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대나무를 닮아 간 사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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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직이 나에게 글을 부탁한 지 어언 10년이 되었건만 그는 여전히 조금도 변함이 없으니, 천 번 좌절되고 백 번 억눌려도 그 뜻이 바뀌지 않았으며,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절절해졌다. 심지어 그는 술을 따라주며 나를 달래기도 하고 목소리를 높여 촉구하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내가 묵묵히 응하지 않자 발끈하여 화를 내며 팔을 쳐들어1 노려보는데, 눈썹은 찡그려 ‘个개’ 자 같고 손가락은 메마른 마디 같아, 굳세고 뾰족한 게 홀연 대나무 모양이 되었다. 所以請余文者, 今已十年之久, 而猶不少變. 千挫百抑, 不移其志, 彌久而罙切. 至酹酒而說之, 聲氣而加之, 余輒默而不應, 則奮然作色, 戟手疾視, 眉拂个字, 指若枯節, 勁峭槎枒, 忽成竹形. |
시간은 훌쩍 건너뛰어 10년이 지났다. 이 단락은 크게 보아 두 부분으로 나뉜다. 첫 부분은 연암이 어느 순간 갑자기 양호맹을 대나무로 느끼게 되었다는 내용이고, 둘째 부분은 그래서 양호맹에게 대나무에 관한 글을 써 주지 않을 수 없었다는 내용이다.
첫 부분 첫 번째 문장을 통해 독자는 양호맹이 10년 동안 변함없이 연암에게 글을 써 달라고 졸랐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천 번 좌절되고 백 번 억눌려도 그 뜻이 바뀌지 않았으며(千挫百抑, 不移其志)”라는 말은, 연암이 거듭 거절해도 그에 굴하거나 낙담하지 않고 계속 집요하게 글을 부탁했다는 뜻이다. 연암은 이 구절의 서술을 통해 양호맹의 ‘대나무성’, 다시 말해 양호맹의 ‘대나무 같음’을 은근히 말하고 있는 셈이다. 대나무가 표상하는 저 절개나 지조란 바로 이런 게 아니겠는가. 연암은 이런 생각을 하면서 이 구절을 서술했음이 틀림없다.
이어지는 문장에서 양호맹의 이런 면모는 그 절정에 이른다. “심지어 그는 술을 따라주며 나를 달래기도 하고(至酹酒而說之)”로 시작되는 이 문장은 대단히 유머러스하면서 생동감이 넘친다. 이 문장에서 양호맹은 대나무로 표상되고, 대나무로 현현된다. 양호맹은, 대나무 같다는 정도가 아니라 바로 대나무 그 자체로 인지되고, 그리하여 그와 대나무 사이엔 어떤 간극도 느껴지지 않는다. 이 점에서 이 문장은 양호맹의 대나무 기질에 대한 묘사의 최정점이자 그 완성이다. 그러므로 만일 「죽오라는 집의 기문」을 한 폭의 그림이라 친다면 이 대목은 그야말로 화룡점정畵龍點睛에 해당하며, 따라서 가장 신채神彩를 발하는 대목이라 할 것이다. 대나무 그림, 혹은 양호맹의 초상화는 이 대목에 이르러 비로소 완성되었다. 연암은 이 그림을 그리는 데 꼬박 10년이 걸렸다.
▲ 전문
인용
4. 대나무를 닮아 간 사내
6. 총평
- 팔을 쳐들어(戟手): 이 단어는 화가 나서 사람을 치려고 할 때 한 손은 위로 하고 한 손은 아래로 하여 마치 창 모양처럼 하는 것을 뜻한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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