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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고창이 제2의 고향이 된 사연 밤새 뒤척였다. 어제 무리하며 걸은 탓에 몸도 쑤시고 발바닥도 욱신거렸다. 몸이 고되니 누우면 바로 잠이 올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잠은 오지 않고 정신만 더 멀쩡해져서 억지로 자려고 뒤척일 수밖에 없었다. 이것 또한 하나의 좋은 경험이다. 이제부턴 아무리 피곤하다고 해도 족욕도 하고 스트레칭도 충분히 한 후에 자야한다는 사실을 알았으니 말이다. 맛난 잠을 자기 위해서도 준비가 필요한 법이다. 고향 전주에 안주하다 오늘은 고창까지 걸어간다. 전주에서 초중고를 모두 나오고 대학까지도 다녔던 나에게 고창은 미지의 세계였다. 그러다가 2006년에 교생실습을 하면서 한층 가까워진 곳이 됐다. 교생실습을 나갈 학교는 대학교에서 정해주는 게 아니라, 자신이 직접 정해야 한다. 직..
목차 1. 우치다 타츠루는 어려워 우치다에게 배우다 이 남자 알고 싶다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지 모르고, 달려들다 2. 잘 모르더라도 그냥 배운다 모르기에 배우고, 알지 못하기에 그저 배운다 2년 동안 와신상담했으니, 이번엔 다르겠지 무엇을 기대했든 그 이하 고민하는 시간들, 헛되지 않으리 3. 우치다 타츠루에게 한 발 내딛기 배우려는 자가 한 발 내딛기를 해야만 비로소 배울 수 있다 두 번의 강연에서 난 한 발 내딛기를 하지 않았다 강연장에서 배우기 & 노검파일로 배우기 녹취록을 작성하며, 마침내 한 발 내딛기를 하다 건빵, 마침내 우치다 타츠루의 강연 후기를 쓰게 되다 4. ‘동아시아의 평화와 교육’이 뭣이 중헌디? 우치다에 맛들인 시간만큼, 자신감도 붙다 자신감은 부담감 앞에 흔적도 없이 사그라들어 ..
동아시아 평화와 교육 ◎ 강연을 마친 후엔 ‘인사말만큼은 한국어로 해야겠다’고 결의는 하지만, 지금까지 이루지 못하고 있다. 현 일본의 평화헌법 개정과 그 싸움 ◎ 사토 마나부쌤과 ‘전쟁 헌법 개정’을 저지하려 함께 싸우고 있다. 사토 마나부는 존경하는 선배인데 그 분이 한국에 와서 하는 얘기를 잘 듣고 있다. ‘저도 한국에 가고 있습니다’ ‘저도 가고 있습니다’라고 확인했는데, 그 때 강의를 듣는 사람들이 겹쳐서 함께 일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안전보장 헌법 개정’ 운동을 먼저 하였기에 힘을 보태게 되었다. 처음엔 3명이서 시작하였지만 의기투합하여 50명의 발기인이 만들어졌고 만 오천명이 넘는 사람들이 함께 참여하게 되었다. 서명을 들고 중의원실을 방문했다. 의원 비서가 잘 받았다고 하며 돌아가라고 ..
26. 제주여행이 준 선물, ‘한 평생이란 시각’ 자전거점에 자전거를 반납하니 공항까지 태워다 주신다. 역시나 방학 기간 중 주말답게 공항엔 정말로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알쓸신잡에서 유시민씨가 말했던 것처럼 70~80년대엔 신혼여행지의 대명사였지만, 지금은 그저 쉽게 오고 갈 수 있는 곳이 되었다. 하긴 나도 아무런 계획도 없이 무작정 제주에 온 것이니, 제주는 이제 더 이상 머나 먼 유배지의 땅은 아니게 된 것이다. 나만큼 이들도 이곳저곳 다니며 2018년을 활기차게 시작하는 계기를 마련했겠지. ▲ 사람이 가득 찬 공항. 제주에 왔지만 집에 가려는 사람이 많다 보니 이런 북새통을 이룬다. 비행기에서 내려다 본 전주 비행기는 공항을 벗어나 활주로에 진입하기 전 단계에서 멈췄다. 이곳은 하나의 활주로를 ..
