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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고구려 패러다임으로 쉬프트하라 - 11. ‘나의 살던 고향은’ 질의응답Ⅰ 본문

연재/시네필

고구려 패러다임으로 쉬프트하라 - 11. ‘나의 살던 고향은’ 질의응답Ⅰ

건방진방랑자 2019. 4. 23. 1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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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나의 살던 고향은질의응답

 

 

 

우리는 역사를 잘못 알고 있다

 

Q

영화를 보니 그간에 상상으로만 알게 있던 것들이 구체화, 실체화되어 좋았습니다. 이 기회에 젊은이들에게 하나의 역사적 실체를 보여줄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고조선에 대해서도 지금과 같은 열정으로 한 번 전체적으로 조명해주실 생각은 없으신가요?

 

A

김부식이가 삼국사기三國史記를 썼다는 것은 그 이전의 역사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다는 얘기이기도 합니다. 신라ㆍ백제ㆍ고구려의 건국을 시조설화를 빌려 설명하고 있는데, 이런 엉터리가 어디에 있습니까? 그 전에 아무 것도 없던 허허벌판에, 문화도 없던 곳에 나라가 어찌 갑자기 건국이 됩니까? 삼국의 시작 자체를 순 엉터리로 기술한 것이죠. 지금의 우리의 감각에서 본다면 말이예요.

마지막에 갔던 성자산성은 연변대학에서 몇 분 거리에 있음에도 아무도 찾지 않는 곳이예요. 환도산성의 옆의 초원엔 무덤떼가 쫙 있는데, 여긴 아무 것도 없죠.

 

 

환도산성의 무덤군. 이곳은 확실히 무언가 있어 보이지만 성자산산성은 우리 시골의 풍경과 다르지 않다.  

 

 

고구려에서 먼저 산성을 짓는 것은 그 당시에는 항상 외적의 침입이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전시에 안전하게 모일 수 있는 성을 지어 방비체계를 만들어 놓으면, 그 주변의 사람들은 안심하고 살게 됩니다. 그래서 성 주변에는 엄청난 도시들이 형성되고, 요게 히랍역사에 등장하는 하나의 폴리스 같은 거라 할 수 있습니다. 도시국가를 형성하는 것이고, 수백 개의 도시국가들의 네트워크가 바로 고구려라 할 수 있는 것이죠.

그러니 고구려라는 게 우리가 생각하는 국가 개념으로 생각하면 안 되는 겁니다. 이게 매우 독특한 것이죠. 우리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할 때 히랍 역사의 델로스동맹 같은 경우는 매우 근사하게 생각하지만, 고구려 네트워크는 그쪽 규모보다 훨씬 더 크단 말이예요.

우리들의 고대사에 대한 인식이라는 게 아까 흘승골성(졸본성)에 가서 보면, 거긴 같은 시기인 마사다 요새 규모의 몇 배거든요. 그게 최초의 도읍이라 했는데, 김부식은 삼국사기에서 신라의 건국보다 늦게 설정한 겁니다. 무려 고구려의 건국을 신라의 연호를 써서 기술하고 있는 것이죠. “박혁거세 몇 년에 졸본성이 만들어졌다고 기술하고 있으니, 명백하게 거짓말입니다. 그건 신라사 중심으로 쓰게 되니까 그렇게 된 것이죠. 그래서 단재丹齋(1880~1936) 선생은 아무리 고구려 건국을 늦게 잡아도 (삼국사기에 쓰여 있는 것보다) 200년은 높여야 한다고 했는데, 내가 보기엔 그것보다 몇백 년 더 높여야 한다고 봅니다.

 

 

멀리 우뚝 솟은 졸본성이 보인다. 뭔가 영험한 느낌이 가득 든다.  

 

 

그 배경이라는 게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고구려는 갑자기 생길 수가 없기 때문이죠. 그 전에 북부여가 되었든, 말갈이 되었든, 예맥이 되었든, 모든 것들이 고구려라는 하나의 통합적인 이름으로 형성될 수 있는 역사가 있었다고 보아야 합니다. 그러니 고구려의 역사는 틀림없이 BC 3~4년으로 올라가야 하는 거죠.

지금은 동북지역이라 하면 굉장히 춥고 후미진 곳으로만 생각합니다. 근데 저 중원지역보다 훨씬 더 광대하고, 풍요로운 지역이죠. 그러니까 맑스Marx, K(1818~1883)얘기로 하면, “가장 인구가 많고 하부구조가 더 단단하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높은 곳에 돌을 날라 성을 쌓았을 생각을 하면, 짚신 신고 그 성을 다 구축했을 것을 생각하면, 하부구조의 전제가 없이 어떻게 그런 게 가능하겠습니까?

