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맞고 집에 가서 차를 음미하며 마실 때
Happiness Note
여기에 ‘꿈에 관한 이야기’가 있다. 얼핏 보면 암기장 같기도 하고, 단편적인 지식들을 나열해 놓은 단어장처럼도 보인다. 그래서 대충 보고서 지나간 사람에겐 이 이야기가 일상적이고 진부한 것으로 들리는 것이다. 눈을 크게 뜨고 제대로 쳐다보자. 그리고 귀를 기울여 들어보자. 그럴 때에야 비로소 이 이야기의 본래 모습이 보일 것이고 본래 음성이 들릴 것이다.
꿈을 현실로 만드는 노트
왜 ‘꿈에 관한 이야기’인가? 어쩌면 이 노트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일기장이 들려주는 이야기와 표리를 이루는지도 모른다. 왜 그러냐면, 일기는 ‘꿈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줄 뿐 ‘꿈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진 않기 때문이다. 바로 현실성이나 직접성이 이 노트에 가득 펼쳐지는 거다. 일기는 거시적 관점의 담화라면, 이 노트는 미시적 관점의 담화라고 할 수 있다. 이 노트의 이야기는 그래서 귀에 쏙쏙 들어오고 현재 내가 어떤 일을 해야 하는 지 제대로 들려주는 거다.
이 노트가 만들어진 계기는 전태련 선생님의 강의를 듣고 나서였다. 많은 영감과 많은 깨우침을 주시는 선생님은 그의 공부 방법마저 전수해 주신 것이다. 이를 테면 ‘암기보조장’이 그것이다. 하루 공부를 하면서 잘 몰랐던 개념이나 단어가 나오면 철저히 익히고 넘어간다. 바로 그걸 체크해주고 도와주는 게 이 노트의 역할이다. 그건 공부를 대충 대충하며 그저 조금 알 듯하면 ‘다 안다’고 넘어가던 나에겐 엄청난 충격이었다. 늘 ‘기본부터 충실히’를 되뇌며 하려 하지만 그걸 실천에 옮기지 못하는 나에겐 하나의 깨우침이었다. 바로 그것이다. ‘기본에 충실히’란 말은 가장 기본이 되는 개념과 단어를 명확히 하는 일에서부터 시작된다. 바로 그걸 실천할 수 있는 단서를 선생님이 제공해준 것이니, 실천하느냐 마느냐는 어디까지나 나에게 달려있다. 곧바로 실천하지 못하고 일주일 정도가 지난 지금 실천에 옮긴다. 이 첫 걸음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 단언할 수 없지만, 적어도 매순간 공부란 게 이렇게 재밌고 가슴 설레게 하는 것이란 걸 느끼게 해주는 역할을 해줬으면 좋겠다.
영어 이름으로 지어진 첫 번째 노트
그런데 이 노트는 기존의 노트와 다른 부분이 눈에 띈다. 기존에 만들어진 노트들은 한문식의 이름을 가지고 있었던 데 반해, 이 노트는 영어 이름과 더불어 순 한글 문장으로 만들어진 편명을 가지고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무언가 특별한 의미가 담겨 있는 건 아닌가 살펴보게 된다.
하지만 오해를 덜기 위해 별 다른 뜻은 없음을 밝힌다. 좀 맥이 끊겨서 그렇겠지만 그럼에도 왜 영어로 이름을 지었는지에 대해 들어보도록 하자.
내가 공부하는 학문만을 최고라 여기는 매너리즘에 최근 들어 빠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그걸 탈피하고 싶었다. 분과 학문의 허구를 알게 되었고, 한문이란 게 어떤 절대적인 문자 체계가 아니라 어떤 것에도 닿을 수 있는 ‘도구교과’라는 사실에 집중하게 됐다. 그런 인식의 변화에 따라 자연스레 한문만을 고집하는 마음도 놓게 됐다.
한문은 무궁무진한 보물 상자를 열 수 있는 열쇠다. 이것을 어떠한 용도로 사용하느냐에 따라 얻게 되는 것은 천차만별일 수밖에 없다. 그와 마찬가지로 모든 언어들도 그와 같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니 모든 언어를 적대시하거나 폄하해선 안 된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런 생각 덕에 영어 이름으로 지어진 제일 첫 번째 노트가 만들어질 수 있었다.
▲ 2015년 10월에 격포를 여행할 때 비를 맞으며 맘껏 걸었다.
공부를 할 수 있다는 건 행복한 일이다
그렇다면 왜 ‘Happiness Note’일까? 공부를 한다는 게 행복할 수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다. 이 말은 곧 태반이 공부를 하면서 행복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현실을 말해준다. 돈에 의해 지배된 공부, 시험에 의해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공부는 불행할 수밖에 없는 운명성을 타고 난다. 거기에 나 자신은 들어설 공간이 없기 때문이다. 그저 ‘~을 위해’라는 명분을 좇아서 공부를 하니, 그 명분이 더 이상 필요 없어지는 순간 내 손에 남는 건 하나도 없게 된다. 그저 미친 듯이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만을 탐구하던 자신을 자책하게 될 뿐이다. 그렇게 스스로에게 비전도 심어주지 못하며, 스스로를 불안의 공포로 몰아넣는 공부를 벗어나자는 데에 이 노트의 이름을 지은 첫 번째 이유가 담겨 있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선뜻 납득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 이 노트 어딜 보아도 비전을 탐구할 수 있는 가능성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지극히 세상적인 단어나 체계표만 가득하다. 그런 체계표만 보면서 어떻게 행복을 맛볼 수 있겠는가. 그저 어떤 명분들을 버렸고 나 자신이 원해서 하는 공부라는 사실과 이런 단순한 지식을 익히는 것조차 즐겁게 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담고 있다는 사실 만이 중요할 뿐이다. 이게 이 노트의 이름을 지은 가장 결정적인 이유다.
땡보가 커피를 즐기는 것처럼 공부할 수 있길
교육학을 정리한 노트엔 ‘비 맞고 집에 가는 길’이라 이름 짓고, 전공 단어를 정리한 노트엔 ‘땡보의 Tea Time’이라 이름을 지은 이유는 무얼까? 애석하게도 여기에도 특별한 이유는 없다. 어디까지나 [개 같은 날의 오후]란 영화의 제목처럼 생동감을 불어넣고 싶어 붙여본 것이니 말이다. 비를 맞고 가는 건 꽤나 청승맞은 일이지만, 그런 여유와 낭만은 삶에서 필요한 부분이다. 교육학 공부가 그와 같은 여유롭고 낭만적인 공부가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붙여본 것이다. 땡보란 하릴 없이 노는 사람을 일컫는다. 게으름의 상징이고 사회 부적응자의 상징이다. 그런 그가 커피를 마신다. 그에게 있어서 그 커피는 은은하고 달면서도 알싸한 그런 맛이리라. 한문이 나에겐 편한 것이긴 하지만 이직도 어렵고 아득해 보인다. 그러니 땡보가 커피를 즐기듯, 한문을 즐기며 하고 싶은 마음에 그런 이름을 붙였다. 덧붙여 언제나 탈주선을 탈 수 있는 존재로 남았으면 하는 바람도 같이 곁들여 있다.
이젠 이 노트가 나에게 들려줄 ‘꿈에 관한 이야기’에 귀 기울일 차례다. 과연 어떤 이야기가 흘러나올지 귀를 기울이고 집중해보자.
2008년 6월 23일 월 임고반 502호에서
건빵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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