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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6. 총평 1 이 글은 전체적으로 볼 때 굴곡과 기복이 심하다. 그래서 글이 더욱 생기 있고, 재미있다. 그리고 1단락의 문의文意가 마지막 단락에서 뒤집히는 극적 반전의 구조를 취함으로써 글 전체의 파란波瀾이 풍부하게 되었다. 2 박지원은 정치적인 이유로 한 때 연암협에 은거하였다. 박지원은 이 무렵 양호맹을 알게 되고, 그의 신세를 지게 된다. 박지원이 연암협으로 옮겨 간 것은 42세 때인 1778년이다. 하지만 2년 뒤, 자신을 박해하려는 뜻을 품고 있던 홍국영洪國榮이 정계에서 축출되자 그는 다시 서울로 돌아온다. 그 후에도 박지원은 연암협을 들락날락하지만, 이 글 중 양호맹이 기문을 부탁한 지 어언 10년이나 된다라고 한 것으로 보아 그의 나이 53세 때인 1789년에 이 글이 씌어진 게 아닌가 추..
5. 변함없는 인간에 대한 헌사를 담아 기문을 쓰다 아아, 양직은 정말 대나무에 벽癖이 있어 그것을 지극히 사랑하는 사람이로구나! 겉으로만 봐도 그는 마음이 우뚝하고 커서 마치 기암괴석 같은데 그 속에는 아마 조릿대 떨기와 그윽한 왕대가 무성하리라. 이러하니 내가 글을 안 지을 수 있겠는가. 옛사람 가운데 대나무를 숭상하여 ‘차군此君’이라 부른 이가 있었거니와, 양직과 같은 이는 백세百世의 뒤에 ‘차군’의 충신이 되었다 할 만하다. 이에 나는 대서특필하여 정려旌閭하기를, ‘고고하며 곧고 편안할손, 양처사梁處士의 집’이라 하였다. 嗚呼! 養直豈眞癖於竹, 而愛之至哉. 觀於外可見其肝腎肺胃, 磐矹犖确, 如奇巖巉石, 而叢篠幽篁, 森鬱其中也. 余之文至此而惡能已乎. 古之人旣有尊竹而‘君’之者, 則如養直者, 百世之下, ..
4. 대나무를 닮아 간 사내 양직이 나에게 글을 부탁한 지 어언 10년이 되었건만 그는 여전히 조금도 변함이 없으니, 천 번 좌절되고 백 번 억눌려도 그 뜻이 바뀌지 않았으며,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절절해졌다. 심지어 그는 술을 따라주며 나를 달래기도 하고 목소리를 높여 촉구하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내가 묵묵히 응하지 않자 발끈하여 화를 내며 팔을 쳐들어 노려보는데, 눈썹은 찡그려 ‘个개’ 자 같고 손가락은 메마른 마디 같아, 굳세고 뾰족한 게 홀연 대나무 모양이 되었다. 所以請余文者, 今已十年之久, 而猶不少變. 千挫百抑, 不移其志, 彌久而罙切. 至酹酒而說之, 聲氣而加之, 余輒默而不應, 則奮然作色, 戟手疾視, 眉拂个字, 指若枯節, 勁峭槎枒, 忽成竹形. 시간은 훌쩍 건너뛰어 10년이 지났다. 이 단락은 크..
3. 양호맹의 진실한 대나무 사랑 양梁군 양직養直은 개결하고 곧으며 지조와 절개가 있는 사람이다. 그는 일찍이 ‘죽오竹塢’라 자호自號하고 그 호를 편액扁額에다 써서 자기 집에 걸고는 나에게 기문을 써 달라고 부탁하였다. 하지만 나는 끝내 응하지 않았는데 그건 내가 대나무를 소재로 한 글들에 대해 정말 괴로워하는 바가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웃으며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대가 만일 편액의 글을 고친다면 내 당장 글을 쓰리다.” 나는 그를 위하여 고금古今의 사람들이 쓴 기이한 호나 운치 있는 이름, 이를테면 연상각烟湘閣, 백척오동각百尺梧桐閣, 행화춘 우림정杏花春雨林亭, 소엄화계小罨畫溪, 주영염수재晝永簾垂齋, 우금운고루雨今雲古樓 등등 수십ㆍ수백 가지를 뇌까리며 그 중에 하나를 골라잡으라고 권하였다. 그러나..
2. 상투적인 언어에 생기를 불어넣는 방법 예로부터 대나무를 찬양한 사람은 무지하게 많다. 『시경』 「기욱淇燠」 시 이래로 읊조리고 찬탄하는 것만으론 부족해서 ‘차군此君’이라 일컬으며 숭상한 사람까지 있었으니, 대나무는 그래서 마침내 피폐해지게 되었다. 그러나 천하에는 ‘죽竹’으로 자호字號를 삼는 사람이 그치지 않고 게다가 그런 호를 지은 까닭을 기문記文으로 적곤 하지만, 설사 채윤蔡倫이나 몽염蒙恬의 지필紙筆이라 할지라도, 대나무를 두고서 풍상風霜에도 변치 않는 지조라느니 소탈하고 자유로운 모습이라느니 하고 서술하는 데서 벗어난 적이 없었다. 이처럼 사람들이 머리가 허옇게 되도록 쓴 글이 죄다 진부한 글이니, 대나무는 그래서 마침내 그 정채를 잃게 되었다. 나처럼 재주 없는 사람도 대나무의 덕성을 찬양하..
1. 대나무에 관한 글을 써주지 않으려는 이유 예로부터 대나무를 찬양한 사람은 무지하게 많다. 『시경』 「기욱淇燠」 시 이래로 읊조리고 찬탄하는 것만으론 부족해서 ‘차군此君’이라 일컬으며 숭상한 사람까지 있었으니, 대나무는 그래서 마침내 피폐해지게 되었다. 그러나 천하에는 ‘죽竹’으로 자호字號를 삼는 사람이 그치지 않고 게다가 그런 호를 지은 까닭을 기문記文으로 적곤 하지만, 설사 채윤蔡倫이나 몽염蒙恬의 지필紙筆이라 할지라도, 대나무를 두고서 풍상風霜에도 변치 않는 지조라느니 소탈하고 자유로운 모습이라느니 하고 서술하는 데서 벗어난 적이 없었다. 이처럼 사람들이 머리가 허옇게 되도록 쓴 글이 죄다 진부한 글이니, 대나무는 그래서 마침내 그 정채를 잃게 되었다. 나처럼 재주 없는 사람도 대나무의 덕성을 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