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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 - 1. 알라딘의 순수한 욕망과 한계 본문

연재/시네필

알라딘 - 1. 알라딘의 순수한 욕망과 한계

건방진방랑자 2019. 6. 10.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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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알라딘의 순수한 욕망과 한계

 

 

 

알라딘에서 가장 유명한 노래. 이 노래가 회자되는 탓에 지금껏 사랑이야기로만 알고 있었다.

 

 

알라딘은 초등학생 때 봤었던 애니메이션이다. 디즈니 특유의 선악이 확실히 나눠지는 내용에 뮤지컬스러운 흥겨운 음악이 있으며, 단선적인 스토리의 흐름은 초등학생이었던 나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고 이젠 더 이상 이런 식의 단선적인 스토리를 지닌 영화가 아닌 여러 가지를 복합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영화를 좋아하게 되었다. 그런데도 왜 갑자기 이 영화를 보고자 했던 것인가?

저번 토요일(2009314)에 이문세씨의 라디오 프로를 듣던 중에 알라딘을 맛깔나게 해석해주는 것을 듣고 다시 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오랜만에 다시 이 애니메이션을 꺼내들었다. 과연 15년이나 지난 지금 보는 느낌은 어떨 것인가?

과연 명작은 명작이었다. 지금 봐도 전혀 유치하거나 어색하거나 하진 않았다. 여러 메시지들이 보여서 또 다시 보고 싶을 정도로 좋았다. 이 안에도 어떤 요행수를 바라는 인간의 모습(자파)이나 사랑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극히 단순한 인간의 모습(알라딘)이 드러나고 있긴 했지만, 그것 외에도 초등학생 때는 보이지 않던 더 많은 내용들이 그 안에 들어 있더라. 역시 좋은 영화는 볼 때마다 새롭게 보이는 게 있긴 하다.

 

 

욕망의 화신이 되면 999개를 가졌던, 9999개를 가졌던 상관 없다. 남이 가진 1개라도 더 갖기 위해 혈안이 되게 된다.    

 

 

 

욕망의 화신, 알라딘: 순수한 욕망?

 

인간은 과연 만족을 아는 존재일까? 이건 나의 오랜 생각거리다. 99개를 가진 사람은 그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1개를 가진 사람 것까지 차지하려 한다는 얘기를 듣지 못했던가? 과연 그게 인간의 본성이란 말인가? 그런 욕망을 제어할 수 있는 힘이나 의지란 없다는 말인가?

하지만 그럼에도 희망을 가지고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그렇게 욕망의 노예가 되어 살겠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않을 것이라 믿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아니, 어쩌면 그렇게 생각하고 싶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 차에 이 영화를 봤다.

여기에는 두 사람이 대비적으로 나온다. 물론 많은 인물들이 나오지만 이야기의 두 축을 구성하는 두 인물을 통해 이야기를 풀어가도록 하자.

그 한 축은 알라딘이란 청년이다. 알라딘은 순수한 사람이다. 가난하긴 해도 희망을 지니고 있고 돈을 쌓아두는 것보다 그저 한 끼 때울 수 있으면 그걸로 족하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쌍한 사람들을 보면 자기의 한 끼의 식사마저 포기할 줄 아는 사람이다.

이쯤 되면 우린 알라딘의 욕망이 참 건전함을 알 수 있다. 욕망의 노예로 살기보다 자신이 제어할 수 있으며, 주변 사람과도 나눌 수 있으니 말이다. 바로 이런 장면을 보면서 알라딘은 그래도 자신의 욕망은 컨트롤할 수 있을 거라 기대하게 된다.

 

 

순수한 욕망이란 내가 가진 것을 나눌 수 있고 자신이 가질 수 있는 것 이상을 추구하지 않는 욕망이다.

 

 

 

욕망의 화신, 알라딘: 순수한 욕망도 아차하는 순간!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그가 지니를 처음 알게 되었을 때 지니에게 나는 두 가지 소원만 말하고 나머지 하나는 너를 위해 쓰겠어라고 말한다. 그 말은 곧 그에게 자유를 주겠다는 뜻이다.

하지만 정작 두 가지 소원을 말하고 난 다음에 그는 어떻게 했는가? 두 말하면 잔소리다. 그는 자신의 순수한 마음에서 나왔던 스스로의 약속을 져 버렸다. 어느 순간 그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욕망의 화신이 되어 욕망의 지배를 받게 되었던 것이다. 자신이 바라던 모든 일을 이뤘지만, 여전히 모든 게 불안하다보니 지니를 놓아줄 수 없었던 것이다.

 

 

자신이 쌓아 올린 것이 아니기에, 요행으로 만든 결과이기에 지니를 절대 놓아줄 수 없다. 순수한 욕망은 순식간에 변한다.

 

 

이렇게 말하고 나니 알라딘의 모습에 우리들의 모습이 겹쳐진다. “1억만 모으면 정말 행복할 거 같아. 그때쯤 되면 아무 걱정 없이 내가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살아야지.”라고 말하며 악착 같이 돈을 모으거나, 영화 타짜애서처럼 잃은 돈에 대한 분개함으로 화투판에 끼어든 고니가 잃은 돈의 5배만 따면 이 판을 떠나겠다.”고 호언장담하거나 하는 모습 말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순수한 욕망 그대로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정작 그게 이루어지고 난 다음엔 어떠한가? 혹여나 누가 이 돈을 가져가지나 않을까 노심초사하고 돈을 가만히 놀리면 그 가치가 줄어들기 때문에 어떻게든 재투자하여 좀 더 많은 수익을 얻으려 하며, 막상 돈을 버는 법을 알았는데 여기서 포기하는 건 어리석은 짓이라 생각하여 화투판을 떠나지 못한다. 처음의 마음 따위는 온데간데없다. 어느 순간 자신은 돈을 위해 살아가는 하인이 되어 있을 뿐이다.

이처럼 욕망의 하인이 되는 순간, 자기의 삶은 없어진다. 결국 알라딘은 욕망의 화신이 되는 순간 모든 것을 잃었던 것처럼 우리 또한 그런 악순환에서 결코 예외일 순 없다.

 

 

순수했던 청년 알라딘은 온데간데없이 욕망의 화신만이 남았다. 알라딘이 지니에 집착할수록 지니도, 아부도, 양탄자도 멀어져만 간다.

 

 

인용

목차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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