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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뒷골목의 등불 - 5. 기백이 시들어 뜻마저 재처럼 식다 본문

책/한문(漢文)

뒷골목의 등불 - 5. 기백이 시들어 뜻마저 재처럼 식다

건방진방랑자 2020. 4. 6.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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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기백이 시들어 뜻마저 재처럼 식다

 

 

이때 내가 과연 사흘 아침을 굶고 있었다. 행랑채의 아랫것이 남을 위해 지붕을 얹어주고 품삯을 받아다가 밤에야 비로소 밥을 지었다. 어린 것이 밥투정을 해 울며 먹으려 들지 않자, 행랑채의 천예賤隸가 화가 나서 밥주발을 엎어 개에게 던져주며 나쁜 말로 나가 뒈지라고 욕을 해댔다. 이때 나는 막 식사를 마치고 곤하여 누웠다가, 장괴애張乖崖가 촉 땅을 다스릴 때 어린아이를 목벤 일을 들어 비유하며 일깨워 주고, 평소에 가르치지 않고 도리어 욕만 하면 자라서 더욱 은공을 저버리게 되네라고 타일러 주었다.

時余果不食三朝. 廊隸爲人蓋屋, 得雇直, 始夜炊. 小兒妬飯, 啼不肯食, 廊隸怒覆盂與狗, 惡言詈死. 時不侫纔飯, 旣困臥, 爲擧張乖崖守蜀時斬小兒事, 以譬曉之, 且曰: “不素敎反罵, 爲長益賊恩.”

그리고는 다시 이서구가 찾아오던 날, 과연 사흘을 굶고 있었던 일과 행랑채에서 벌어진 일들을 해명 삼아 적어 놓았다.

 

 

그러다가 우러러 보니 은하수는 집에 드리워 있고, 별똥별이 서편으로 날아가며 흰 금을 허공에 남기고 있었다. 말이 채 마치지 않아 낙서洛瑞가 와서는 어르신은 혼자 누워 누구와 말씀하십니까?”하고 묻는 것이었다. 이른바 행랑채 사람과 더불어 문답하더란 것은 이를 말함이다. 낙서는 또 눈 오던 날 떡 구워 먹을 때 일을 적었다. 그 당시는 내 옛 집이 낙서의 집과는 문을 마주하고 있었으므로 아이 적부터 이따금씩 보았는데, 나는 손님이 날마다 많았고 당시 세상에 대해 의욕도 있었다. 그러나 금년에 마흔도 못되었는데 이미 터럭이 허옇게 세었으므로 자못 그 감개함을 말한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미 병들고 지쳐서 기백이 쇠락하여 담담히 세상에 뜻이 없으니, 그때로 돌아가지는 못할 것이다. 이에 그를 위해 기문記文을 써서 수답酬答한다.

而仰視天河垂屋, 飛星西流, 委白痕空. 語未卒, 而洛瑞至, 問丈人獨臥誰語也? 所謂與廊曲問答者此也. 洛瑞又記雪天燒餠時事. 時不侫舊居與洛瑞對門, 自其童子時見. 不侫賓客日盛, 有意當世. 而今年未四十, 已白頭, 頗爲道其感慨. 然不侫已病困, 氣魄衰落, 泊然無意, 不復向時也. 玆爲之記以酬.

정작 마음에 걸리는 것은 끝 대목이다. 이서구가 어릴 적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살 적에 연암에게는 찾아오는 손님도 많았고, 그 자신 또한 세상에 대한 의욕으로 충천해 있었다. 그러나 마흔도 채 못 된 젊은 나이에 그는 이미 병들고 지쳤음을 말하고, 기백은 시들어버려 세상을 향한 뜻마저 재처럼 싸늘히 식어버렸다고 했다. 다시는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없으리라고 했다. 너무 일찍 식어버린 세상을 향한 열정이 나는 새삼 안스럽다. 충천하던 의욕이 매몰찬 방관으로 돌아서기까지 그가 겪었을 거듭된 절망들을 나는 슬퍼한다.

 

 

 

 

 

 

인용

목차

원문

작가 이력 및 작품

1. 사흘을 굶고 머슴과 친해진 연암

2. 켜진 촛불 속 희망과 꺼진 촛불 속 절망

3. 연암협에 살던 연암이 서울로 온 이유

4. 연암의 호기로움

5. 기백이 시들어 뜻마저 재처럼 식다

5-1. 총평

6. 한 끼 때우려던 바람이 벼락에 사라지다

7. 한 인물에 대한 극단적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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