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 일자천금(一字千金)
가치가 있는 글
莊襄王即位三年, 薨, 太子政立爲王, 尊呂不韋爲相國, 號稱仲父. 秦王年少, 太後時時竊私通呂不韋, 不韋家僮萬人.
當是時, 魏有信陵君, 楚有春申君, 趙有平原君, 齊有孟嘗君, 皆下士喜賓客以相傾. 呂不韋以秦之彊, 羞不如, 亦招致士, 厚遇之, 至食客三千人.
是時諸侯多辯士, 如荀卿之徒, 著書布天下. 呂不韋乃使其客人人著所聞, 集論以爲「八覽」ㆍ「六論」ㆍ「十二紀」, 二十餘萬言. 以爲備天地萬物古今之事, 號曰『呂氏春秋』. 布鹹陽市門, 懸千金其上, 延諸侯遊士賓客, 有能增損一字者, 予千金. 『사기(史記)』 「여불위열전(呂不韋列傳)」
전국시대(戰國時代) 말기(末期) 제(齊)나라 맹상군(孟嘗君)과 조(趙)나라 평원군(平原君)은 각 수천 명, 초(楚)나라 춘신군(春申君)과 위(魏)나라 신릉군(信陵君)은 각 3000여 명의 식객(食客)을 거느리며 저마다 유능한 식객이 많음을 자랑하고 있었다.
한편 이들에게 질세라 식객을 모아들인 사람이 있었다. 일개 상인 출신으로 당시 최강국인 진(秦)나라의 상국(相國)이 되어, 어린(13세) 왕 훗날의 시황제가 되는 정(政)으로부터 중부(仲父)라 불리며 위세를 떨친 문신후(文信侯) 여불위(呂不韋: ?~B.C.235)가 바로 그 사람이다. 일설에는 정의 친 아버지라 하기도 한다.
정의 아버지인 장양왕(莊襄王) 자초(子楚)가 태자가 되기 전 인질로 조나라에 있을 때 ‘기화가거(奇貨可居)’라며 천금을 아낌없이 투자하여 오늘날의 영화를 거둔 여불위였다. 그는 막대한 사제(私財)를 풀어 3000여 명의 식객을 모아들였다.
당시 열국(列國)들 사이에는 저술(著述)사업이 유행이었다. 여불위(呂不韋)는 식객(食客)들을 동원해 고금(古今)의 정치ㆍ경제ㆍ사상ㆍ문화ㆍ역사 등을 모두 망라(網羅)한 백과사전식 책을 완성해 마치 자기가 편찬한 양 『여씨춘추(呂氏春秋)』라고 이름 지었다. 그는 이 책에 대한 자부심이 얼마나 강했던지 수도인 함양(咸陽) 성문에 걸어놓고 “누구든지 한 글자라도 더하거나 뺀다면 천금을 주겠다”고 호언(豪言)할 정도였다. 이 말은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는 속담과도 통한다.
겉뜻: 한 글자가 천금의 값어치가 있다.
속뜻: 지극히 가치 있는 뛰어난 문장을 말한다.
유의어: 일자-백금(一字百金)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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