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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한시미학, 버들을 꺾는 뜻은, 한시의 정운미 - 2. 버들을 꺾는 마음 본문

책/한시(漢詩)

한시미학, 버들을 꺾는 뜻은, 한시의 정운미 - 2. 버들을 꺾는 마음

건방진방랑자 2021. 12. 5.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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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버들을 꺾는 마음

 

 

송원이사안서(送元二使安西) 감상하기

 

김만중(金萬重)서포만필(西浦漫筆)에서 정지상(鄭知常)의 위 작품을 두고 우리나라의 양관삼첩(陽關三疊)’이라 하였다. ‘양관삼첩(陽關三疊)’이란 저 유명한 왕유(王維)송원이사지안서(送元二使之安西)가 널리 훤전(喧傳)되어 악곡(樂曲)으로 편입된 뒤의 이름이니, 결국 이에 버금가는 이별 노래의 절창이란 뜻이다.

 

渭城朝雨湎輕塵 위성(渭城) 아침 비가 가벼운 먼지 적시니
客舍靑靑柳色新 객사엔 파릇파릇 버들빛이 새롭고야.
勸君更進一杯酒 그대에게 다시금 한 잔 술 권하노라
西出陽關無故人 양관(陽關)을 나서면 아는 이 없을지니.

 

땅으로 사신 가는 벗 원이(元二)를 송별하며 지은 시이다. 위성(渭城)은 당나라 때 수도인 장안(長安)의 서쪽, 지금의 섬서성(陝西省) 함양시(咸陽市) 동편 일대에 위치한 곳으로, 이른바 실크로드로 들어가는 출발점이 되는 곳이다. 당나라 때 장안(長安)에는 동쪽에는 파교(灞橋)가 있고 서쪽에는 위교(渭橋)가 있어, 동쪽으로 길 떠나는 나그네는 파교(灞橋)에서, 서쪽으로 길 떠나는 나그네는 위교(渭橋)에서 전별의 자리를 가졌다. 양관(陽關)은 지금의 감숙성(甘肅省) 돈황현(敦煌縣)에 있다. 당시에는 서역(西域)과 수많은 전쟁을 치르느라 황량한 사막 길을 오가는 발걸음이 끊일 새 없었다. 시인들은 이 길을 오가며 비창(悲愴)한 새하(塞下)의 노래를 불러 오늘까지 전하는 명편(名篇)이 적지 않다.

 

그러면 이제 작품을 감상해 보자. 역시 여기서도 새봄을 재촉하는 비속에 이별을 노래하고 있다. 아침부터 내린 보슬비로 사람이 지날 때마다 길 위로 풀풀 날리던 먼지도 차분히 가라앉았다. 그러나 실제로 촉촉히 젖은 것은, 흙먼지이기보다 사랑하는 벗을 멀리 떠나보내는 나의 마음이 아니었을까. 그 비에 씻기어진 버들잎은 아연 푸르다. 버들을 보면서 시인은 이별을 예감하고, 다시금 한 잔 술을 권하고 있다. ‘다시금[更進]’이라 했으니 이미 두 사람 사이에 거나해질 만큼의 대작이 오갔을 것은 양언(揚言)이 부질없다.

 

척박한 땅, 인적도 없는 사막을 지나 아득한 안서(安西) 땅까지 가야 할 벗이 이제 말에 오르려 한다. 이별이 아쉬운 시인은 내 잔 한잔 더 받고 가게.” 하면서 소매를 잡아끈다. 양관(陽關) 땅을 나서고 보면 이제 다시는 한 잔 술을 권해 줄 벗은 없을 터이니 말이다. 붙잡는 사람이나 떠나는 사람이나 두 눈에는 그렁그렁 눈물이 맺혔을 것이다. 우리 옛 시조에, “말은 가자 울고 님은 잡고 아니 놓네. 석양은 재를 넘고 갈 길은 천리로다. 저 님아 가는 날 잡지 말고 지는 해를 잡아라.”란 것이 있다. 바로 이 정황에 꼭 맞을 듯하다.

