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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직 - 황창랑(黃昌郞) 본문

한시놀이터/악부

김종직 - 황창랑(黃昌郞)

건방진방랑자 2019. 10. 14. 1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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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창랑의 무용담과 처용가의 탄생

황창랑(黃昌郞)

 

김종직(金宗直)

 

 

黃昌郞, 不知何代人. 諺相傳, ‘八歲童子, 爲新羅王, 謀釋憾於百濟. 往百濟市, 以釰舞, 市人觀者如堵墻. 百濟王聞之. 召入宮令舞. 昌郞於座, 揕王殺之.’

後世, 作假面以像之, 處容舞並陳, 考之史傳, 絶無左驗.

雙梅堂: “非淸郞, 官昌之訛也.” 作辨以辨之, 然亦臆說, 不可信.

今觀其舞, 周旋顧眄, 變轉倐忽, 至今凜凜猶有生氣, 且有其節, 而無其詞, 故幷賦云.

 

若有人兮纔離齠 身未三尺何䧺驍

平生汪錡我所師 爲國雪恥心無憀

釰鐔擬頸股不戰 釰鍔指心目不搖

功成脫然罷舞去 挾山北海猶可超

 

 

 

 

 

 

해석

黃昌郞, 不知何代人.

황창랑은 어느 시대의 사람인지 모른다.

 

諺相傳, ‘八歲童子,

속설에 서로 다음과 같이 전한다. ‘8세 동자가

 

爲新羅王, 謀釋憾於百濟.

신라왕을 위해 백제에게 섭섭함을 풀어내길 도모했다.

 

往百濟市, 以釰舞,

백제의 저자에 가서 칼로 춤추니

 

市人觀者如堵墻.

저자 사람들로 보는 사람들이 담장 같았다.

 

百濟王聞之. 召入宮令舞.

백제왕이 그걸 듣고 불러 궁으로 들어가 검무를 추게 하니

 

昌郞於座, 揕王殺之.’

창령은 자리에서 왕을 찔러 그를 죽였다.’

 

後世, 作假面以像之, 處容舞並陳,

후세에 가면을 만들어 그를 형상하고 처용무와 함께 공연하는데

 

考之史傳, 絶無左驗.

역사서와 전설을 상고해보면 절대로 증험해볼 만한 사람左驗: 사건이 일어날 당시에 그 곁에 있어서 그 일을 증명할 만한 사람이 없다.

 

雙梅堂: “非淸郞, 官昌之訛也.”

쌍매당은 청랑이 아니니 곧 관창의 와전이다.”라고 말했다.

 

作辨以辨之, 然亦臆說, 不可信.

변론의 말을 지어 분별했지만 또한 억측의 말로 믿을 수가 없다.

 

今觀其舞, 周旋顧眄, 變轉倐忽,

이제 그 춤을 보면 주위를 돌며 좌고우면하고 변화무쌍하다가 갑자기 번뜩여

 

至今凜凜猶有生氣, 且有其節,

지금에 이르러서도 늠름히 아직도 생기가 있고 또한 절도가 있으니

 

而無其詞, 故幷賦云.

그 말이 없기 때문에 아울러 시를 짓는다.

 

若有人兮纔離齠
약유인혜재리초
너 사람이여 겨우 이 갈 나이 지났구나.
身未三尺何䧺驍
신미삼척하웅효
몸은 삼척도 아니지만 어찌나 건장하고 날쌔던지.
平生汪錡我所師
평생왕기아소사
평생 왕기汪錡: 춘추 때에 汪錡童子가 나라를 위해 싸우다가 죽었다.를 내가 스승으로 삼았으니,
爲國雪恥心無憀
위국설치심무료
나라 위해 부끄럼 설욕하면 마음에 부끄럼 없네.
釰鐔擬頸股不戰
일심의경고부전
칼날이 목에 대어도 다리 후들거리지 않고
釰鍔指心目不搖
일악지심목불요
칼날이 심장 가리켜도 눈 떨리지 않네.
功成脫然罷舞去
공성탈연파무거
공 이루고 태연히 춤 멈추고 떠나니
挾山北海猶可超
협산북해유가초
산 끼고 북해도 넘을 만했다네. 佔畢齋集卷之三

 

 

인용

작가 이력 및 작품

전문

심광세

121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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