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Archives
Today
Total
관리 메뉴

건빵이랑 놀자

뒷골목의 등불 - 4. 연암의 호기로움 본문

책/한문(漢文)

뒷골목의 등불 - 4. 연암의 호기로움

건방진방랑자 2020. 4. 6. 14:34
728x90
반응형

4. 연암의 호기로움

 

 

새끼 까치가 다리 하나가 부러져 절룩거리는 것이 우스웠다. 밥알을 던져주어 더욱 길이 들자 날마다 찾아와서 서로 친하게 되었다. 마침내 이 놈과 더불어 장난하며 말하기를, “맹상군孟嘗君은 완전히 하나도 없고, 오로지 평원군平原君의 식객만 있네[각주:1].”라 하였다. 우리나라 시속時俗에 돈을 이라 말하므로 맹상군이라 일컬었던 것이다. 자다가 깨면 책을 보고, 책을 보다간 또 잠을 잤다. 아무도 깨우는 이가 없고 보니, 어떤 때는 하루 종일 쿨쿨 잠자기도 하고, 때로 간혹 글을 지어 뜻을 보이기도 했다. 새로 철현금鐵絃琴을 배워, 지루할 때는 몇 곡조 뜯기도 하였다. 혹 술을 보내주는 벗이라도 있으면 문득 기쁘게 따라 마셨다.

有雛鵲折一脚, 蹣跚可笑. 投飯粒益馴, 日來相親. 遂與之戱曰: “全無孟嘗君, 獨有平原客.” 東方俗謂錢爲文, 故稱孟嘗君. 睡餘看書, 看書又睡. 無人醒覺, 或熟睡盡日, 時或著書見意. 新學鐵絃小琴, 倦至爲弄數操. 或故人有餉酒者, 輒欣然命酌.

연암이 서울 집에 홀로 지내며 마음을 나눈 유일한 벗은 우습게도 사람 아닌 다리 부러진 새끼 까치였다. 새끼 까치만이 저를 위해 베푸는 사람의 후의를 마음으로 받을 줄 알았던 까닭이다. 졸리면 잠을 자고, 잠을 깨면 책을 읽고, 피곤하면 다시 잠을 자는 나날이었다. 정 지루하면 새로 배운 양금洋琴을 뜯으며 시간을 죽였다. 호주머니에 돈 한 푼 없고 보니, 목이 컬컬해도 벗이 그 사정을 알아 술을 보내주기 전에는 목구멍을 축이지도 못했다.

 

 

취한 뒤에는 스스로를 찬미하여 말하였다.

저만을 위함은 양주楊朱와 비슷하고, 남을 같이 사랑하기는 묵적墨翟과 같구나. 뒤주가 자주 비기는 안연顔淵과 같고, 꼼짝 않고 지내기는 노자老子와 한가질세. 광달曠達함은 장자莊子인가 싶고, 참선參禪하기는 석가釋迦인 듯 하다. 공손치 않기는 유하혜柳下惠와 진배 없고, 술 마심은 유령劉伶과 흡사해라. 밥을 빌어 먹기는 한신韓信과 비슷하고, 잠을 잘 자기는 진박陳搏[각주:2]과 같은 것을. 거문고를 연주함은 자상호子桑戶[각주:3]와 방불하고, 책을 저술함은 양웅揚雄과 한가지라. 스스로를 견주기는 제갈량諸葛亮과 비슷하니, 내가 거의 성인인게로구나. 다만 키는 조교曹交[각주:4]만 못하고, 청렴함은 오릉중자於陵仲子[각주:5]에게 양보해야 하니 부끄럽구나! 부끄럽구나!”

인하여 홀로 크게 웃었다.

旣醉乃自贊曰: “吾爲我似楊氏, 兼愛似墨氏. 屢空似顔氏, 尸居似老氏. 曠達似莊氏, 參禪似釋氏. 不恭似柳下惠, 飮酒似劉伶. 寄食似韓信, 善睡似陳搏. 鼓琴似子桑戶, 著書似揚雄. 自比似孔明, 吾殆其聖矣乎? 但長遜曹交, 廉讓於陵, 慚愧慚愧.” 因獨自大笑.

그래도 마음 한 켠엔 도연陶然한 흥취가 남아 있어 양주楊朱ㆍ묵적墨翟에서부터 노장老莊과 석가釋迦까지 끌어들이는 호기를 부렸다.

 

 

 

 

 

 

인용

목차

원문

작가 이력 및 작품

1. 사흘을 굶고 머슴과 친해진 연암

2. 켜진 촛불 속 희망과 꺼진 촛불 속 절망

3. 연암협에 살던 연암이 서울로 온 이유

4. 연암의 호기로움

5. 기백이 시들어 뜻마저 재처럼 식다

5-1. 총평

6. 한 끼 때우려던 바람이 벼락에 사라지다

7. 한 인물에 대한 극단적 평가

 

  1. 孟嘗君은 戰國時代 齊나라의 귀족이니, 그의 이름이 田文이다. 平原君은 趙나라 사람인데, 그 食客 중에 다리 저는 자가 있었다. 그의 애첩이 이를 비웃자 식객이 평원군에게 항의하여 애첩을 벌줄 것을 청하였는데, 평원군이 약속하고 이를 지키지 않자 식객들이 그를 떠나갔다. 이에 평원군이 그 애첩을 죽였다. 맹상군이 없다 함은 時俗에서 돈을 ‘문’이라 하므로 주머니에 돈이 한 푼도 없음을 말함이고, 평원군의 식객만 있다는 것은 다리 저는 까치만이 자신의 손님임을 자조한 것이다. [본문으로]
  2. 陳搏 : 송나라 때 도사로 한 번 잠을 자면 백여 일을 깨지 않고 잠만 잤다는 인물. [본문으로]
  3. 子桑戶 : 『莊子』 「大宗師」에 나오는, 孟子 反子 등과 더불어 거문고로 莫逆의 心交를 나누었다는 인물. [본문으로]
  4. 曹交 : 『孟子』 「告子」下에 나오는 인물로, 키가 9척 4촌이나 된다고 했다. [본문으로]
  5. 於陵仲子 : 『孟子』 「滕文公」下에 나오는 陳仲子로 오릉 땅에 살았으므로 오릉중자라 하였다. 사흘을 굶어 귀에 들리는 것이 없고 눈에 보이는 것이 없었는데, 우물가에 굼벵이가 파먹은 오얏을 먹고 굶어 죽기를 면하였다. [본문으로]
728x90
반응형
그리드형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