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   2024/12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Archives
Today
Total
관리 메뉴

건빵이랑 놀자

한시미학산책, 버들을 꺾는 뜻은, 한시(漢詩)의 정운미(情韻味) - 4. 버들을 꺾는 마음② 본문

카테고리 없음

한시미학산책, 버들을 꺾는 뜻은, 한시(漢詩)의 정운미(情韻味) - 4. 버들을 꺾는 마음②

건방진방랑자 2021. 12. 5. 18:26
728x90
반응형

4. 버들을 꺾는 마음

 

 

김극기의 통달역(通達驛) 감상

 

烟楊有地拂金絲 내낀 버들 어느새 금실을 너울대니
幾被行人贈別離 이별의 징표로 꺾이어짐 얼마던고.
林下一蟬椛別恨 숲 아래 저 매미도 이별 한을 안다는 듯
曳聲來上夕陽枝 석양의 가지 위로 소리 끌며 오르누나.

 

고려 때 시인 김극기(金克己)통달역(通達驛)이란 작품이다. 역시 버들가지가 이별의 징표로 쓰이고 있는 예이다. 1구에서 연양(烟楊)’이라 했으니 아지랑이 가물거리는 봄날임을 알겠다. 파릇파릇 물 오른 버들개지의 여린 초록빛을 금사(金絲)’로 표현한 데서 이점은 더 분명해진다. 그 여린 가지는 푸른 잎을 달아보기도 전에, 많은 사람들의 손에 수도 없이 꺾이었다. 헤어지는 장소가 역참(驛站)이고 보니, 으레 수많은 이별을 이 수양버들은 지켜보았을 게고, 그 많은 사람마다 한두 가지씩 꺾어 재회에의 바램을 실어 보냈을 것이다.

 

3구에 가서 시인은 갑자기 매미를 등장시킨다. 매미란 본시 버들가지에 물오르는 아지랑이 봄날에 우는 곤충이 아니다. 춘접추선(春蝶秋蟬)이란 말이 있듯, 봄날의 꽃밭을 넘나드는 것이 나비라면, 매미는 여름도 깊어 가을이 오는 어스름께에야 비로소 목청이 훤히 트이는 법이다. 이로 보아 1.2구와 3.4구 사이에는 많은 시간의 단절이 있었음을 알게 된다. 봄날 아지랑이 속에 한 번 떠난 님은 매미가 목청을 틔우는 여름이 다 가도록 돌아올 줄 모르고, 그녀는 부질없이 이렇게 날마다 역참(驛站)에 홀로 나와 하릴없는 기다림을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

 

3구에서 림하(林下)’라 했으니, 현재 그녀가 있는 곳이 저 아래로 숲이 내려다보이는 꽤 높은 곳임을 알겠다. 하루 종일 덧없는 기다림에 지친 그녀는 이제 누가 조금 건드리기만 해도 울음이 터질 것만 같다. 숲 저편으로 기다리는 님의 모습은 보이질 않고, 해만 속절없이 뉘엿뉘엿 지려하고 있다. 바로 이때, 아래 숲에서 울던 한 마리 매미가 상향 곡선을 그으면서 그녀가 서 있는 나무 위로 날아든다. 마치 매미는 그녀의 마음을 헤아려 잘 알겠다는 듯이, 그 우렁찬 울음을 터뜨린다. 숲 아래에 있던 매미가 위로 올라온 것에서 시인은 조금이라도 더 높이 올라가 더 멀리 바라보고픈 그녀의 마음을 포착한다. 그녀는 지금 저렇듯 해가 지고 마는 것이 원망스럽고 아쉽다. 그렇게 세월이 가고, 님은 영영 안 오고, 내 청춘의 때도 그렇듯 한숨 속에 시어지고 말 것이 아닌가 싶어서이다. 이제 매미의 목청 푸른 울음소리만 아무도 오지 않는 적막한 허공 위로 가득히 메아리치고 있다. 이 사무치는 그리움을 님은 들으시는가, 듣지 못하시는가. 청마 유치환의 대인(待人)이란 시에, “나날은 훠언히 하늘만 뜨는 것, 재 너머도 뱃길로도 아무도 안 오는 것. 한 잎 두 잎 젊음만 꽃잎 지는 것이라 하였는데, 고금(古今)의 시상(詩想)이 한 솜씨 같다.

 

지난해에 신문에서 어느 조경학자가 우리나라 한시에 자주 나오는 초목(草木)의 빈도수를 조사하여 통계 낸 결과를 발표한 것을 본 기억이 있다. 당당히 1위를 차지한 것은 소나무도 국화도 아닌, 바로 버드나무였다. 그분은 이 결과를 놓고 결국 버드나무가 우리 생활공간 가까이에 많이 있었으므로 시인들이 친근하게 여겨 빈번하게 시의 제재로 쓰인 것이 아니겠느냐는, 지극히 상식적이고 비전문가적인 결론을 내리고 말았다. 버드나무가 봄날의 서정을 촉진시키는 환기물(喚起物)인 동시에 이별과 재회에의 염원을 상징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던 것이다. 다시 말해 한시에서 버드나무가 빈도수에서 1위를 차지했다면, 그것은 봄날의 서정이나 이별을 주제로 한 작품이 제일 많았다는 것과 거의 같은 의미가 된다.

 

 

 

패강가(浿江歌) 감상

 

다음 임제(林悌)의 시를 보면 이점은 더욱 확연해진다.

 

離人日日折楊柳 이별하는 사람들 날마다 버들 꺾어
折盡千枝人莫留 천 가지 다 꺾어도 가시는 님 못 잡았네.
紅袖翠娥多少淚 어여쁜 아가씨들 눈물 탓이런가
烟波落日古今愁 부연 물결 지는 해도 수심에 겨워 있네.

 

제목이 패강곡(浿江曲)이니, 쉽게 말해 대동강 노래이다. 모두 10수의 연작인데, 윗 시는 그 중의 하나이다. 이별하는 사람들은 재회에의 염원 때문에 날마다 대동강변에 나와서 떠나는 님에게 버들가지를 꺾어 보낸다. 허구 헌 날 꺾다보니 대동강 버드나무는 아예 대머리가 될 지경이다. 그래 보았자 떠나려는 님을 붙잡지도 못하고, 떠나신 님이 돌아오는 것도 못 보았다. 보내는 사람은 이별이 서러워 눈물을 흘리고, 기다리는 사람은 님이 오지 않아서 눈물을 떨군다. 그러고 보면 앞서 대동강 물이 마를 날 없다던 정지상의 말은 빈 말이 아닐 터이다. 그녀들의 하염없는 기다림이 안쓰러워, 강물 위엔 한숨인 양 안개가 짙어 있고 눈물인 듯 강물은 넘실거린다. 강물을 붉게 물들이며 지는 해마저도 수심을 보태고 있다.

 

 

이선(李鮮), 류선(柳蟬), 18세기.

휘늘어진 버들가지에 매미가 운다. 이제 더 올라갈 데도 없구나. 쓰리게 운다. 목이 터져라 운다.  

 

 

 

 

인용

목차

한국한시사

1. 남포(南浦)의 비밀

2. 남포(南浦)의 비밀

3. 버들을 꺾는 마음

4. 버들을 꺾는 마음

5. 가을 부채에 담긴 사연

6. 가을 부채에 담긴 사연

7. 난간에 기대어

8. 난간에 기대어

9. 저물녘의 피리 소리

10. 이해 못할 국화 옆에서

 
728x90
반응형
그리드형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