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   2024/11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Archives
Today
Total
관리 메뉴

건빵이랑 놀자

‘죽오’라는 집의 기문 - 3. 양호맹의 진실한 대나무 사랑 본문

책/한문(漢文)

‘죽오’라는 집의 기문 - 3. 양호맹의 진실한 대나무 사랑

건방진방랑자 2020. 4. 14. 14:44
728x90
반응형

3. 양호맹의 진실한 대나무 사랑

 

 

군 양직養直[각주:1]은 개결하고 곧으며 지조와 절개가 있는 사람이다. 그는 일찍이 죽오竹塢[각주:2]라 자호自號하고 그 호를 편액扁額[각주:3]에다 써서 자기 집에 걸고는 나에게 기문을 써 달라고 부탁하였다. 하지만 나는 끝내 응하지 않았는데 그건 내가 대나무를 소재로 한 글들에 대해 정말 괴로워하는 바가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웃으며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대가 만일 편액의 글을 고친다면 내 당장 글을 쓰리다.”

나는 그를 위하여 고금古今의 사람들이 쓴 기이한 호나 운치 있는 이름, 이를테면 연상각烟湘閣[각주:4], 백척오동각百尺梧桐閣[각주:5], 행화춘 우림정杏花春雨林亭[각주:6], 소엄화계小罨畫溪[각주:7], 주영염수재晝永簾垂齋[각주:8], 우금운고루雨今雲古樓[각주:9] 등등 수십ㆍ수백 가지를 뇌까리며 그 중에 하나를 골라잡으라고 권하였다. 그러나 양직은 그 모두에 고개를 저으며 아니에요, 아니에요.”라고 하면서, 앉으나 누우나 죽오’, 자나 깨나 죽오였다. 매번 글씨 잘 쓰는 이를 만나면 그때마다 죽오를 써 달래서 벽에 거니 벽의 네 귀퉁이가 죄다 죽오였다. 향리에는 죽오를 놀리는 이도 많았지만 그는 느긋하니 부끄러워하지 않았으며 편안히 받아들였다.

梁君養直, 介直有志節者也. 甞自號曰竹塢’, 而扁其所居之室, 請余爲記. 而果未有以應之者, 吾於竹, 誠有所病焉故耳. 余笑曰: “君改其額, 文當立就爾.” 爲誦古今人奇號韻題之如烟湘閣百尺梧桐閣杏花春雨林亭小罨畫溪晝永簾垂齋雨今雲古樓者, 屢數十百, 勸其自擇焉. 養直皆掉頭而否否坐臥焉竹塢, 造次焉竹塢. 每一遇能書者, 輒書竹塢而揭之壁, 壁之四隅, 盡是竹塢. 鄕里之以竹塢譏者亦多, 恬不知恥, 安而受之.

문의文意가 확 전환되면서 본론이 전개된다.

양호맹이 개결하고 지조가 있는 사람이라고 했는데, 그의 이런 성품은 그 자인 양직養直(곧음을 기르다)’에 잘 압축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양직이라는 자는 대나무가 우거진 언덕이라는 의미인 죽오라는 당호와도 잘 어울린다. 대나무의 본성은 곧기 때문이다. 이렇게 본다면 양호맹은 그 품성과 자와 호, 이 셋이 삼위일체를 이룬다. 이런 삼위일체에 부합이라도 하듯 양호맹은 대나무에 대해 놀라운 집착을 보여준다. 연암은 이 점을 이 단락의 뒷부분에서 대단히 익살스러운 필치로 묘사하고 있다. 특히 앉으나 누우나 죽오, 자나 깨나 죽오라는 표현이나 벽의 네 귀퉁이가 죄다 죽오였다라는 표현은, 흡사 천지사방이 온통 죽오로 가득 차 있는 듯한 느낌을 자아냄으로써, 대나무에 대한 양호맹의 집착이 어느 정도인지를 익살스럽게 드러내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이 단락의 중간 부분, 즉 수십ㆍ수백 가지(이는 얼마나 과장된 표현인가!)의 근사한 당호를 제시하며 그 중의 아무거나 하나 골라잡으라는 연암의 제의와 이들 당호 모두에 대해 고개를 저으며 싫다고 했다는 양호맹의 반응을 서술한 대목 역시 대단히 해학적이어서, 웃음보를 터뜨리게 한다. 비단 연암의 어투와 행태가 강하게 느껴질 뿐 아니라, 양호맹이라는 인간의 개성이 잘 느껴진다. 이 점에서, 이 대목의 서술은 아주 이채를 띠고 있으며, 시공간을 뛰어넘어 독자로 하여금 마치 그때 그 자리를 엿보게 하는 듯한 미적 환상을 불러일으킨다. 그만큼 필치는 생동하고, 묘사는 핍진하다.

