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야 울지 말으렴
아막제(兒莫啼)
이양연(李亮淵)
抱兒兒莫啼 杏花開籬側
포아아막제 행화개리측
花落應結子 吾與爾共食
화락응결자 오여이공식
해석
抱兒兒莫啼 杏花開籬側 | 아기 안았지만 아이야 울지 말으렴. 살구꽃 울타리 곁에서 폈으니 |
花落應結子 吾與爾共食 | 꽃 지고 응당 열매 맺히면 나와 네가 함께 먹자꾸나. |
해설
우는 아기 달래는 노래다. 동요요, 동시요, 자장가다.
아기 울음은 몸이 불편해서가 아닌 한, 약간의 호기심 충동으로도, 언제 울었더냐는 듯이 이내 방긋, 뒤끝이 깨끗하다.
아기를 달래는 방법에는 일반적으로 자주 쓰이는 몇가지 유형이 있다. 눈짓, 손짓, 몸짓으로 코미디를 연출하는 까꿍형이 있고, “뚝 그치면 착하지, …큰애지, …양반이지” 등 구슬림형이 있고, “우는 소리 듣고 ○○가 온다”는 식으로, 호랑이ㆍ늑대ㆍ고양이 등이 동원되는 으름형이 있는가 하면, 곶감ㆍ밤ㆍ대추 등 달콤한 것으로 꾀는 꾐형 등이 있다. 그러나 가장 듬직하고 바람직한 형은 자장가를 불러 주는 일이다. 잠 트집이든 생트집이든, 이미 장기화한 칭얼거림에는 자장가가 가장 효과적이다. 느직이 없거나 안고, 둥개이거나 토닥이면서 나직한 가락으로 실바람 불듯 서러움을 어루만져 주는 자장가! 그 전래되는 가사에도 여러 가지가 있으니,
자장자장 워리 자장
앞집 개도 잘도 자고
뒷집 개도 잘도 자고
우리 강아지도 잘도 잔다.
이는 그 중의 하나이지마는, 이처럼 정착되어 일반화한 자장가는, 그 노래 그늘에서 자라나 늙은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다시 그 자녀 손자녀에로 불러 주며 이어져 온, 대대 조상들의 기(氣)에 절은 노래들이다.
그러나, 즉흥적으로 그때그때의 정황에 따라 불리어지는, 이 작품과 같은 자장가는 또 얼마나 많았으며, 그 즉시로 사라져 전해지지 못한 걸작인들 좀 많았을까? 단조로운 가락에 단조로운 율동을 곁들이며 지체없이 이어져 가는 그 사연은, 할아버지 할머니의 가슴에 깊이 잠들어 버린 동심의 일깨움이며, 어린것에게만 들려주는 것이 아니라, 한 가닥 자신에게도 들려주는, 어린 시절 그리움의 타령이기도 하다.
아기의 울음은 잠의 전주곡이기도 하여, 아무리 고집스러운 칭얼거림도 자장가 그늘에선 쌔근쌔근으로 마무려지게 마련이다. 이때 듣는 자장가는 꿈의 세계에로 이어지게 되고, 그 가사의 내용은 꿈을 구성하는 유력한 소재가 된다.
손자를 안고 달래는 할아버지의 이 노래의 유일한 소재는 살구꽃이다. 하면 굽어보는 풀꽃도 있고, 쳐다보는 나무꽃도 있다. 나무꽃으로는, ‘도리행화(桃李杏花)’로 병칭(倂稱)되는 복사꽃ㆍ오얏꽃 살구꽃이 전통적으로 친숙한 동양적 정취의 대표적인 꽃이다.
울타리께에 서 있는 낙락한 살구나무에 분홍색 살구꽃이 한머리 피면서 한 머리 지고 있는, 봄날의 한낮이다. 저 꽃이 진 자리엔 응당 아기 살구가 맺을 것이고, 올가을엔 황금빛 굵은 살구가 주렁주렁 익으리라. 그 탐스러운 살구를 나랑너랑 우리 함께 따먹자구나!
‘나와 너’, ‘너와 나’를 한 묶음으로 묶은 거기에, 혈연으로서의 유대감과 친밀감도 함께 다져지고 있다. 또, 꽃이 지는 일은 그것으로 끝이 아니라, 보다 찬란한 내일에의 약속과 희망으로 이어져 있다. 그날을 기다리자는 손자에의 타이름은, 한편 갓 맺은 풋과일 같은 어린것이, 어서어서 자라서 출중하게 성취하기를 고대하는, 자신에의 다잡음이며, 달램이며, 고무이기도 하다.
드레드레 농익은 살구나무 아래 긴 장대를 들고, 할아버지는 따고 손자는 주어 담는, 천진 소박한 영상이 아가의 꿈동산에 펼쳐진다. 마냥 평화로운 얼굴로 칭얼칭얼은 쌔근쌔근으로 이어지면서……
-손종섭, 『옛 시정을 더듬어』, 정신세계사, 1992년, 529~531쪽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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