讀書百遍義自見序
천하에 책을 읽는다는 건 있지만 사람이 독서할 곳은 없다. 만약 독서하려 한다면 쑥대 집이나 흙벽 집의 망가진 책상과 해진 자리도 모두 알맞은 독서처다.
만약 독서하지 않으려 한다면 상쾌한 누각이나 큰 방과 동그런 연못과 네모진 우물이 있고 사귐이 드물고 자물쇠 채워져 시원한 대자리와 무늬 있는 자리도 이따금 투전판과 술판이 된다.
天下有讀書, 人無讀書處. 苟欲讀書, 蓬屋土★缶+坐, 壞床敗薦, 悉書林也; 苟不欲讀書, 快閣穾廈, 圓淵方井, 交疏屈戌, 冰簟紋茵, 往往爲博奕酒肉之場. -李家煥 「讀書處記」
독서해야 할 때가 따로 있는 것도, 독서할 수 있는 공간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다. 그렇게 어느 한 곳으로 정해두려는 심리 속에는 독서는 ‘특별한 것’이라는 관념이 숨어 있다. 특별한 때, 특별한 곳에서 해야 하는 게 독서라고 착각하는 까닭에 평소엔 책을 원수 보듯 하게 되는 거다. 그런 사실을 알았다면 그 독서에 대한 관념부터 바꾸는 걸로 ‘독서’를 시작해보자. 그 관념 하나가 바뀜으로 나의 인생과 삶의 질이 달라진다면, 그것만큼 괜찮은 장사도 없을 거다. 귀가 솔깃하지 않은가?
▲ 독서하고자 한다면, 공부하고자 한다면 내가 있는 곳 그곳이 바로 독서처와 공부처가 된다.
이미 일 권의 서문에서도 밝혔듯이 그저 ‘많은 책을 읽자’가 이 노트의 취지는 아니다. ‘한 권을 읽더라도 깊이 있게 읽고 음미하자. 그래서 뜻이 절로 통하는 경지에 이르자’라는 게 이 노트의 취지인 셈이다. 일 권은 그런 정독을 가능케 했으며 여러 자료의 취합으로 나의 생각을 전복시키는 역할을 했다. 의도하지 않았으나 놀라운 결과를 나에게 덥석 안겨준 셈이다. 과연 2권에선 어떤 변화들이 일어날 것인가? 그리고 이 노트에 어떤 글들이 채워질까? 은근히 기대 된다. 역시 이 노트에도 처음의 글은 정민 선생님의 글이 실렸다. 하지만 같은 시작일지라도 그 당시와 지금은 엄연히 시간차가 있고 또한 나의 사고의 차도 있다. 고로 같지만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이 작은 어긋남이 끝에 이르러선 천리의 차이를 낳는 고로 이 노트가 마치는 날, 1권과는 다른 노트가 되어 있을 것이다.
그저 그 변화 따위에 신경 쓰지 말고 물 흐르듯이 그렇게 채워갈 것이다. 좋은 글들이 가득 채워져서 내 책상 머리맡에 놓고 계속 볼 수 있는 진귀한 자료집이 되길 소망한다.
2007년 10월 18일 목 임고반 502호에서
건빵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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