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酬素玩亭夏夜訪友記 (7)
건빵이랑 놀자
7. 한 인물에 대한 극단적 평가 풍고楓皐 김조순金祖淳 충문공忠文公은 연암의 문장을 몹시 싫어 하였다. 일찍이 내각에 있을 때, 풍석楓石과 더불어 의론이 맞지 않자, 풍고가 불끈하여 말하기를, “박 아무개는 『맹자』 한 장을 읽게 하면 반드시 구절도 떼지 못할걸세.” 하였다. 그러자 풍석 또한 기운을 돋워 대답하기를, “박 어른은 반드시 『맹자』 한 장을 지을 수도 있을겝니다.” 하였다. 풍고가 “그대가 문장을 모르는 것이 이 지경이냐고 말하지는 않겠네. 내가 있는 동안에 그대는 문원文苑의 관직은 바라지도 말게.” 하자, 풍석은 “내 진실로 문원의 직책은 바라지도 않을 뿐이요.” 하였다. 이때 정승을 지낸 심두실沈斗室 공이 호남지방에 있었는데, 태학사 이극원李屐園이 편지를 보내 두 사람이 논쟁한 일을 고..
6. 한 끼 때우려던 바람이 벼락에 사라지다 풍석楓石 서유구徐有矩 봉조하奉朝賀가 연암의 문장을 몹시 좋아 하였다. 일찍이 스스로 말하기를, 그 젊을 적에 자주 더불어 왕래하였는데 글을 지으면 반드시 연암에게 보여 그 허가함을 얻은 뒤에야 썼다고 하였다. 또 말하기를, “이 어른이 말솜씨가 뛰어나 이따금 글보다도 나았지. 한 번은 내가 가서 여쭈었네. ‘공께서 자꾸 남들의 이러쿵 저러쿵 하는 말을 받는 것은 무슨 까닭이라도 있나요?’ 연암은 웃으며 말하였지. ‘자네가 그걸 알고 싶은가? 내가 일찍이 여름 장마 때 여러 날을 먹지를 못했었네. 하루는 비가 조금 그치길래 베개를 고이고 하늘가의 무지개와 노을을 보고 있었겠지. 붉은 빛이 비치며 쏟아지는데, 희미하게 번갯불이 그 가운데 있더군. 배가 몹시 고프다..
5. 기백이 시들어 뜻마저 재처럼 식다 이때 내가 과연 사흘 아침을 굶고 있었다. 행랑채의 아랫것이 남을 위해 지붕을 얹어주고 품삯을 받아다가 밤에야 비로소 밥을 지었다. 어린 것이 밥투정을 해 울며 먹으려 들지 않자, 행랑채의 천예賤隸가 화가 나서 밥주발을 엎어 개에게 던져주며 나쁜 말로 나가 뒈지라고 욕을 해댔다. 이때 나는 막 식사를 마치고 곤하여 누웠다가, 장괴애張乖崖가 촉蜀 땅을 다스릴 때 어린아이를 목벤 일을 들어 비유하며 일깨워 주고, 또 “평소에 가르치지 않고 도리어 욕만 하면 자라서 더욱 은공을 저버리게 되네”라고 타일러 주었다. 時余果不食三朝. 廊隸爲人蓋屋, 得雇直, 始夜炊. 小兒妬飯, 啼不肯食, 廊隸怒覆盂與狗, 惡言詈死. 時不侫纔飯, 旣困臥, 爲擧張乖崖守蜀時斬小兒事, 以譬曉之, 且曰:..