목차 1. 전주와 영화제, 그리고 여행 고향 전주로 여행을 떠나다 영화는 책이다 2. 전주에서 ‘아무 것도 안 할 자유’를 느끼다 아무 것도 안 할 자유! 남천교에서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자유를 얻다’ 3. 경기전과 전동성당 동양의 역사와 서양의 역사가 한 곳에 있게 된 배경 전동성당과 경기전의 특징 이야기를 통해 세상을 본다 4. 부채의 도시, 전주 단오와 부채의 관계 부채에 자신을 남기다 5. 오목대와 풍남문을 둘러보며 발전에 대해 생각하다 오목대: 이성계의 흥취를 공유하다 풍남문: 오래된 미래를 지키려는 노력 전주와 완주의 통합에 대한 견해: 見小利則大事不成 6. 전주의 맛을 먹다 콩나물국밥(현대옥) 콩국수(진미집) 비빔밥(고궁) 육개장(복자식당) 냉면(함흥냉면) 7. 전주의 맛을 먹다Ⅱ Cafe..
10. 떠나야 비로소 깨닫게 되는 것 흔히 듣는 말. 그게 뭐냐 하면, ‘파랑새는 가까이에 있다’라는 말이다. 그런데 이 말을 듣다보면, 참 허무해질 때가 있다. ▲ 사람은 습관적으로 행복이나 희망은 지금의 현실이 아닌 저 멀리 있다고 생각한다. 파랑새는 가까이에 있다? 그렇게 가까이에 있는 행복을 왜 알지 못한 채 살았냐는 것이며, 그렇다면 늘 가까운 곳만 예의주시하면 된다는 말처럼 들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 말은 자칫, ‘파랑새는 가까이에 있으니, 멀리 나갈 생각은 하지도 마라’라는 말로 비약되어 ‘라푼젤’처럼 방안퉁수로 만들 소지도 있다. 그런데 이쯤에서 「행복한 시한부 인생」에서 했던 ‘자신을 바꾸고 싶은 자, 현실의 반복에 지겨움을 느끼는 자 미련 없이 떠나라.’라는 얘기로 결론을 맺어도 될..
9. 전주비빔밥 이야기 전주하면 비빔밥, 비빔밥하면 전주가 떠오른다. 왜 ‘전주비빔밥’이 유명해진지는 알 수 없다. 그냥 내 생각을 덧붙이자면, 전주는 거대한 호남평야를 끼고 있는 곳이라 먹을거리가 풍부했다. 그러다 보면, 당연히 많은 음식들이 남을 것이고 그걸 처리하기 위해 만들어진 게 비빔밥이 아닐까 싶다. 비빔밥의 유래와 철학 비빔밥은 네 가지 유래설이 있다고 있다. 첫째는 농경문화 유래설이다. 새참을 내갈 때 각 반찬 그릇을 모두 가져갈 수 없기 때문에 한 그릇에 반찬들을 담아 내갔고 그때 고추장에 비벼 먹었다는 것이다. 둘째는 제사유래설이다. 야외제사를 지낼 때 음복하기 위해 하나의 그릇에 음식을 모조리 담아 먹었다는 것이다. 셋째는 세시풍속 유래설이다. 겨울을 이겨낸 식물들엔 강인한 기운이 담..
8. 풍년제과 이야기 대기업 빵집 속의 명맥을 잇는 빵집 각 지역을 대표하는 빵집이 하나씩은 있게 마련이다. 전북에는 최초의 빵집으로 유명한 군산의 ‘이성당’과 초코파이와 센베 과자로 유명한 전주의 ‘풍년제과’가 있다. 솔직히 고백하지만, 전주에 있을 때엔 풍년제과에 와서 빵을 사먹지 않았다. 그냥 시내 한 복판에 있던 오래된 빵집이라 지나다니며 보는 정도였지, 왜 인기가 있는지, 왜 사람들이 많은지 관심이 없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단순히 시내에 있는 ‘풍년제과’로만 보이지 않는 게 사실이다. 두 대기업 빵집이 골목골목을 휩쓸면서 지역을 대표하는 빵집들도 서서히 문을 닫고 있는 실정이기 때문이다. 처음엔 동일한 메이커의 빵집이 많아져 적립도 할 수 있고 표준화된 맛을 볼 수 있어 좋다고 생각했지만..