 

2구에서 파릇파릇한 버들빛을 헤아리며 이별을 예감했다 하였는데, 당나라 때 벗과 헤어질 때는 버들가지를 꺾어 이별의 정표로 주는 풍습이 있었다. 그래서 절유(折柳)’, 버들가지를 꺾는다는 말에는 앞서 본 남포(南浦)’와 마찬가지로 이별이란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버들가지가 이별의 신표가 된 사정은 이러하다. 버드나무는 꺾꽂이가 가능하므로, 신표로 받은 버들가지를 가져다 심어 두면 뿌리를 내려 새 잎을 돋운다. 보내는 사람은 님은 갔지만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하는 심정으로 버들가지를 꺾어주었던 것이고, 또 꺾이어 가지에서 떨어졌어도 다시 뿌리를 내려 생명을 구가하는 버들가지처럼, 우리의 우정도 사랑도 그와 같이 시들지 말자는 다짐의 의미도 있었던 것이다.

 

우리나라 홍랑의 시조에, “멧버들 가려 꺾어 보내노라 님의 손대. 계시는 창밖에 심어 두고 보소서. 봄비에 새잎곳 나거든 날인가도 여기소서.”라 한 것이 바로 이 뜻이다. 당나라 때 시인 저사종(儲嗣宗)증별(贈別)에서, “동성(東城)엔 봄 풀이 푸르다지만, 남포(南浦)의 버들은 가지가 없네[東城草雖綠, 南浦柳無枝].”라고 하였는데, 여기에는 남포(南浦)’버들이 모두 이별을 상징하는 어휘로 동시에 쓰이고 있다. 봄이 와서 풀은 푸른데, 떠나는 님에게 버들가지를 꺾어 주려 해도 이미 하많은 사람들이 죄다 꺾어 버려 남은 가지가 없다는 말이다.

 

 

 

김극기의 통달역(通達驛) 감상

 

烟楊有地拂金絲 내낀 버들 어느새 금실을 너울대니
幾被行人贈別離 이별의 징표로 꺾이어짐 얼마던고.
林下一蟬椛別恨 숲 아래 저 매미도 이별 한을 안다는 듯
曳聲來上夕陽枝 석양의 가지 위로 소리 끌며 오르누나.

 

고려 때 시인 김극기(金克己)통달역(通達驛)이란 작품이다. 역시 버들가지가 이별의 징표로 쓰이고 있는 예이다. 1구에서 연양(烟楊)’이라 했으니 아지랑이 가물거리는 봄날임을 알겠다. 파릇파릇 물 오른 버들개지의 여린 초록빛을 금사(金絲)’로 표현한 데서 이점은 더 분명해진다. 그 여린 가지는 푸른 잎을 달아보기도 전에, 많은 사람들의 손에 수도 없이 꺾이었다. 헤어지는 장소가 역참(驛站)이고 보니, 으레 수많은 이별을 이 수양버들은 지켜보았을 게고, 그 많은 사람마다 한두 가지씩 꺾어 재회에의 바램을 실어 보냈을 것이다.

 

3구에 가서 시인은 갑자기 매미를 등장시킨다. 매미란 본시 버들가지에 물오르는 아지랑이 봄날에 우는 곤충이 아니다. 춘접추선(春蝶秋蟬)이란 말이 있듯, 봄날의 꽃밭을 넘나드는 것이 나비라면, 매미는 여름도 깊어 가을이 오는 어스름께에야 비로소 목청이 훤히 트이는 법이다. 이로 보아 1.2구와 3.4구 사이에는 많은 시간의 단절이 있었음을 알게 된다. 봄날 아지랑이 속에 한 번 떠난 님은 매미가 목청을 틔우는 여름이 다 가도록 돌아올 줄 모르고, 그녀는 부질없이 이렇게 날마다 역참(驛站)에 홀로 나와 하릴없는 기다림을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

 

