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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우리 한시를 읽다 목차 이종묵(李鍾默) 프롤로그. 시를 읽고 즐기는 법 정조 - 綱目講義 湘素雜記 - 推敲 이규보 - 驅詩魔文 이황 - 陶山十二曲跋 이종묵 - 16~17세기 한시사 연구 1. 시를 소리 내어 읽는 맛 을지문덕 - 與隋將于仲文 정법사 - 詠孤石 고운 - 十二乘船渡海來 / 최치원 - 巫峽重峯之歲 최치원 - 秋夜雨中 이백 - 獨坐敬亭山 도연명 - 詠貧士 최치원 - 題伽倻山讀書堂 김종직 - 紅流洞 홍만종 – 소화시평 상권65 황정욱 - 送人赴遂安郡 2. 잘 빚은 항아리와 잘 짜인 시 김지장 - 送童子下山 정법사 - 詠孤石 박인량 - 使宋過泗州龜山寺 박인범 - 徑州龍朔寺 정지상 - 開聖寺 八尺房 정지상 - 題邊山蘇來寺 최치원 - 登潤州慈和寺 김부식 - 觀瀾寺樓 惠文 - 普賢院 3. 시 속에 울려 ..
단장취의로 한시의 시풍이 바뀌다 한문에는 관습적으로 한 부분만을 인용하여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주제를 풀어내는 ‘단장취의(斷章取義)’의 방식을 택하고 있었다. 그래서 많은 학자들이 어느 한 부분만을 인용하여 그 의미를 풀어내고 거기에 자신의 주제를 강화하는 용도로 쓰곤 했었다. 하지만 이렇게 할 때의 문제점은 전체내용이 아닌 부분의 내용으로 전체내용을 왜곡할 소지가 있다는 점이다. 글이란 게 쓰다 보면 여러 예시도 들어가고 자신의 말하고자 하는 주제와 반대되는 말도 하게 마련이다. 나의 글에도 여러 부분에 ‘빨갱이’란 단어들이 들어 있는데 누군가 그 부분만 딱 떼어내어 “건빵은 빨갱이를 싫어하는 반공주의자다”라고 한다면 엄청나게 억울한 것과 같은 이치다. 그러니 맹자는 ‘단장취의’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
한시의 표절 시비에 대해 『소화시평』 권하 33번은 지금까지 읽은 『소화시평』의 내용 중, 아니 어떤 한문 기록 중에서도 가장 특이한 내용을 담고 있다. 지금처럼 여러 작품을 쉽게 찾을 수 있고 비교ㆍ대조해볼 수 있는 세상에선 표절을 하게 되면 금방 들통 나고, 조금이라도 비슷한 구석이 있으면 표절 시비가 붙곤 한다. 최근엔 ‘상어가족’ 표절 시비가 붙었을 정도로, 문학작품, 영화, 음악 할 것 없이 광범위하게 원저자에 대한 권위를 인정해주려 한다. 하지만 이처럼 자료의 검색이 수월하기 이전엔 표절이 아무렇지도 않게 행해졌다. 일례로 우리나라의 70~80년대 대표 만화들은 일본 작품들을 무단으로 표절하여 만들어지기도 했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최초 로봇만화인 ‘태권도 V’는 ‘마징가Z’의 아류라는 오명에서..
강서시파의 시가 어려운 이유 호소지(湖蘇芝)로 불리워지는 관각삼걸(館閣三傑)은 해동강서시파로 유명하다. 권상 73번과 권상 81번 글에서 시구를 단련하기로 유명한 강서시파의 시를 음미했었다. 확실히 당풍(唐風)의 시들은 내용도 별로 어렵지 않고 해석이 매끄럽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반해, 강서시파의 시는 아무리 보아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 모르겠는 경우가 많다. 『소화시평』 권상 102번에 보는 황정욱의 시도 마찬가지다. 해석도 매끄럽지 않을뿐더러, 해석하고 나서도 도대체 무슨 말인지 알쏭달쏭하기만 하니 말이다. 해동강서시파는 송풍(宋風)의 시 중에서도 여러 가지를 안배하여 시구를 꾸며내기로 유명하다. 그러니 한시 품평에선 ‘난삽(難澁)하다’, ‘정교(精巧)하다’와 같은 평가가 나오는 것이다. 그만큼 자..
고려시의 시는 송풍의 시다 이번 글의 주제는 ‘고려시와 조선시 중 어느 시대의 시가 좋은가?’일 터다. 그래서 처음부터 두 시대의 시를 비교하며 두 사람의 말을 인용하고 있다. 서거정의 대답을 들었을 땐 ‘두 시대의 시가 모두 우열을 알 수 없을 정도로 장점과 단점을 지니고 있다’는 뉘앙스로 읽혀지지만, 막상 홍만종은 그 말을 “서거정의 말로 그것을 보면 조선이 나은 것처럼 보인다”라고 결론을 지어 놨다. 분명 지금 다시 읽더라도 장단점이 특기되어 있다고 볼 수밖에 없는데, 홍만종이 왜 그렇게 평가했는지 알 길이 없다. 아마 저 문장만이 아닌 전체를 다 읽으면 다른 뉘앙스가 숨겨져 있는지도 모르겠지만, 굳이 그렇게 보지 않더라도 홍만종이 조선인이기에 자신의 관점에서 저 말을 왜곡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
30. 목릉 이전의 시엔 송풍(宋風)의 시로 일가(一家)를 이루었다 世稱‘本朝詩, 莫盛於穆廟之世.’ 余謂詩道之衰, 實自此始. 蓋穆廟以前, 爲詩者, 大抵皆學宋, 故格調多不雅馴, 音律或未諧適. 而要亦疎鹵質實, 沈厚老健, 不爲塗澤艶冶, 而各自成其爲一家言. 해석 世稱‘本朝詩, 莫盛於穆廟之世.’ 余謂詩道之衰, 實自此始. 세상에선 “조선의 시는 목릉(선조)의 시대보다 성대함이 없다.”고 말하는데, 나는 시도(詩道)의 쇠함은 실제론 이때부터 시작되었다고 생각한다. 蓋穆廟以前, 爲詩者, 大抵皆學宋, 故格調多不雅馴, 音律或未諧適. 대체로 목릉의 이전에 시를 짓는 사람들은 대저 송풍(宋風)을 배웠기 때문에 격조는 우아하거나 올바르지 않은 것이 많았고 음률은 간혹 적당하지 않기도 했다. 而要亦疎鹵質實, 沈厚老健, 不爲塗澤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