요! 여기 중용(中庸)이 말하고 있잖아.

 

넓고 큰 데 이르면서도 동시에 정밀하고 미세한 것을 다하며, 높고 밝은 것을 지극하게 하면서도 동시에 일상의 비근한 것에 말미암을 줄 알아야 한다[致廣大而盡精微, 極高明而道中庸].” 중용(中庸)의 정신은 바로 이런 것이에요. 여러분들은 이 말은 꼭 기억하도록!!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 이것도 해석들이 죄다 엉터리예요. 하나같이 옛 것을 배워서 새 것을 알아라”, 이따위로 해석을 하는데, 그것은 그렇게 해석될 수가 없어요. 온고(溫故)는 존덕성(尊德性)의 세계예요. 지신(知新)은 도문학(道問學)의 세계예요. 이것을 동시에() 할 줄 아는 포괄적 인격을 가져라! 그 말입니다. “항상 내 속에 있는 본래적인 덕성, 내가 이미 알고 있는 바를 늘 음미하고 반추하면서도[溫故], 동시에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탐구하고 그것을 아는 것[知新]에 힘써라.” 끝으로 그 덕성을 돈독하게 하면서도 동시에 그것으로써 예를 높일 줄 알아야 한다.”라고 합니다.

 

 

尊德性 道問學
致廣大 盡精微
極高明 道中庸
溫故 知新
敦厚 崇禮
至德 至道
存心 致知
內聖 外王
형이상학의 세계 형이하학의 세계
내면세계에 관한 추구 인간의 앎의 추구

풍우란의 중국사상사를 보는 눈 : 新原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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