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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뒷골목의 등불 - 6. 한 끼 때우려던 바람이 벼락에 사라지다 본문

책/한문(漢文)

뒷골목의 등불 - 6. 한 끼 때우려던 바람이 벼락에 사라지다

건방진방랑자 2020. 4. 6.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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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한 끼 때우려던 바람이 벼락에 사라지다

 

 

풍석楓石 서유구徐有矩 봉조하奉朝賀가 연암의 문장을 몹시 좋아 하였다. 일찍이 스스로 말하기를, 그 젊을 적에 자주 더불어 왕래하였는데 글을 지으면 반드시 연암에게 보여 그 허가함을 얻은 뒤에야 썼다고 하였다. 또 말하기를,

이 어른이 말솜씨가 뛰어나 이따금 글보다도 나았지. 한 번은 내가 가서 여쭈었네. ‘공께서 자꾸 남들의 이러쿵 저러쿵 하는 말을 받는 것은 무슨 까닭이라도 있나요?’ 연암은 웃으며 말하였지. ‘자네가 그걸 알고 싶은가? 내가 일찍이 여름 장마 때 여러 날을 먹지를 못했었네. 하루는 비가 조금 그치길래 베개를 고이고 하늘가의 무지개와 노을을 보고 있었겠지. 붉은 빛이 비치며 쏟아지는데, 희미하게 번갯불이 그 가운데 있더군. 배가 몹시 고프다는 걸 알았지만 아무리 돌아봐도 먹을 것을 찾을 도리가 없질 않겠나. 그래서 걸어 안채로 들어가 그릇 나부랑이 중에 팔아먹을 만한 것을 찾아 보았지만 하나도 없는걸세. 다락방 속에는 대대로 전해오던 오래된 시렁 상자가 있었는데, 속명으로 각기소리라는 것이었네. 부서지고 지저분하여 쓰기에 마땅치 않아 내버려 둔 것이어서 후한 값을 받기엔 부족하더군. 그래도 생각해보니 굶어 죽는 것을 구할 방법이 없더란 말일세. 그래서 몸소 그 앞으로 갔지. 그러다 잠깐 다락 창 틈으로 음산한 구름이 사방에 잔뜩 흐린 것을 보았네. 다만 아까 비치며 쏟아지던 빛은 더욱 빛나 눈이 어지럽더군. 그래서 넋놓고 구경하다가 두 손을 뻗어 시렁 상자를 맞들고서 겨우 땅에서 들어 올리는데 갑자기 우레소리가 한바탕 울리더니 집이 온통 흔들리는 게야. 마치 번갯불이 곧장 내 머리통에 떨어지는 것 같지 뭔가. 깜짝 놀라 시렁 상자가 땅에 떨어지는 것도 몰랐다네. 내가 평소 비방을 듣는 것이 대략 모두 이같을 뿐일세그려.’ 이에 서로 더불어 크게 웃었다네.”

楓石徐奉朝賀, 酷好燕巖文. 嘗自言, 其少時, 屢與之往來, 有作, 必示之, 得其許可然後用之. 又曰: “此丈談辯奇偉, 往往勝於文詞. 嘗造問曰: ‘公積受人雌黃, 豈有以耶?’ 燕巖笑曰: ‘子欲知之乎? 吾嘗於夏潦中, 累日乏食. 一日雨少歇, 支枕見天際虹霞, 赬紅暎射, 微有閃電在其中. 覺吐裏甚飢, 顧無覓食計. 遂步入內舍, 索器用之可鬻者, 而無有. 樓屋中, 有世傳舊架函, 俗名閣庋所里者. 缺汙不中用斥之, 不足以取厚値. 度它無救死策, 乃躬詣其前. 乍從樓牕鄛, 見陰雲四黑, 唯向之映射者, 益炫爍奪目. 旣無心戀玩, 伸兩手, 扛架函, 甫離地, 忽一聲霹靂, 屋宇皆震. 有若雷火之直墜吾頭腦者. 愕然不覺架函之落于地. 吾平日訾謗, 大略皆此類耳.’ 仍相與大笑.”

연암이 그 여름에 굶기를 다반사로 한 것은 위 기록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홍길주洪吉周수여난필睡餘瀾筆에 실려 있다. “공을 두고 사람들이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은데 왜 그렇습니까?” 서유구徐有矩가 이렇게 따져 묻자, 연암은 씩 웃으며 천연스럽게 여름 장마철에 며칠을 굶고 있을 적 이야기를 한다. 그런데 그 이야기가 재미있다. 가만히 따져 읽어보면, 여기에도 기승전결의 구성이 있고 기복이 있다.

며칠 굶었다 하고는, 그래서 못 견디게 배가 고팠다는 이야기로 바로 연결 짓지 않고, 뚱딴지 같이 어느 날 비가 잠시 개었을 때 하늘가에 걸린 빛나던 무지개 이야기와 그 사이에 번개가 번쩍번쩍 하더란 말을 끼워 넣었다. 그리고는 다시 배가 고팠다는 이야기, 그래도 끼니를 때울 방법이 없더란 이야기, 안채로 들어가 팔아먹을 만한 그릇 나부랑이를 찾아보았지만 없더란 이야기, 다락방에 올라가 각기소리라고 하는 종이를 발라 만든 서랍장이라도 팔까 싶어 꺼내 들었다는 이야기를 장황하게 늘어놓았다. 그러다가 잠깐 창틈을 보니 시커먼 구름이 사방으로 몰려들어 앞서 빛나던 무지개가 더욱 황홀하길래 넋 놓고 바라보다가 생각없이 각기소리를 시렁 위에서 꺼내 드는 순간 갑자기 일성벽력이 우르릉 꽝 하고 쳐서 정수리에 꽂히는 것만 같아 나도 몰래 각기소리를 땅에 떨궈 그나마 낡은 그것을 아예 망가뜨리고 말았다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의 이런 저런 비방은 며칠을 굶다가 목숨이나 부지할까 싶어 각기소리를 꺼내드는 순간 우르릉 하고 떨어진 벼락과 같다는 것이다. 무슨 특별한 이유가 있을 수 없다. 창밖 아름다운 광경에 도취되어 넋 놓고 바라본 잘못 밖에는. 그러다가 난데없는 벼락에 그나마 한 끼 때워 보려던 바램마저 허망하게 된 잘못 밖에는.

 

 

 

 

인용

목차

작가 이력 및 작품

김만덕 이야기를 통해 사람평가에 대해 생각하다

1. 사흘을 굶고 머슴과 친해진 연암

2. 켜진 촛불 속 희망과 꺼진 촛불 속 절망

3. 연암협에 살던 연암이 서울로 온 이유

4. 연암의 호기로움

5. 기백이 시들어 뜻마저 재처럼 식다

5-1. 총평

6. 한 끼 때우려던 바람이 벼락에 사라지다

7. 한 인물에 대한 극단적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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