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는 대로 읊다
즉사(卽事)
이색(李穡)
幽居野興老彌淸 恰得新詩眼底生
風定餘花猶自落 雲移小雨未全晴
墻頭粉蝶別枝去 屋角錦鳩深樹鳴
齊物逍遙非我事 鏡中形色甚分明 『東文選』 卷之十六
▲ 幽居나 절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다. 영화 [전우치] 중, 전우치의 사당.
해석
幽居野興老彌淸 유거야흥로미청 | 숨어 사는 시골의 흥취는 늙을수록 더욱 맑아져 |
恰得新詩眼底生 흡득신시안저생 | 새로운 시가 눈 밑에서 생겨나는 것을 흡족하게 얻네. |
風定餘花猶自落 풍정여화유자락 | 바람은 멈췄지만 남아 있던 꽃 오히려 스스로 지고 |
雲移小雨未全晴 운이소우미전청 | 구름은 사라졌지만 부슬비 아직 덜 개었네. |
墻頭粉蝶別枝去 장두분접별지거 | 담장 위의 나비는 가지와 이별하여 떠나고 |
屋角錦鳩深樹鳴 옥각금구심수명 | 처마 귀퉁이 비둘기는 깊은 숲에 숨어 울어대네. |
齊物逍遙非我事 제물소요비아사 | 제물과 소요는 나의 일이 아니니, |
鏡中形色甚分明 경중형색심분명 | 거울 속에 모든 사물이 이렇게도 분명한 것을. 『東文選』 卷之十六 |
해설
시골에 낙향하여 살아가다 보니, 맑은 흥취는 모두 시흥(詩興)을 불러일으켜 새로운 시를 짓기에 적당하다. 그 흥취란 어떤 것인가? 바람이 그쳤는데 남아 있던 꽃잎이 저절로 떨어지고 비구름이 지나갔지만 가랑비는 어디선가 내리고 있으며, 분나비는 이 가지에서 저 가지로 날아가고 산비둘기는 깊은 숲속에서 울어대고 있는 것이 흥(興)이다.
장자(莊子)가 보았던 절대평등의 관점인 제물(齊物)이나 세속적인 가치 판단을 초월한 자유로운 삶인 소요유(逍遙遊)는 내가 사물을 보고 느끼는 감흥과 다르겠지만, 거울 속 세상 만물, 즉 사물의 현재 존재하고 있는 모습은 그것의 분명한 실상(實相)이다.
이 시는 함련(頷聯)이 인구(人口)에 회자(膾炙)되는 것으로, 『소문쇄록(謏聞瑣錄)』에서는 이를 두고 “사물의 형상을 형용한 것이 정교하고 끝없는 함축적 의미가 있다[狀物精巧 有無限意思].”라고 평하고 있다
원주용, 『고려시대 한시 읽기』, 이담, 2009년, 310~311쪽
인용
'한시놀이터 > 삼국&고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첨 - 자적(自適) (0) | 2019.02.13 |
---|---|
정도전 - 방김거사야거(訪金居士野居) (0) | 2019.02.13 |
이숭인 - 오호도(嗚呼島) (0) | 2019.02.13 |
정몽주 - 홍무정사봉사일본작(洪武丁巳奉使日本作) (0) | 2019.02.13 |
이제현 - 송신원외북상서(送辛員外北上序) (0) | 2019.02.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