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여불위의 빈객이 만든 완벽한 여씨춘추
莊襄王即位三年, 薨, 太子政立爲王, 尊呂不韋爲相國, 號稱仲父. 秦王年少, 太後時時竊私通呂不韋, 不韋家僮萬人.
當是時, 魏有信陵君, 楚有春申君, 趙有平原君, 齊有孟嘗君, 皆下士喜賓客以相傾. 呂不韋以秦之彊, 羞不如, 亦招致士, 厚遇之, 至食客三千人.
是時諸侯多辯士, 如荀卿之徒, 著書布天下. 呂不韋乃使其客人人著所聞, 集論以爲「八覽」ㆍ「六論」ㆍ「十二紀」, 二十餘萬言. 以爲備天地萬物古今之事, 號曰『呂氏春秋』. 布鹹陽市門, 懸千金其上, 延諸侯遊士賓客, 有能增損一字者, 予千金.
해석
莊襄王即位三年, 薨, 太子政立爲王,
진(秦)나라 장양와이 즉위한 지 3년 만에 죽고 태자 정이 즉위하여 왕이 되니
尊呂不韋爲相國, 號稱仲父.
여불위를 높여 상국으로 삼고서 중보라 일컬었다.
秦王年少, 太後時時竊私通呂不韋,
진왕이 나이가 어려 태후는 때때로 몰래 여불위와 사통했고
不韋家僮萬人.
여불위의 집안에 머슴은 만 명이나 되었다.
當是時, 魏有信陵君, 楚有春申君,
이때에 위나라엔 신릉군이 있었고 초나라엔 춘신군이 있었으며
趙有平原君, 齊有孟嘗君,
조나라엔 평원군이 있었고 제나라엔 맹상군이 있었으니,
皆下士喜賓客以相傾.
모두 선비를 낮추고 빈객을 기뻐하며 서로 경쟁했다.
呂不韋以秦之彊, 羞不如,
여불위는 진나라가 강함에도 못한 것을 부끄러워하며
亦招致士, 厚遇之,
또한 선비들은 초대하고 후대하니
至食客三千人.
식객이 3천 명에 이르렀다.
是時諸侯多辯士,
이때에 제후에게 말을 잘하는 선비들이 많았으니,
如荀卿之徒, 著書布天下.
예를 들면 순경의 무리 같은 경우는 책을 저술하여 천하에 펼쳐냈다.
呂不韋乃使其客人人著所聞,
여불이가 곧 빈객들에게 들은 것을 저술하게 하여
集論以爲「八覽」ㆍ「六論」ㆍ「十二紀」, 二十餘萬言.
의론을 모으게 하니 「팔람」ㆍ「육론」ㆍ「십이기」가 되었고 20여 만자나 되었다.
以爲備天地萬物古今之事, 號曰『呂氏春秋』.
천지ㆍ만물ㆍ고금의 일을 갖추었다고 여기고선 『여씨춘추』라 일컬었다.
布鹹陽市門, 懸千金其上,
함양 저자의 문에 펼쳐두고 그 위에 1000금을 달아놓고
延諸侯遊士賓客, 有能增損一字者,
제후와 선비와 빈객을 모아놓고 한 글자라도 더하거나 덜 수 있는 사람이라면
予千金.
천금을 주겠다고 했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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