4. 연암의 호기로움 새끼 까치가 다리 하나가 부러져 절룩거리는 것이 우스웠다. 밥알을 던져주어 더욱 길이 들자 날마다 찾아와서 서로 친하게 되었다. 마침내 이 놈과 더불어 장난하며 말하기를, “맹상군孟嘗君은 완전히 하나도 없고, 오로지 평원군平原君의 식객만 있네.”라 하였다. 우리나라 시속時俗에 돈을 ‘문’이라 말하므로 맹상군이라 일컬었던 것이다. 자다가 깨면 책을 보고, 책을 보다간 또 잠을 잤다. 아무도 깨우는 이가 없고 보니, 어떤 때는 하루 종일 쿨쿨 잠자기도 하고, 때로 간혹 글을 지어 뜻을 보이기도 했다. 새로 철현금鐵絃琴을 배워, 지루할 때는 몇 곡조 뜯기도 하였다. 혹 술을 보내주는 벗이라도 있으면 문득 기쁘게 따라 마셨다. 有雛鵲折一脚, 蹣跚可笑. 投飯粒益馴, 日來相親. 遂與之戱曰: “..
3. 연암협에 살던 연암이 서울로 온 이유 이 글을 읽은 뒤 박지원도 여기에 답장하는 글을 지었다. 이 글의 제목은 「수소완정하야방우기酬素玩亭夏夜訪友記」이다. 읽기에 따라 씁쓸하기도 했을 제자의 글을 받아본 뒤 막상 연암은 머쓱했던 모양이다. 그래서 똑같은 형식으로 답장을 했다. 오늘의 눈에는 무의미한 장난 글로 비치겠으나, 그 글 한 줄 한 줄에 살가운 정이 담겨 있고, 인생을 살아가는 멋이 깃든 줄을 알겠다. 6월 어느 날, 낙서洛瑞 이서구李書九가 밤중에 나를 찾아왔다가 돌아가 기문記文을 지었는데, 거기에 이렇게 말하였다. “내가 연암 어른을 찾아가니 어른은 사흘이나 굶고 계셨다. 탕건도 벗고 맨발로 방 창턱에 발을 걸치고 누워 행랑채의 아랫것과 서로 문답하고 계셨다.” 소위 연암燕巖이라는 것은 바로..
2. 켜진 촛불 속 희망과 꺼진 촛불 속 절망 그때 밤은 하마 삼경으로 내려왔다. 우러러 창 밖을 보았다. 하늘빛이 갑자기 열릴 듯 모여들어 은하수가 환해지는가 싶더니만 더욱 멀리로 날리어 이리저리 흔들렸다. 내가 놀라 말하였다. “저건 어찌된 건가요?” 어른께서는 웃으며 말씀하셨다. “자네 그 옆을 좀 살펴보게.” 대개 등촉불이 막 꺼지려하여 불꽃이 더 크게 흔들린 것이었다. 그제서야 좀 전에 보았던 것이 이것과 서로 비치어서 그런 것임을 알았다. 時夜已下三更. 仰見窓外, 天光焂開焂翕, 輕河亙白, 益悠揚不自定. 余驚曰: “彼曷爲而然?” 丈人笑曰: “子試觀其側.” 蓋燭火將滅, 焰動搖益大. 乃知向之所見者, 與此相映徹而然也. 이윽고 밤은 깊어 자정 무렵이 되었다. 창밖으로는 은하수가 길게 꼬리를 늘이며 중천..
1. 사흘을 굶고 머슴과 친해진 연암 윗글은 제자 이서구李書九(1754-1825)가 연암 댁을 방문했던 일을 적은 「하야방연암장인기夏夜訪燕巖丈人記」란 소품 산문이다. 여기에는 연암이 사흘 굶던 이야기가 나온다. 아무리 가난이 선비의 다반사라지만, 그 높은 뜻에 안쓰런 궁핍이 읽는 이의 마음을 슬프게 한다. 5월 그믐에 서편 이웃으로부터 걸어 연암 어른 댁을 찾았다. 때마침 희미한 구름은 하늘에 걸렸고, 숲속에 걸린 달은 푸르스름하였다. 종소리가 울렸다. 처음엔 은은하더니 나중엔 둥둥 점차 커지는 것이 마치 물방울이 사방으로 흩어지는 것만 같았다. 이 어른이 댁에 계실까 생각하면서 그 골목으로 접어들었다. 먼저 그 집 들창을 살펴보았다. 등불이 비치고 있었다. 季夏之弦, 步自西隣, 訪燕巖丈人. 時微雲在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