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대나무를 닮아 간 사내
시간은 훌쩍 건너뛰어 10년이 지났다. 이 단락은 크게 보아 두 부분으로 나뉜다. 첫 부분은 연암이 어느 순간 갑자기 양호맹을 대나무로 느끼게 되었다는 내용이고, 둘째 부분은 그래서 양호맹에게 대나무에 관한 글을 써 주지 않을 수 없었다는 내용이다.
첫 부분 첫 번째 문장을 통해 독자는 양호맹이 10년 동안 변함없이 연암에게 글을 써 달라고 졸랐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천 번 좌절되고 백 번 억눌려도 그 뜻이 바뀌지 않았으며(千挫百抑, 不移其志)”라는 말은, 연암이 거듭 거절해도 그에 굴하거나 낙담하지 않고 계속 집요하게 글을 부탁했다는 뜻이다. 연암은 이 구절의 서술을 통해 양호맹의 ‘대나무성’, 다시 말해 양호맹의 ‘대나무 같음’을 은근히 말하고 있는 셈이다. 대나무가 표상하는 저 절개나 지조란 바로 이런 게 아니겠는가. 연암은 이런 생각을 하면서 이 구절을 서술했음이 틀림없다.
이어지는 문장에서 양호맹의 이런 면모는 그 절정에 이른다. “심지어 그는 술을 따라주며 나를 달래기도 하고(至酹酒而說之)”로 시작되는 이 문장은 대단히 유머러스하면서 생동감이 넘친다. 이 문장에서 양호맹은 대나무로 표상되고, 대나무로 현현된다. 양호맹은, 대나무 같다는 정도가 아니라 바로 대나무 그 자체로 인지되고, 그리하여 그와 대나무 사이엔 어떤 간극도 느껴지지 않는다. 이 점에서 이 문장은 양호맹의 대나무 기질에 대한 묘사의 최정점이자 그 완성이다. 그러므로 만일 「죽오라는 집의 기문」을 한 폭의 그림이라 친다면 이 대목은 그야말로 화룡점정畵龍點睛에 해당하며, 따라서 가장 신채神彩를 발하는 대목이라 할 것이다. 대나무 그림, 혹은 양호맹의 초상화는 이 대목에 이르러 비로소 완성되었다. 연암은 이 그림을 그리는 데 꼬박 10년이 걸렸다.
▲ 전문
인용
4. 대나무를 닮아 간 사내
6. 총평
- 팔을 쳐들어(戟手): 이 단어는 화가 나서 사람을 치려고 할 때 한 손은 위로 하고 한 손은 아래로 하여 마치 창 모양처럼 하는 것을 뜻한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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