3구에서 림하(林下)’라 했으니, 현재 그녀가 있는 곳이 저 아래로 숲이 내려다보이는 꽤 높은 곳임을 알겠다. 하루 종일 덧없는 기다림에 지친 그녀는 이제 누가 조금 건드리기만 해도 울음이 터질 것만 같다. 숲 저편으로 기다리는 님의 모습은 보이질 않고, 해만 속절없이 뉘엿뉘엿 지려하고 있다. 바로 이때, 아래 숲에서 울던 한 마리 매미가 상향 곡선을 그으면서 그녀가 서 있는 나무 위로 날아든다. 마치 매미는 그녀의 마음을 헤아려 잘 알겠다는 듯이, 그 우렁찬 울음을 터뜨린다. 숲 아래에 있던 매미가 위로 올라온 것에서 시인은 조금이라도 더 높이 올라가 더 멀리 바라보고픈 그녀의 마음을 포착한다. 그녀는 지금 저렇듯 해가 지고 마는 것이 원망스럽고 아쉽다. 그렇게 세월이 가고, 님은 영영 안 오고, 내 청춘의 때도 그렇듯 한숨 속에 시어지고 말 것이 아닌가 싶어서이다. 이제 매미의 목청 푸른 울음소리만 아무도 오지 않는 적막한 허공 위로 가득히 메아리치고 있다. 이 사무치는 그리움을 님은 들으시는가, 듣지 못하시는가. 청마 유치환의 대인(待人)이란 시에, “나날은 훠언히 하늘만 뜨는 것, 재 너머도 뱃길로도 아무도 안 오는 것. 한 잎 두 잎 젊음만 꽃잎 지는 것이라 하였는데, 고금(古今)의 시상(詩想)이 한 솜씨 같다.

 

지난해에 신문에서 어느 조경학자가 우리나라 한시에 자주 나오는 초목(草木)의 빈도수를 조사하여 통계 낸 결과를 발표한 것을 본 기억이 있다. 당당히 1위를 차지한 것은 소나무도 국화도 아닌, 바로 버드나무였다. 그분은 이 결과를 놓고 결국 버드나무가 우리 생활공간 가까이에 많이 있었으므로 시인들이 친근하게 여겨 빈번하게 시의 제재로 쓰인 것이 아니겠느냐는, 지극히 상식적이고 비전문가적인 결론을 내리고 말았다. 버드나무가 봄날의 서정을 촉진시키는 환기물(喚起物)인 동시에 이별과 재회에의 염원을 상징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던 것이다. 다시 말해 한시에서 버드나무가 빈도수에서 1위를 차지했다면, 그것은 봄날의 서정이나 이별을 주제로 한 작품이 제일 많았다는 것과 거의 같은 의미가 된다.

 

 

 

패강가(浿江歌) 감상

 

다음 임제(林悌)의 시를 보면 이점은 더욱 확연해진다.

 

離人日日折楊柳 이별하는 사람들 날마다 버들 꺾어
折盡千枝人莫留 천 가지 다 꺾어도 가시는 님 못 잡았네.
紅袖翠娥多少淚 어여쁜 아가씨들 눈물 탓이런가
烟波落日古今愁 부연 물결 지는 해도 수심에 겨워 있네.

 

제목이 패강곡(浿江曲)이니, 쉽게 말해 대동강 노래이다. 모두 10수의 연작인데, 윗 시는 그 중의 하나이다. 이별하는 사람들은 재회에의 염원 때문에 날마다 대동강변에 나와서 떠나는 님에게 버들가지를 꺾어 보낸다. 허구 헌 날 꺾다보니 대동강 버드나무는 아예 대머리가 될 지경이다. 그래 보았자 떠나려는 님을 붙잡지도 못하고, 떠나신 님이 돌아오는 것도 못 보았다. 보내는 사람은 이별이 서러워 눈물을 흘리고, 기다리는 사람은 님이 오지 않아서 눈물을 떨군다. 그러고 보면 앞서 대동강 물이 마를 날 없다던 정지상의 말은 빈 말이 아닐 터이다. 그녀들의 하염없는 기다림이 안쓰러워, 강물 위엔 한숨인 양 안개가 짙어 있고 눈물인 듯 강물은 넘실거린다. 강물을 붉게 물들이며 지는 해마저도 수심을 보태고 있다.

 

 

 이선(李鮮), 류선(柳蟬), 18세기.

휘늘어진 버들가지에 매미가 운다. 이제 더 올라갈 데도 없구나. 쓰리게 운다. 목이 터져라 운다.  

 

 

인용

목차

1. 남포(南浦)의 비밀

2. 버들을 꺾는 마음

3. 가을 부채에 담긴 사연

4. 난간에 기대어

5. 저물녘의 피리 소리

6. 이해 못할 국화 옆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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