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노래하다
우영(偶詠)
서헌순(徐憲淳)
山窓盡日抱書眠 石鼎猶留煮茗烟
簾外忽聽微雨響 滿塘荷葉碧田田
해석
山窓盡日抱書眠 산창진일포서면 |
산창에서 진종일 책을 끼고 자는데 |
石鼎猶留煮茗烟 석정유류자명연 |
돌솥엔 아직도 달이던 차의 연기가 남아 있네. |
簾外忽聽微雨響 렴외홀청미우향 |
발 밖에서 갑자기 가랑비 울림이 들리고 나니 |
滿塘荷葉碧田田 만당하엽벽전전 |
연못엔 꽉 연잎들이 푸르게 가득 가득 찼구나【전전(田田): ① 담장 따위가 무너질 때 나는 거대한 소리 ② 연잎 따위가 수면을 뒤덮고 있는 모양】. |
해설
주제는 은서한정(隱棲閒情)이다.
‘포서면(抱書眠)’은, 누워서 보던 책을 가슴에 지붕 씌워 잠들어 버린 것으로, 한적(閒適)한 은거 생활의 일면상이다.
차를 달여낸 돌솥에 아직도 서려 있는 향긋한 차향기며 매콤한 연기 내음의 청한미(淸閒味)! 그 깨어 있는 정신이 전구의 ‘면(眠)’의 혼미(昏迷)를 보상하고 있다.
‘미우향(微雨響)’은, 남은 잠기를 개운하게 마저 행궈내는 한편, 전편의 요처인 후구의 ‘벽전전(碧田田)’을 위한 복선(伏線) 구실을 하고 있다.
일어나 창밖을 내다보는 연당의 장관! ‘전전(田田)’은 연잎들을 상형한 의태어로, 잎사귀 하나하나마다가 윤곽도 반듯반듯 엽맥(葉脈)도 또렷또렷한 ‘전(田)’자 또 ‘전(田)’ 자들로 가득 차 있음이다.
그저 엉성하기만 하던 연당에, 새 비 내음을 맡고, 어디에 숨어 있다가 별안간 저처럼 일시에 얼굴을 내미는지 모를, 저 수많은 연잎들! 그 푸른 잎사귀들이 구슬같은 물방울을 후루룩후루룩 굴리면서 반듯반듯 가지런히 서로 몸을 잇대고 있는 경관이란, 수면이 온통 ‘전(田)’일색의 푸른 생명으로 가득 빛나고 있는 것이다. 그 푸름은 ‘록(綠)’도 ‘청(靑)’도 아닌 ‘벽(碧)’! 그 싱그러운 색감(色感)과, 그 묵직한 음감(音感)은 ‘綠, 靑’의 따를 바가 아니며, 고시의 ‘엽엽하전전(葉葉何田田)’이나, 백거이(白居易)의 ‘유어발발연전전(游魚鱍鱍蓮田田)’, 또는 이상은(李商隱)의 ‘옥지하엽정전전(玉池荷葉正田田)’ 등이 또한, 이 생기발랄한 싱그러움을 따를 바가 못 된다. ‘벽전전(碧田田)’의 운목(韻目)을 얻고 무척이나 흐뭇해 했을 작자의 이연자득(怡然自得)한 모습을 지척에서 대하는 듯 눈에 선하다.
몽롱에서 붓을 일으켜 한겹한겹 잠기를 벗겨내고, 드디어는 생의 희열로 가득한 자연미의 찬탄의 장(場)으로 이끌어 간, 점층적 수법도 맛볼 만하다.
-손종섭, 『옛 시정을 더듬어』, 정신세계사, 1992년, 553쪽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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