 

향리에는 죽오를 놀리는 이도 많았(鄕里之以竹塢譏者亦多)”다고 했는데, 이건 뭘 말하는 걸까? 아마도 고지식할 정도로 대나무를 혹애하며 죽오라는 당호를 집착했던 양호맹의 성벽을 사람들이 비웃었다는 말일 터이다. 그럼에도 그는 느긋하니 부끄러워하지 않았으며 편안히 받아들였다(恬不知恥, 安而受之)”고 했는데, 이 말은 양호맹의 또 다른 성품에 대한 기술일 뿐만 아니라, 양호맹의 인간 됨됨이를 작가 연암이 따뜻한 시선으로 응시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점을 놓쳐서는 안 된다. 연암은 이 마지막 구절에서, 양호맹의 대나무 사랑이 그냥 폼으로 하는 짓이거나 남들에게 보이기 위해서 하는 짓이 아니라, 진정으로 제가 좋아서 하는 짓이요, 그러기에 남들이 뭐라고 하든 부끄러워하거나 자신의 생각을 바꾸지 않았음을, 나직하긴 하지만 분명한 어조로 말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이 마지막 구절은 이 단락의 첫 문장, 양군 양직은 개결하고 곧으며 지조와 절재가 있는 사람이다(梁君養直, 介直有志節者也)”라는 문장과 정확히 호응한다.

 

 

  

 

 

 

 

인용

목차

원문

작가 이력 및 작품

우리 한시를 읽다를 끝내다

건빵의 죽오기, 건빵재를 열다

1. 대나무에 관한 글을 써주지 않으려는 이유

2. 상투적인 언어에 생기를 불어넣는 방법

3. 양호맹의 진실한 대나무 사랑

4. 대나무를 닮아 간 사내

5. 변함없는 인간에 대한 헌사를 담아 기문을 쓰다

6. 총평

 

 

  1. 양직養直: 양호맹梁浩孟(1738~1795)의 자字다. 본관은 남원이며, 개성 사람이다. [본문으로]
  2. 죽오竹塢: 양호맹의 당호堂號(집에 붙인 이름)이다. 박지원은 연암협燕巖峽에 은거한 첫 해인 1778년, 당시 개성 유수開城留守로 와 있던 친구 유언호俞彦鎬(1730~1796)의 배려로 잠시 개성의 금학동琴鶴洞에 있던 양호맹의 별장을 거처로 삼았다. [본문으로]
  3. 편액扁額: 종이나 나무 따위에 그림을 그리거나 글씨를 써서 방 안이나 문 위에 걸어 놓는 액자를 말한다. [본문으로]
  4. 연상각烟湘閣: 안개가 낀 상수湘水(중국 강남의 강 이름) 가의 집이란 뜻이다. [본문으로]
  5. 백척오동각百尺梧桐閣: 백 척이나 되는 높다란 오동나무 곁에 있는 집이라는 뜻이다. [본문으로]
  6. 행화춘 우림정杏花春雨林亭: 살구꽃이 핀 봄날에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숲 속의 집이라는 뜻이다. [본문으로]
  7. 소엄화계小罨畫溪: 작은 엄화계罨畵溪라는 뜻이다. ‘엄화’는 채색한 그림을 뜻하는 말인바, ‘엄화계’란 중국 절강성浙江省 장흥현長興縣에 있는 경치가 썩 좋은 시내 이름이다. [본문으로]
  8. 주영염수재晝永簾垂齋: 긴 낮 동안 주렴(=발)이 드리워져 있는 집이라는 뜻이다. 송나라 도학자인 소강절邵康節의 「늦은 봄을 읊다(暮春吟)」라는 시에 “봄 깊어 긴 낮에 주렴을 드리웠네(春深晝永簾垂地)”라는 구절이 있는바, 여기서 따온 말이다. 이 시는 자연을 읊고 성정性情을 도야하는 은자의 생활을 읊은 시이다. [본문으로]
  9. 우금운고루雨今雲古樓: 비는 지금의 비가 내리는데 구름은 옛날 구름이 떠 있는 정자라는 뜻이다. 연암은 연암협에 있는 시내에 ‘엄화계’라는 이름을 붙인 바 있고, 또 훗날 안의현감安義縣監으로 있을 때 관아의 새로 지은 건물들에 ‘연상각’과 ‘백척오동각’이라는 이름을 붙인 바 있다. [본문으로]
728x90
반응형
그리드형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