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상태수 진희량(陳希亮)이 지은 능허대에 태수 부탁으로 쓴 기문
능허대기(凌虛臺記)
소식(蘇軾)
解說 1. 공필도 인정한 능허대기
陳希亮, 字公弼, 剛正人也. 嘉祐中, 知鳳翔府, 東坡初擢制科, 簽書判官事, 吏呼蘇賢良. 公怒曰: “府判官, 何賢良也?” 杖其吏不顧.
坡作「齋醮祈禱文」, 公弼, 必塗墨改定, 數往返, 至爲公弼作「凌虛臺記」, 公弼覽之, 笑曰: “吾視蘇明允, 猶子也; 軾, 猶孫也, 平日不以辭色假之者, 以其年少, 暴得大名, 懼夫滿而不勝也, 乃不吾樂耶” 不易一字, 亟命刻之石.
○ 嘉祐八年癸卯, 坡時年二十八, 作此記. 起句突然, 似乎無頭, 自起以下, 節節奇妙, 登臺而望其東以下, 乃法習鑿齒與其弟書.
坡又作「超然臺記」, 其中一段, 亦用此格調, 後又有法之者, 汪彦章「月觀記」是也. 今皆附見于後.
坡所以諷切陳公者深矣, 世有足恃者, 立德ㆍ立功ㆍ立言三不朽之謂乎. 今臺必爲荒草野田而反賴坡之文章, 以千載不朽, 則所謂足恃者豈不信然哉.
해석
陳希亮, 字公弼, 剛正人也.
진희량은 자가 공필이니 강직하고 바른 사람이다.
嘉祐中, 知鳳翔府,
가우년간에 봉상부를 맡으니
東坡初擢制科, 簽書判官事,
동파가 처음으로 제과에 뽑혀【制科: 예전에, 중국에서 천자가 친히 시험하는 과거를 이르던 말】 첨서판관의 일을 하니,
吏呼蘇賢良.
아전이 ‘소현량’이라 불렀다.
公怒曰: “府判官, 何賢良也?”
공이 “부판관이 어떻게 현량인가?”라고 화를 내며,
杖其吏不顧.
그 아전을 매질하고서 돌아보지 않았다.
坡作「齋醮祈禱文」,
동파가 「재초기도문」을 지을 적엔
公弼, 必塗墨改定, 數往返,
공필이 반드시 먹을 묻혀 고쳐주며 자주 왕래했었는데
至爲公弼作「凌虛臺記」, 公弼覽之, 笑曰:
공필을 위해 「능허대기」를 지을 때에 이르러선 공필이 그걸 보고 웃으며 말했다.
“吾視蘇明允, 猶子也; 軾, 猶孫也,
“내가 소명윤을 보길 자식 같이 했고 소식 보길 손자 같이 했는데
平日不以辭色假之者, 以其年少, 暴得大名,
평소에 말과 얼굴빛을 너그럽게 않은 것은 나이가 어림에도 갑자기 큰 명성을 얻어
懼夫滿而不勝也, 乃不吾樂耶”
거만해짐을 이기지 못할까 걱정해서였는데 이젠 내가 즐겁지 않겠는가.”
不易一字, 亟命刻之石.
한 글자도 바꾸지 않고 빨리 비석에 새기도록 명했다.
○ 嘉祐八年癸卯, 坡時年二十八, 作此記.
가우 8년 계묘에 동파는 당시 28살로 이 기문을 지었다.
起句突然, 似乎無頭,
기구(起句)는 뛰어나 글의 첫 머리가 없는 듯하고
自起以下, 節節奇妙,
기구(起句) 이하부터는 구절마다 기묘하며
登臺而望其東以下, 乃法習鑿齒與其弟書.
‘登臺而望其東’ 이하는 곧 습착치가 아우에게 준 편지를 본떴다.
坡又作「超然臺記」, 其中一段, 亦用此格調,
동파는 또한 「초연대기」를 지었으니, 그 중의 한 단락은 또한 이 글의 격조를 활용했고,
後又有法之者, 汪彦章「月觀記」是也.
훗날 또한 그걸 본받은 글이 있으니 왕언장의 「월관기」가 이것이다.
今皆附見于後.
이제 모두 뒤에 덧붙여둔다.
坡所以諷切陳公者深矣,
동파가 진공을 풍간한 까닭이 깊으니,
世有足恃者, 立德ㆍ立功ㆍ立言三不朽之謂乎.
세상에 믿을 만한 것은 입덕(立德)ㆍ입공(立功)ㆍ입언(立言)의 세 가지 불후함을 말함이로다.
今臺必爲荒草野田而反賴坡之文章,
이제 능허대는 반드시 거친 들판이 되었겠지만 도리어 동파의 문장에 힘입어
以千載不朽,
천년의 불후한 것이 되었으니,
則所謂足恃者豈不信然哉.
말했던 믿을 만하다는 것을 어찌 믿지 않겠는가.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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