고인돌에 석실이 있었고, 그걸 돌로 쌓은 걸 적석총이라 하는데, 고인돌의 분포야말로 만주로부터 전라도까지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고인돌의 경우는 하찮게 보다가 영국의 스톤헨지를 보면 ~ 이거 참 대단하다고 합니다. 고인돌은 개똥인 줄 안다니까요(일동 웃음). 우리가 이렇게 역사를 잘못 알고, 우리 것을 천시하고, 그게 체질화되어 있다고요. 왜 이렇게 됐냐면, 그건 일본인들이 우리 역사를 제일 먼저 썼기 때문에, 그래서 경성제국대학 사학부가 일본 사람들의 멘털리티를 다 이어받아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그 분 중에는 학문적인 실력이 뛰어난 분들이 많이 있지만, 한 번 잘못된 인식구조를 어떻게 뜯어고치겠습니까. 그저 해만 끼치는 거죠.

 

 

고인돌의 분포로 보면 삼국 이전에 엄청난 하부구조가 있었음을 유추할 수 있다.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

 

Q

제가 학교 다닐 때 제일 싫어했던 과목이 역사였습니다. 사람이름과 숫자만 나와서 재미가 없었는데, 오늘 영상처럼 이렇게 살아있는 역사를 본다면 얼마나 재밌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 보여준 코스 그대로 탐방 일정을 추진하실 생각은 없으신가요?

 

A

내 인생은 너무 귀하기 때문에 같은 일을 두 번 반복하지는 않아요(이 대답을 듣는 순간, 우치다쌤이 전주강연 질의응답시간에 했던 죄송합니다라는 말이 떠올랐다).

 

 

도올 선생은 단호히 말했다. "한 번 간 곳을 다시 갈 정도로 시간이 한가하지 않다" 

 

 

 

우리의 주체적인 역사는 우리가 직접 써야 한다

 

Q

영화 끝부분에 나의 살던 고향은을 같이 합창했고, 백두산에서 홍익인간을 외치는 장면이 감동적이었습니다. 아까 선생님께서 역사는 감이다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북한사람들의 역사에 대한 감은 어떤지 궁금합니다. 북한의 저서라든지, 북한학자들의 감을 영화제작에 반영하셨는지 알고 싶습니다.

 

A

북한에서 나온 책들은 빠짐없이 읽었습니다. 북한 학자들은 위대합니다. 북한 학자들은 우스운 사람들이 아닙니다. 참고로 70년대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학문이 북한에 어림도 없었어요. 근데 80년대부터 경제상황이 나빠지면서, 학문이 기울고 교조적으로 되었습니다. 그래도 사실 고대사를 파헤치는데 북한 학자들의 저술은 아주 결정적인 근거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일본학자들은 북한 학자들을 존경하지 남한 학자들을 존경하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내가 할 일은 간단합니다. “너희들(중국, 일본) 맘대로 떠들어라라고 하는 거예요. 미국학자인 하버드대 교수가 로마사를 쓰는데, 이태리 사람들에게 양해를 구하지는 않잖아요. 옛날 역사는 맘대로 쓰는 거예요. 중국 사람들도 고구려사를 맘대로 써도 됩니다. 그처럼 나도 중국역사나 일본역사를 한국역사의 일부분으로 쓰겠다, 이겁니다(일동 웃음). 도올이라는 학자가 정말 훌륭한 학자가 되어서 엄밀한 학문적인 식견을 지닌 그 사람이 이렇게 말했다고 외국학자들이 인용할 수 있을 정도가 되어야 하는 거죠.

이 권위를 가지고 내 맘대로, 막말로 좆 꼴리는 대로 쓰겠다 이겁니다. 이제 거의 70살도 되어 가는데 뭘 눈치를 봐 눈치를. 20년 남은 동안에 내가 유감없이 쓸 거예요(일동 박수). (때마침 청소년으로 보이는 아이가 극장을 나갔다. 그러자) 쌍말로 하니까 어린애가 나가네(일동 웃음). 앞으로는 우리의 주체적인 역사를 우리가 써야 합니다. 그런데 공부를 깊게 해서 넓은 식견을 가지고 써야만 합니다.

 

 

개인적으로 도올 선생의 노자나 장자 한글역주 시리즈를 기다리는 입장에서, 앞으로도 그 책을 볼 수는 없을 전망이다. 

 

 

인용

목차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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