7. 전주의 맛을 먹다Ⅱ 한옥마을의 은행나무길을 걷다보면, 낯선 모양의 건물이 나온다. Cafe 76-11 분명히 지붕은 한옥인데, 건물은 나무를 덧대어 전원주택 같은 분위기가 난다. 그런데 더욱 특이한 것은 이곳의 이름이다. 한옥마을이라는 정체성에 맞게 한국적인 이름을 지을 수도 있었을 텐데, 버젓이 영어로 이름을 지었으며 의미 또한 알 수 없으니 말이다. 그래서 예전에 이곳을 지나다닐 때 가게 이름이나 건물의 모습을 보고 ‘한옥마을의 정체성과 맞지 않다’며 못마땅해 하기도 했었다. 그랬던 이곳에서 밥을 먹게 될 줄이야. 이건 전혀 꿈도 꾸지 못했던 일이다. 아마 누군가가 초대하지 않았다면 이곳을 들어올 일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외지 학생들이 영화제에 참석하겠다고 하자 ‘전주시 영화영상산업과’에서 ..
3. 경기전과 전동성당 전주한옥마을은 몇 년 사이에 엄청 유명한 관광지가 되었다. 먹자골목이 대부분이어서 한옥마을을 다니다 보면 ‘기억나는 건 비싼 먹을거리와 구석구석 넘쳐나는 사람’만 기억에 남는 묘한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곳에 왔다면 당연히 경기전과 전동성당은 둘러봐야 한다. 그리고 우린 두 곳이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붙어있다는 사실에 놀라게 된다. ▲ 경기전과 전동성당이란 조합이 이색적이다. 동양의 역사와 서양의 역사가 한 곳에 있게 된 배경 경기전慶基殿은 조선이란 나라의 상징성을 지닌 건물이고 전동성당은 서양문물이 유입되었음을 나타내주는 상징성이 있는 건물이다. 그러니 당연히 두 건축물이 바로 옆에 있는 건 어색한 일이다. 그런데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었던 것일까? 조선은 유교만을 ..
2. 전주에서 ‘아무 것도 안 할 자유’를 느끼다 전주국제영화제에 와서 첫 영화를 보고 우린 하릴 없이 전주를 거닐기로 했다. 카페에 들어가 아이스크림을 먹고 객사에 앉아 있으니 봄기운이 완연했다. 난 이런 여유로운 시간을 즐기길 원했는데, 아이들은 이런 시간에 익숙지 않나 보다. ▲ 아이들과 객사에서 쉬었다. 그런데 조금 쉬었다 싶었는데 가자고 하더라. 아무 것도 안 할 자유! 이럴 땐 어릴 적 내 모습이 떠오른다. 학교가 끝난 후 집에 들어오면 방은 고요했다. 어머니는 일을 나가셨기에 방엔 나 혼자 덩그러니 남아 있다. 냉장고에서 깻잎을 꺼내어 밥을 먹고 배를 깔고 방에 눕는다. 숙제를 하기 위해서다. 슥삭슥삭 숙제를 하다 보면, 어느새 방안 가득 햇살이 들어온다. 몸을 고이 감싸는 햇살의 포근함에 ..
1. 전주와 영화제, 그리고 여행 삶은 아이러니다. 막상 그곳에 살 땐, 그곳의 가치를 알지 못한다. 떠나고 난 후에야 그곳의 가치를 알게 되고 그제야 부랴부랴 찾아가게 된다. 그건 사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막상 곁에 있을 땐 그 소중함을 알지 못한다. 하지만 떠난 후엔 빈자리에 몸서리치며 맘 아파한다. 하지만 그 순간엔 이미 늦는다. 후회는 언제나 때늦은 깨달음일 수밖에 없다. ▲ 떠난 다음에야 전주를 다시 보게 됐고, 이렇게 여행처럼 다시 오게 됐다. 고향 전주로 여행을 떠나다 이처럼 전주에 살 땐 전주영화제에 가볼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건 제주도에 사는 사람이 제주도를 둘러보지 않는 것과 같다. 4월에 단재친구들과 제주도를 여행할 때, 성산리 일대에서 자전거 바퀴를 때우느라 민가에 신세를 져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